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이 다시 글을 기고했다. 그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니 주장을 펼 자유가 있는 것이다. 괜히 지나치게 흥분하여 무의미한 비방전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는 또 대중에게, 도대체 누구를 향한 고함인지 모르는, 시비를 걸어왔다. 지나치게 의도적인 도발이라 씁쓸하다. 진정 '파이터'로서의 삶에 익숙한 사람이다.
일일이 대응하는 것도 그의 싸움유도에 말려들 뿐. 그냥 웃고 마는 게 나을 듯 싶다.
대중(일반적인 관객)들의 불만이 표출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디워'라는 문제작(진중권덕분인지, 일부 몰지각한 감독과 제작자덕인지 외적인 의미로)을 관람한 관객들은 만족과 불만족으로 나뉘었다. 지극히 당연하며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이런 식의 평가는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관객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단점과 장점에 대한 판단으로 비중의 차이에 따라 갈릴뿐이다.
개봉 이전의 평가를 보자.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진씨의 말대로 분명 부족한 점이 많다.(그렇다고 형편없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정도로 획일적일 수 있을까? 이것은 이미 평론집단이 오히려 다양성의 관점이 부재되어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식의 획일적 평을 본적이 없다. 그들 자체부터 다양성에 대한 소양이나 인정이 없다는 의미다. 이것이야말로 '쏠림현상'이다. 다른 평론가들이 저렇게 했는데 내가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평은 하면 바보가 된다. 정도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왜? 그들은 항상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 의미라는 것이 틀에 매어 있었던 것이다. 사회고발, 비판 등의 의미들만 주로 찾던 사람들이 오락영화에서 똑같은 의미를 찾으려니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심할 정도이다.
다양성의 면에서만큼은 대중이 더 앞서있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각종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원색적인 비난들도 많지만 분명한 것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다양한 관점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쏠림현상'이었다. 어찌하여 그들은 단점만을 봤는가? 장점은 보이지 않았는가? 보지 않은 것인가? 대중은 칭찬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이 결여된 그들의 평론에 동의할 수 없다.
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비판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비판이 있어야 발전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냉정한 비판이 아니라 '쏠림현상'에 의한 비판은 그들이 가지는 자부심을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개인이지만 스스로 사회의 조언자로서 행동한다. 누가 인정했냐. 안했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총대를 멘 것이다. 문제는 총대를 멘 만큼 냉정해져라. 몰려다니지 말고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은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진중권의 우려는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서로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얘들아. 평론좀 하게 내버려둬!'라는 외침은 그가 가진 편협한 안목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 스스로 느낄 것이다.
평론가들은 냉정해야 된다. 쓴소리하자. 그러나 모두가 똑같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들 스스로 한 집단인 것은 아닌가? 평론가가 모두 같은 성향의 집단이라면 평론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건 그들의 잣대로 사회를 변형시키려는 오만일 뿐이다. 너희들도 다양해져라.
진중권식으로 '디워'가 평가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모두가 같다.는 식의 논리는 그들 집단의 폐쇄성을 증명하는 것 뿐이다. 그건 당신의 평론일 뿐이다. 누구나 동조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평론은 냉정하지만 다양해야된다. 나는 '디워'가 가지는 장점이 있다는 의미를 전제로 두었음을 밝힌다.
진중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을 해소하고 인터넷을 보기 바란다.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존중하는 태도도 없이 주장하는 것은 평론가가 아니라 단순한 고집쟁이일뿐이다. 고집쟁이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떼쓰는 모습으로만 비춰짐을 의심하라. 비약하는 과대망상도 접어두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