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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라는 거대한 강

김선욱 |2007.08.03 19:18
조회 176 |추천 3


하버드라는 거대한 강

 

 

케네디 행정대학원 오리엔테이션에 졸업생인 하밀 마우아드 전 에콰도르 대통령이 연사로 나왔다.

 

"하버드에 있다 보면 'home'이 들어가는 두 단어가 여러분을 괴롭힐 겁니다. 하나는 숙제(homework), 또 하나는 향수병(homesick)입니다. 이걸 잘 견디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숙제를 열심히 했더니 졸업하고 10년 후에 대통령이 됐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겁니다."

 

학생들이 박장대소했다. "그래, 견디는 거야. 그럼 대통령도 될 수 있다고!" 마우아드의 '예언'은 10년이 지나지 않아 적중했다. 2006년 멕시코 대선에서 펠페 칸데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펠리페는 그때 우리와 함께 오리엔테이션장에서 킥킥거렸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멕시코에서 꽤 유명한 정치인이었는데 선거에 패한 후 하버드에 유학을 왔었다. 만일 그 클래스에서 누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펠리페였따. 우리 반 친구들이 모여서 파티를 할 때면 "펠리페를 대통령으로!"라고 구호를 외치곤 했다. 선거가 워낙 치열한 접전이라 끝까지 논란이 많았다. 마침내 펠리페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기뻤다.

 

다시 마우아드 대통령으로 돌아가자. 나는 기사를 한 편 쓰려고 인터뷰를 하러 갔다.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퀴즈를 하나 내겠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가 어디인지 알아요?"

 

"글쎄요, 예루살렘? 로마? 아니면 인도의 어느 도시일 수도 있겠지요."

 

그는 웃으면서 계속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젓다가 말했다.

 

"바로 여기, 케임브리지!"

 

"케임브리지가 왜요?"

 

"하버드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신'인줄 알잖아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하버드생들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떠올라 푸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우아드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하버드에서는 신학대학이 '종교적인' 성격이 가장 약한 셈이지요. 그곳 학생들은 적어도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하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우리는 공범처럼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방인들은 하버드 사람들이 하나같이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은 물론, 다른 지역에서 온 미국인들조차 보스턴 사람들의 냉랭한 태도에 질려서 "아, 보스턴 사람들이란!"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덕분에 하버드 대학이 있는 보스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오만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악명 높다.

 

내 경험으로 보면 미국은 북동부보다 남서부 사람들이 더 친절한 것 같다. 북동부 사람들은 뭐랄까, 매사를 깔끔하게 비지니스를 처리하는 태도로 다룬다.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보스턴에 살 때는 미국 사람들이 다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지역에 가보니 달라도 한참 달랐다. 보스턴에서 자동차로 여덟 시간쯤 남쪽에 있는 워싱턴으로 이사 갔을 때는 사람들이 하도 친절해서 '이 사람이 왜 이러지?'하고 경계한 적도 있다. 거기서 차를 타고 다시 다섯 시간 더 달려서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가면 먼 친척이라도 찾아온 듯 반갑게 대해준다.

 

남미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다. 마우아드 씨도 미국 사람들은 흉내도 못 낼 정도로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쿠데타가 일어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리고 다시 하버드로 공부를 하러 왔다. 이번엔 학생이 아니고 연구원이었따. 그가 학교로 돌아온 후에 학생들이 수군거리긴 했다.

 

"하버드에서 배운 것도, 저 유명한 하버드 교수들의 자문도 대통령으로 일하는 데 쓸모가 없었던 모양이군. 이제 학교에서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주려나 봐."

 

그러다 곧 그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하버드에서 남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느는 것을 좋아하다가는 낙오하기 십상이다.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가능하면 관심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이끌어가야 한다.

 

하버드 왕국은 학부와 다채로운 대학원으로 구성돼 있다. 4년제 학부와 인문과학 대학원을 비롯해 경영, 치과, 디자인, 의학, 신학, 교육, 법학, 행정, 보건정책 대학원이 있다. 대학원생이 약 1만 3000명, 학부생이 약 6700명이다. 교수 등 강의진이 2300명, 이 밖에도 하버드에 고용되어 있는 직원들의 수가 약 9500명이다. 하버드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한 기관이다.

 

게다가 하버드 익스텐션 스쿨(Extension School: 대학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과 같은 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 수가 연 1만 3000명에 이른다. 여기에 각 대학원에서 개설하는 값비싼 단기 코스를 거쳐 가는 사람들이 매년 수천 명이 넘는다. 그래서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 케임브리지는 온갖 종류의 하버드 학생들로 미어터질 지경이다. 덕분에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아파트 월세도 비싸다. 보스턴은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비 많이 들기로 유명한 도시다.

 

하버드를 품고 있는 작은 도시 케임브리지는 겉보기엔 굉장히 소박하다. 아름다운 찰스 강변을 따라 하버드와 MIT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보스턴 쪽으로는 고층 건물이 많지만, 케임브리지 쪽으로는 눈에 띄는 큰 건물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 안에 모여든 사람들은 미국 최고의 두뇌들이다. 장래의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자가, 대기업 CEO가 자라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끼리만 힘을 모아도, 미국 정부가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쓸 수 있는 외교정책과 경제정책을 한 세트씩 짜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하버드의 국제적인 명성은 단순히 우수한 교육기관이라는데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만큼 좋은 대학이라면 미국에 몇 군데나 더 있다. 저마다 최고를 자부하는 다양한 교육기관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에서 한 대학이 모든 분야에서 다 1등을 차지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상위 10위권을 넘나드는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각각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단순한 잣대로 우열을 가리거나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의 이름이 마치 탁월함의 대명사처럼 통용되는 것은 하버드가 수백 년 동안 갈고닦고 업그레이드해온 노력 덕분이다.

세계적인 명품 교육기관으로서의 명성을 치밀하게 관리해왔다.

 

하버드는 공룡처럼 거대한 '지식공장(knowledge factory)'이며, 큰 강이다. 탁월한 학자 집단, 어려운 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우수한 학생들, 막대한 학교 기금과 최신 연구시설, 1550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관, 자유롭고 치열한 학문 연구 분위기, 미국과 해외에서 각계의 지도급 인사로 인정받는 졸업생들의 탄탄한 인맥, 150개국에서 몰려든 3000여 명의 외국 학생들…. 이 모든 것이 풍부한 느낌을 주는 하버드를 만들어낸다.

 

하버드에서 학부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다니던 친구는 하버드가 거대한 강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다양한 자원을 넉넉하게 품고 유유히 흐르는 큰 흐름이야말로 하버드의 정체라고 했다. 그리고 이 혜택받은 환경 속에서 각각 나름대로 헤엄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버드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친구의 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1년 후쯤에야 깨달았다. 하버드 안에서 자기만의 '하버드 스타일'을 만들어 몸에 익힐 수 있을 때, 진짜 하버드에서 공부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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