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인가 2003년의 일이었을게다. 누군가의 소개로 나는 영화 시나리오 공모를 받는 사이트에 접속했고, 그곳은 심형래 감독의 D-war 의 시나리오 공모 사이트였다. 전체공개여서, 누군가가 올린 시나리오 컨셉과 시놉등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나도 호기심에 따로 끄적이는 한편, 게시판에 올라오는 시놉들을 보면서 모니터링했었다.
심형래 감독은 당시 D-war의 시나리오에 이무기나 한국적 요소 등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온갖 공룡들이 총 출동하여 인간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모호한 컨셉만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약 한 달이 넘는 모니터링을 실망 속에서 끝내버렸으며, D-war가 아무리 잘 만들어져 봐야 용가리보다 CG가 조금 나아지는 정도일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다. 당연하다. '온갖 공룡들과 인간들의 한판 승부' 라는 컨셉 자체를 아예 내놓고 있는데,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무난한 시나리오라도 나왔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심형래 감독도 이 영화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나리오가 상당히 빈약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시나리오 공모도 벌이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D-war의 시나리오 캠페인을 둘러본 결과, 2000~2002년사이에 발악적으로 증가한 Low level 판타지를 쓰는 소년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무협을 좋아하는 Fusion low 판타지 소년들까지 가세했고, 제대로 된 시나리오 작가나 혹은 작가 지망생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이러니, 제대로 된 시나리오가 나올 수가 없고, 시나리오가 허섭스럽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이런 시나리오에 배우들이 몰입해서 연기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D-war 개봉 전후로 심형래 감독은 가장 잘 먹히는 홍보전술을 택했다. 그 자신이 직접 무릎팍 도사, 무한도전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의 휴먼드라마를 전파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오래된 전설이다' 라고 프롤로그가 뜨는 대목에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밝혔고, 엔딩곡으로 아리랑을 넣자고 고집을 부렸다고. 또한, 개그맨에서 대형 영화감독으로 변신하기까지 눈물겨운 고초를 설법했다. 또한 과거 최고의 개그맨이었던 영구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듯 유머와 몸개그를 선보여 수많은 중년 팬들을 추억 속으로 몰아넣었다.
당연히, 이를 본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심형래 감독이 마치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드는 한류의 선봉장' 처럼 느껴졌을 게다. 거기에 더해서, 엄청난 우리 돈이 들어간 영화가 미국 1500개관에서 뜨기만 하면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게다. 애국심. 혹은 국수주의. 우리 것에 대한 광적인 집착. 박찬호와 김병현의 직구 시속과 승수에 환장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깊이 살펴본 결과, D-war를 보고 옹호하는 관객들은, 결코 D-war의 작품성에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심형래의 휴먼드라마에 감복을 받았으며, 할리우드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 국산 CG기술에 흥분한 것이다. 영화 'D-war'에 흥분한 사람은 없다. 솔직히 말해서, 부라퀴와 이무기의 한판 대결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던가? 아니면 벽안의 배우들이 여의주를 놓고 벌이는 운명에 슬피 공감한 사람이 있는가?
D-war 찬반논쟁, 100분 토론에서의 진중권의 혹독한 맹비난, 네티즌들의 악플논쟁은 모두 '우리가 그토록 믿고 있던 우리의 것' 에 대한 허황된 자신감이, 끝까지 판타지로 남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은 강박적 콤플렉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이미 D-war가 좋은 영화네 나쁜 영화네를 떠나서, D-war를 '한류 국수주의' 때문에 제대로 평가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난한다.
찬성론자들은 우리 돈 수백억이 들어간 우리의 영화가, 이제 겨우 겉보기에 할리우드와 구색이 맞아가는 이 시점에서 망해버리면 어떻할 거냐, 심형래 감독이 그토록 고생하며 만든, 피눈물의 영화를 그런 식으로 너희 관점으로 무시해버리면 다냐, 화를 내고 있다.
D-war를 조금이라도 나쁘게 말하면,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영화 평론가들은 조바심을 내며 '극장에서 판단할 일' 이라며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것이 올바른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야, 글쎄. 난 아니올시다. 비평은 비평대로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싶은 사람대로 극장가서 보고. 비평도 한 번 보고, 댓글도 한 번 남기고, 이런 식이 되면 모를까 말이다. 이것은 거의 집단적인 광기에 가깝다. 여러분이 진정 우리의 영화 D-war와 우리의 휴먼감독 심형래를 사랑한다면, 나라를 사랑한다면, 그냥 영화관 가서 연인과 함께 속닥거리며 보면 될 것이 아닌가? 남들이 헐뜯고 개소리를 짖든 말든.
네티즌들이 이렇게 광분하는 이유는 비평가들이나 작품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비판이 절대로 개 짖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진짜 개소리로 느껴진다면, 이렇게 광분하기보단 그냥 코방귀 한 번 뀌는게 고작일 것이다. 우리 내면에 '한국의 것' 이 최고라는 빈약한 판타지가 깨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닌가?
여러분들이 진짜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D-war가 좋네 마네 집단적 광기를 조성하면서 특정 여론을 역적으로 몰면서 허무한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진중권이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부터 한 번 알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사람은 군사 정권과 혹독한 파시즘의 시대에도 곧죽어 올바른 말을 해온 민주 인사이자 논객이다. 신랄한 비꼬기와 비속어가 들어간 비판은, 그의 스타일이지 D-war를 너무 싫어하거나 심형래 감독에게 악의를 품어서가 아니다. 이 말이 의심된다면 그의 책이나 논평을 한 번이라도 보기 바란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 땅에 없던 시절에도 그렇게 말해온 사람이다. 어디서 본 적 없는 사람이, D-war를 욕하니까 영화평론가들은 다 찌질하네 남 잘되는 꼴 못 봐 저러네,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가 잘 되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우리나라 사람이 잘 되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 그러나 그럴 만한 영화가 아닌 영화가, 단순히 애국주의와 인간주의로 부풀려져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한다면, 그것은 마약을 맞고 혼자 좋아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반성합시다. 네티즌 여러분. 집단적인 광기는 반드시 어떤 것들을 파괴하는 법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