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시내에서 옥수수 한 봉지르 사서 그녀에게 주었다. 정신없이 옥수수를 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에게 감동한 것은 그녀를 기다리던 그의 인내심 때문이었다. 그녀는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방이 깊어진 후에야 그를 만나주었고, 함께 집에 갔다.
매일 밤, 공부를 마친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나오면, 가로등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는 항상 그렇게 그녀를 기다렸다.
어느 날, 그녀는 약속시간에 두 시간이나 늦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속 장송로 황급히 뛰어가면서도 그녀는 그가 가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 똑같이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그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느 교내에서 열리는 교사, 학생 무술대회에 학생 대표로 선발되어 바빠지기 시작했다. 자연히 그와 만나는 횟수도, 전화 통화도 줄어들었다.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던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오히려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해주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무척 행복해 하면서도 표현하지 않았고, 통화를 하더라도 급하게 대화를 끝냈다.
"응, 알았어. 일이 있어서 가야해. 전화 끊을게."
사실 시간이 전혀 나지 않을 만큼 바쁜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면 그녀도 그를 만나고 싶었고, 전화 통화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영원히 나만 사랑해줄 거니까 괜찮아!'
무술대회는 곧 끝이 났고, 그녀는 그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녀르 대하는 그의 태도는 전과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냉담해진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영원할 것 같던 사람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분안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며칠 후,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헤어지자."
이 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말해줘, 모두 고쳐볼게."
하지만 그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고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그녀는 늘 따뜻하게 감싸주던 사랑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떠나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녀는 우두커니 앉은 채 잠을 이루지못했다. 한밤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지나치던 그녀는 갑자기 냉장고에 있는 옥수수가 생각났다.
"그가 사다 준 거였지."
그녀는 그를 생각하며 옥수수 하나를 쪄먹었다. 하지만 말라 비틀어진 옥수수는 더 이상 전에 먹던 맛있는 옥수수가 아니었다. 마치 그동안 자신의 존재를 잊고 지낸 그녀를 소리 없이 탓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사람은 돌처럼 한 번 놓인 자리에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빵처럼 항상 다시, 또 새로 구워져야 한다.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 미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