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문화연구원 강동민 이사장님의 글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글중에서 ....
안호상 박사가 문교부장관 시절 대만을 방문하여
“임어당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민족은 한글을 사용하여 너무나 편하다고 하며
한글은 세계의 어떠한 문자도 마음대로 발음할 수 있는 편리한 문자임을 자랑하면서
한자의 어려움을 한글과 비교하며 말했더니,
임어당 선생이 정색을 하며 말하길
“한문도 동이족인 그대들의 선조가 만든문자 인데 왜 한글만자랑하느냐”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 역사상 문자를 공식적으로 4번씩이나 만든 민족은 우리민족 밖에없다.
세종대왕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창제하실 때,
가림토문자 38자에서 20자나 모방 하였다는 사실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서 밝혀져 있으니 입증된 셈이다.
이두문자 또한 선조들이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니,
더 이상 신라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이두문자의 창시자“설총”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일본의 오래된 절인 이세신궁이나 중국의 오래된 사찰 등에서 가끔 발견되기도 하는
가림토문자 또한 선조들이 만든 문자이다.
가림토문자(38자) 를 그대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한글 28자를 옛날처럼 전부 사용하게 되면
짐승의 소리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 한.중.일이 같이사용하는 한자(漢字)도
기록에 의하면 동이족인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契) 자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호상 박사가 문교부장관 시절 대만을 방문하여
“임어당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민족은 한글을 사용하여 너무나 편하다고 하며
한글은 세계의 어떠한 문자도 마음대로 발음할 수 있는 편리한 문자임을 자랑하면서
한자의 어려움을 한글과 비교하며 말했더니,
임어당 선생이 정색을 하며 말하길
“한문도 동이족인 그대들의 선조가 만든문자 인데 왜 한글만자랑하느냐”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 은 공식적으로 네 번(한글.이두문자.가림토문자.한자)씩이나
문자를 만든 세계 최고의 문화민족 인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선조들의 후손됨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겟는가 ?
현재 일본의 극우세력들 즉 황국사관에 젖은 사람들이나
수십년간 한번도 바뀌지 않고 정권을 쥐고있는 자민당 에서는
마치 일본 사람들이, 섬에서 자생 하였거나,
터키나 유럽부근으로부터 와서 일본을 건국하였고,
지금 사용하는 말 또한 우랄알타이계 와 다른 것으로서 독특하다고 선전하며
천황도 만세일계라며 거짓말을 하고있다.
그러한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정치인들이 일본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된다.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해의 뿌리라는 뜻의 한자표현이며, 국기 또한 붉은 태양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대략 서기 670년경에 정해졌다고 일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당시에는 이라고 표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이라고 읽은 것이 아니라, 라고 읽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서기 750년 무렵에 편찬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 萬葉集(만엽집)에 실려 있는 노래에
한자로 이라고 표기돼 있는 모두가 라고 읽혀져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인다면, 는 지금의 경북 고령지방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우리의 고대부족국가(우가야)의 국호로,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지금의 지방에 정착하고,
그지역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 우리조상들이 붙인 이름이다.
지금 그 지역을 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우리조상들이 그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가야인은슬프다“중에서: 박병식 저)
참고적으로 말하면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유일할 정도로 태양을 좋아하고 숭배하며,
태양 그 자체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스스로를 “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원래는 “라”였다.
“라”에서“ㄹ”이“ㄴ”으로 소리바꿈하여 “나”로되었다.
즉 “라(나)”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이집트” 에서는 태양신을 말한다.(중략)
태양 의 옛표현 말 은 “아.하.라. 해” 였는데 아버지의 “아” 와 같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민족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인 “아리랑”은
바로 “태양처럼 높으신님, 즉 하나님” 을 뜻하는 순수 우리 고어 인것이다.
일본사전에 국호 “일본(日本)”( 태양의 뿌리 라는 뜻 ) 이 말은
“삼한 에서 사용하든 말로써 그뜻이 아름다워 만년에 변치 않을 국호로 삼는다.” 라고 적혀있다.
그러니 일본말 전체가 우리의 옛가야 말인 것은 분명하며 우리말과 똑같은데,
모음이 3개(ㅡ,ㅐ,ㅢ) 빠져 탈락함으로 인하여 변화된 것이다.
(#) 예
1. 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 =日本:조로조로
2. 물건을 슬슬 끌어당긴다. =日本:스루스루
3. 터벅터벅 걸어간다. =日本:도보도보
요즈음 중국 공산당정권이 우리민족의 상고역사를 훔쳐가서 자기네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 과 “탐원공정” 등 몇 가지 공정 들을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밑작업을 해왔다는 것이 최근에서야 들통 난 것이다.
왜 그들은 그들만의 역사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
그이유는 간단하다.
한족들이 아무리 땅이 넓고 큰 나라 라고 잘난 척해도,
역사가 훨씬 길고 오랜 문화선진국인 조선족의 수준으로 보면
항상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역사를알고, 자부심이 강하며,
언제 또 그들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중국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중국역사 이전의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는 유일하게 조선족 뿐이며
이러한 기록들은 중국의 제일 오래된 풍속지리서인 “산해경”과
명나라 사람 오명제의 “조선세기“와 청나라 때 7만 9천여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사고전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주변국에서 우리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으니,
우리 기록들이 불에 타고 도난 당하여 부족한 사료들을 그들이 증명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도리어 고마울 따름이다.
또 중국의 삼국시대(조조의 위나라.유비의 촉나라.손권의 오나라) 때 기록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 부여 에 관계된 기록들을 확인하면 부여의 국력이 나타난다.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 사람들은 흰옷, 밝은 옷, 을 즐겨 입고(목화무명.실크)
외출할 때는 금,은 보화로 치장을 하며 신은 가죽으로 만들어 신고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무음곡을 즐기고
국중대회 를 하는데 이것을 영고 라고 하더라“.
이때부터 우리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하였으며 주변 나라들의 부러움에찬 기록들을 볼 수가 있다.
또한 한나라(한고조 유방)가 중원을 통일하고 난 후에도
매년 흉노에게 조공을 바쳤는데 심지어는 공주와 왕후 까지도 조공 하였다.
중원의 패자인 “한“나라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
상상해 보시라 !
그러한 막강흉노 까지도 “부여”에게 조공 하였는데,
흉노왕이 가장 아꼈든 천리마와 왕비(알씨)까지 바쳤다고 기록되어있다.
(사기 권백십 흉노전)
이러한 부여도 단군조선으로부터 생겨난 나라이니 단군조선이 얼마나 강력하였을까?
여기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단군이 나라를 세운 때가 “치우천왕”보다 약400년 후의 일인데,
중국의 상고시대 나라인 “하. 은(상). 주” 까지도 단군조선에서 국가 성립에 깊이 관여하였음을 알수있다.
은나라의 마지막왕인 주왕이 “달기”에게 빠져서 정치를 타락하게 하여
그국민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을 도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도록 해주었으니 이 모두가 단군조선 때의 일이었다.
기원전 1766~1123년경의“은” 나라에는 단군의 영향으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누가 잘하느냐가 기준이 되었는데,
은나라의 제후국 중에 “고죽국” 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고죽국은 동이족들의 나라이기도 하였는데,
아버지인 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셋째아들인 “숙제” 를 보고 임금을 하라고 하였다.
숙제가 생각할 때 큰형인 “백이”가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한데
왜 아버지가 나를 임금을 하라고 하셨을까?
형 “백이” 에게 왕을 양보하니
형 또한 동생 “숙제”에게 “아버지께서 너를 임금 하라고 하였으니
동생이 임금이 되어야한다”. 면서
서로 양보하다가 “부끄럽다”고 하며 둘 다 산으로 들어가버렸다.(백이숙제)
그래서 산에서 나물을 캐먹으며 살다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후세인들의 입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이렇게 “왕”도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씨 는 우리민족 의 근본 마음인 것이다.
그 후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말하길
“중국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면” 조선(동이)에 가서 배워오고 ,
조선(동이)의 세제는 1/20 세제라서 백성들이 전혀 세금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살고,
임금이나 백성이 서로 한 몸의 손발처럼 아끼고 위하며 정치를 하였기에
그때의 정치를 이웃나라 에서도“진성인 의 정치” 라고 하였다. (맹자..)
이렇듯 단군(계급의명칭) 은 왕 이라는 명예를 떠나
백성과 한 몸 한 뜻이 되어 생활하였기에
유럽이나 이집트의 왕이나 진시황 처럼 백성을 노동으로 괴롭히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모든 건물들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짓고 살았기에
지금도 특별한 건물들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그 후 이들 대표들이 세상을 떠나면 후인들이 묻어주고 제사 지내는 풍속은
존경의 표현으로“고인돌”을 만들었든 것이 후세에까지 알려지고있다.
(영국의 “스톤핸지”도 고인돌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는 외국학자들이 많다.)
전세계 약70%이상의 고인돌이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삼성, 산동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보통 기원전 8000년과 4000년 사이가많다.
“말 과 문자“의 시작이 여기 이듯이 인류 문명의 시작도 이곳이 아닐까?
유럽에서는 청동기시대를 기원전3000년을 기준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민족의 역사 시작싯점이 얼마나 앞서고 훌륭했든 것인지 알수가있다.
광복전 조선시대 때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중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민족 을 쇠뇌 시켰던 말에
“사촌이 논을사면 배가 아프다”
“조센진은 명태처럼 패야 맛이 난다“
”엽전처럼 앞뒤가 다른놈“
”아침저녁으로 생각이 다른놈“
”당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반도인“ 등....
이 같은 말들은 본래 우리들의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것으로써,
우리는 친구가 월셋방 으로 이사를 해도 집들이를 하였고,
사촌이 출세하면 마치 자기가 잘된 것처럼 느끼며 집안(가문) 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당파가 많았든 조선조 때에는 서로 조심하여 청백리가 가장 많았으며,
삼족을 멸하느니 구족을 멸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귀양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귀양가서 동의보감, 추사체, 자산어보 등 공직생활 중에
시간이 없어 못했던 귀중한 일들을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많은 사화가 있었지만
정작 처형당해 죽은 사람은 모두 28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인간을 사랑하는 홍익 인간정신이 남아 있었다는 증거 이기도하다.
모함을 받은 주인집 자식을 자기 자식과 바꿔서 등에 업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평생을 살다 죽기 전에 실토하며 양 아들의 성씨를 밝혔던 사실 등은,
주인과 하인 관계 이상의 가족같은 신뢰와 사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세에 일제강점기 35년을 견디며 민족정신이 파괴되고,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는 불신과 살아남기 위해 남을 헐뜯는 비굴한 나쁜 습관만 남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6.25 동난 까지 겹치게 되니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려
알몸이 된 우리민족의 수난은 단군이래 최악의 비참한 상태가 되어있다 .
하지만 지혜의 민족으로서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앞선 유럽의 100년 발전을 우리는 불과 몇 십년 안에 따라잡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다이나믹하고 신바람의 민족,
아세아의 종가집 답게,
우리의 드높은 긍지,
거대한 저력으로,
다함께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이끌어 나가며,
힘차게 한민족의 웅지를 펼쳐나가자 !
2007.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