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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으로 보는 마음이란?

양철곤 |2007.08.09 17:11
조회 195 |추천 0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마음(心)입니다.

우주 만물은 오직 마음 뿐이며(一切唯心), 이것을 있는 그대로 法답게(淸淨心,眞如,如如,無心) 보지 못하고 각자의 알음알이(我相;業)로서 만들어서 보기 때문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였고, 까닭으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이나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보므로 여러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일반적으로 `정신'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마음은 정신에 비해서 훨씬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뜻으로 쓰이는 일이 많습니다.

 

깨달음으로 볼 때는 `일체유심'의 마음을 보아야 하며, 마음의 인식 작용으로 볼때는 `일체유심조'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므로 결국 마음으로 마음을 찾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도 마음입니다.

"중생과 부처(진리,法)와 마음은 하나(不二,不異)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음은 명칭(이름)에 불과한 것이고, 법계에 항상한 그 무엇(진리,섭리)을 마음이라고 이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는 마음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만상(萬象)은 마음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는 "마음이 생기면 우주가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실체는 알 수가 없고, 알 수는 없으나 그대로 항상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공공적적(空空寂寂)'하여 찾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그러면서도 안 볼려고 해도 안 볼 수 없고,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수도 없으므로 `소소영영(昭昭靈靈)'하다'고 하였습니다.

 

`공공적적'이란? 우주 만상의 실체가 고정성(固定性)이 없이 비어 있어(無常;空) 사려(思慮;깊은 생각)로서 포착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고요함, 또는 번뇌나 집착이 없이 무아무심(無我無心)임을 뜻합니다.

 

`소소영영'이란 말은 께서 지으신 `선가귀감(禪家龜鑑)'의 한 구절에 나오는 말로서, 한없이 밝고 신령 스럽다는 뜻입니다.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從本以來(종본이래);본래부터

 昭昭靈靈(소소영영);한없이 밝고 신령 스러워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부증멸);일찌기 나지도 죽지도 않았고

 名不得狀不得"(명부득상부득);이름 지을 수도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따라서 마음은 고요하면서도 알고, 알기 때문에 못하는 일이 없으므로 `적지(寂智)'라고 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몸 어느 곳에도 실체로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공공적적'하고 `소소영영'한 것을 확실하게 보는 것이 깨달음이고, 그리하여 다시는 의심 없는 것이 성불입니다.

 

마음은 `공공적적'하여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물에 들어가도 썩지 않으며, 커도 큰 것이 아니며, 작아도 작은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소소영영'하여 큰 곳에 가서는 커지고, 작은 곳에 가서는 작아지고, 밝은 곳에서는 밝아지고,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워 지고, 일체 하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닫는 것을 `言下大悟(언하대오)' 또는 `直下大悟(직하대오)'라 합니다.

 

제6조 께서는 `금강경'의 "應無所住(응무소주) 而生其心(이생기심);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이 한 소절을 듣고 바로 깨달았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마땅히 머무는 곳이 없다'는 것은 `공공적적'을 이르는 말이며, 그러한 가운데에서 `마음을 내라'는 것은 `소소영영'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이말은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대로 쓰되, 주관(나)과 객관(대상,경계)이 없어져 모든 분별심이 사라진 무심(無心,淸淨心;하나된 마음;中道)의 경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의미적으로 볼 때 `공공적적'은 진공(眞空)과 체(體)와 정(定)에 해당되며, `소소영영'은 묘유(妙有)와 용(用)과 혜(慧)에 해당 됩니다.

이것은 모두가 한마음(一心)에 함께하고 있으며, 한마음에는 각(覺;부처)과 불각(不覺;중생),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등과 같은 모든 상대적인 것이 함께하고 있으므로 번뇌가 깨달음이며(煩惱卽菩提),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그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옳다-그르다, 좋다-나쁘다, 나-너, 높다-낮다, 행복-불행의 상대적인 마음이 각기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마음 임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서천(西天;인도)의 17대조사(祖師)이신 `승가나제(僧迦那提)'께서 제자인 `승가야사(僧迦耶舍)'와 함께 법당 주변에 있을 때 마침 바람이 불어 요령(풍경) 소리가 울리므로 스승이 제자에게 "무엇이 울리느냐?"하고 물으니 "저의 마음이 울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여, 그의 깨달음을 알아 차리고 법을 물려 주었으며, 동토(東土;중국)의 6조 `혜능(慧能)대사'께서는 두 스님이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깃발이 나부낀다' "바람이 나부낀다" 하면서 서로 말하는 것을 보고 "그대들의 마음이 나부끼는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두 경우는 참성품(本性;본래의 마음)을 보았는지?(見性;깨달음)를 가늠해 보는 선문답(禪問答)입니다.

 

마음은 본래 하나의 마음 밖에 없으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두가지로 나누어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나(我)라고 생각하는 인식작용으로서의 마음(假我;거짓나)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서 볼 수 있는 마음(眞我;참나)이 있습니다.

보고(눈), 듣고(귀), 냄새맏고(코), 맛보고(혀),촉감으로 느끼고(몸)하는 것은 거짓나의 작용 이므로 진실(法)이 아니라 자아의식(고정관념,알음알이)으로서 꾸며진 가짜입니다.

이것을 실상으로 착각하여 무상(無常;변하는 것)함을 보지 못하여 분별심에 빠져 자기에게 이익되면 가지려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려 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육신에 마음(정신)이 함께하고 있을 때입니다.

만약 눈이 보고 귀가 듣는다면 마음이 몸을 떠난 뒤에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 나의 마음으로 요령 소리를 듣거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면, 듣고 보는 나라는 주관(주체)적인 마음이 생기므로 요령 소리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은 객관적인 마음으로 대상(경계)이 되어 하나의 마음이 아닌 두개의 마음이 되므로 분별심이 일어나 헤아리게 되어 사람마다 틀리게 됩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참나의 마음으로 듣거나 보면, 요령소리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의 마음과 참나의 마음이 똑같은 하나의 마음이 되기 때문에 내 마음이 울리고 내 마음이 나부끼는 것입니다.

 

거짓 나의 마음은 항상 분별 경계를 만들어 그 대상에 집착하게 되어 마음이 대상에 걸리게(물든다)됩니다. 

참나의 마음은 나와 너의 모든 분별 경계가 만들어 지지 읺으므로 걸림이 아예 없습니다.

이것이 무애자재한 대 자유인입니다.    

 

거짓나의 마음에는 욕심(貪), 성냄(嗔), 어리석음(痴)이 있어 생각생각이 번뇌, 망상(無明)입니다.

분별심은 집착하게 하여 욕심을 일으키고,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화가나게 되며, 화가나면 반드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거짓나의 마음이 그대로 참나의 마음(眞如,如如,如來,佛性,淸淨心,本性,無心,平常心)이 됩니다.

따라서 모든 상대적인 것은 여기와 저기로서 장소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가 그 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마음(불교)공부는 시작과 끝이 한 점에서 만나는, 즉 자기집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모르고 더 편하고 좋은 곳을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결국 자기 집이 가장 편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본래의 집으로 돌아오는 고향 나그네와 같은 것입니다.

내가 본래 부처인 것을 모르다가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또한 나만 부처가 아니라 모든 것이 본래 부처임을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언어 문자로서 이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발심을 하여 일상 생활(지금, 여기에서, 자기의 일로서)에서 꾸준한 자기 노력(수행)의 결과로서 만이 얻어 지는 것이므로 `체득(體得)한다' 또는 `증득(證得)한다'고 합니다.

 

"스님 죽지 않는 주인공이 있습니까?"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야 아야다"

 

이 문답을 깊게 관찰해 보십시요, 기가막히는 법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음을 깨달으시고 "중생과 부처와 마음은 같다"고 분명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중생 이라고 하면 다 믿으면서, 당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면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꽃을 꽃이라 하고, 산을 산이라 하고, 허공을 허공이라 하면 다 믿는데, 이것들을 모두 마음이라고 하면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믿지를 않아서 해탈을 못하는 것입니다.

 

고려시대에 `수심결'을 지으신 께 어떤 스님이 물으시기를 "부처님은 어떤 분이 부처님 이십니까?"하고 물으니,

말씀 하시기를 "내가 바로 가르쳐 줄 수는 있는데 혹시 네가 믿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고 하시니

"확실히 믿을 터이니 가르쳐 주십시요" 하였습니다.

보조스님 께서는 "네가 바로 부처다"라고 말씀하시니,

그 스님은 내심 몹시 당황하였으나 믿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니 어쩔 수 없어, 다시 묻기를

"어떻게 하면 나의 부처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하니

보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림이 눈에 있으면 허공에서 꽃이 어지럽게 떨어지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어서 믿지 못하면 탐심, 분심이 생겨 한순간 부처를 지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탐욕과 분노는 마음 밖에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생깁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증득하면 화낼일도 없고, 원통할 일도 없으며, 두려울 일도 없습니다.

믿고 완전하게 얻어야 하며, 믿지 못하고 얻지 못하면 자기가 늘 가지고 있으면서도 쓰지를 못합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왔음을 모르는 것이 탐(貪), 진(嗔), 치(痴), 삼독(三毒)입니다.

 

봄 빛은 이 풀에 비추어진 것이나 저 풀에 비추어진 것이나 차별이 없어 평등 합니다.

그러나 봄에난 풀은 다 틀립니다.  이것이 인과(因果)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렇게 아푸고, 저 사람은 저렇게 아푸고, 오늘은 오늘대로 아푸고, 내일은 내일대로 아풉니다.

 

이 말은 아푼 시기나 모습은 다 달라도 모든 것은 인과(因果;因緣;業)에 의한 자업자득의 결과이므로 필연적 이라는 것이며, 아무리 사소한 일일 지라도 결코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봄풀은 봄빛을 여의고(떠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풀이 아무리 나왔다가 시들어도 봄빛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드린다면, 그 봄빛을 확실하게 믿는 것이 신심이고, 봄빛을 확실하게 보는 것은 증득(證得;體得;깨달음)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한번 말씀 드린다면, 우리가 보통 본다는 것은 나(我)라고 생각하는 거짓(허상) 나의 마음(주관적인 마음;꾸며내는 마음)으로 내 밖의 마음(眞我,참나;本性;실상)을 보는 것이 되므로, 마음으로 마음을 보는 것이 됩니다.

 

내 안의 허상의 마음이 허상임을 안다는 것은, 내 밖의 실상의 마음이 실상임을 알아서 두마음이 아니라 한마음(一心)임을 보는것이며 이것을 본래의 성품(마음)을 보았다고 하여 견성(見性)이라 합니다.  

흔히 불교공부를 마음공부라고 하지만 모든 종교공부가 마음을 바꾸는 공부이므로 마음공부입니다. 

 

마음공부는 마음을 찿는 것도 아니고, 본래의 마음은 청정하므로 마음을 닦는 것도 아니며, 마음을 잘 쓰는 것을 배우는 공부입니다.

마음을 잘쓴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一心;一體)임을 알고 나만 이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이익되게 하는 삶(中道의 삶;願力의 삶)을 살아 가는데 있습니다.

 

그 실천 방법으로는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의 일"로서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스승과 제자 스님이 먼 길을 가시다가 물이 제법 거칠게 내려가는 냇가에 다달았습니다.

한 여인이 물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자 스님은 여인 인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때 스승이 여인을 업고 물을 건네준 다음 다시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한참을 길을 갈 때 까지 제자는 스승이 여인을 아무 거리낌도 없이 등에 없고 물을 건네준 것이 못마땅 하기도 하였으며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수행자는 여인의 몸에 손을 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어째서 등에 없고  물을 건네 주셨습니까?"

그러자 스승께서는 "나는 물을 건느고 내려 놓았거늘 너는 아직도 내려 놓지 못하고 있느냐?"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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