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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평론에 대해 올린 나의 글

이은정 |2007.08.13 20:06
조회 51 |추천 0

드디어 평론가의 모습으로 처음 나오셨군요...많이 곤란하셨던 모양이에요. 말씀대로라면 '어린이'수준의 대중에게 친절하게 가진 지식을 자랑하며 열심히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겠어요. 진작 이런 모습으로 나오셨어야지요. 비평이 아닌 비난의 잣대로 휘둘러 상처 받은 많은 사람에게 사과하는 마음도 조만간 글에서 보길 바랍니다.  먼저 상당히 전유물의 용어를 사용해 압박해 오셨는데요.  먼저 치밀하게 분석한 내용에 대해 일부 공감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반진중권 여론조차도 이 내용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만을 고집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는 가는 바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는 다른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애국코드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분명 심형래 감독의 숨은 의도입니다.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꿈꾸고 열정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니까요. 하지만, 그 다음 단락에서 별 설정없이 미국인으로 환생한 스토리를 '비판'하셨는데 도제 스님의 환생을 그린 '리틀 부다'에서도 다른 인종 혹은 국가로 환생한 것에 특별한 개연성은 없어 보입니다. 윤회라고 하는 것은 개연 아니, 그보다 강한 필연의 결과일 수 있으나 그 깊은 속을 다 설명해 내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전설 혹은 문화를 소재로 택한 이상, 헐리우드식 영화를 만들었어도 개연성으로 다 설명하면 이상한 것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스토리를 옹호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탄탄하고 치밀하지 못한 스토리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의견은 조금씩 수렴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까요? 비판 일색이 아닌 비난 일색이 너무 많은 감정의 분노를 일으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또한 비판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관객 혹은 대중을 모독했다거나, 지나치게 객관성을 잃은 저급한 표현을 썼기 때문에 어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몇가지 공격 받을 곳이 있다고 앞서 말했는데요. 관객이 울지 않자 용이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때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 대해 학습, 혹은 연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드라마 제목에서 왜 '용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쓰는지도 생각해 보십시오. 자고로 운명적으로 용이 승천할 때 흘리는 눈물은 비가 되어 세상을 비옥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500년이나 더 기다려 자신의, 혹은 하늘의 운명대로 용이 된 이상 세상을 위해 흘렸어야 할 눈물이며, 자신의 승천을 위해 두 번이나 고통을 겪고 희생을 경험한, 그리고 이별하게 해야할 운명의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슬픔의 눈물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리랑의 음악 또한 생뚱 맞게 생각하는 의견들이 있는데, 아리랑 음악이 가지는 우리나라의 정서적인 부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기다림과 이별의 슬픔, 안타까움 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으로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효과적인 설정으로 칭찬 혹은 무시할 수 있는 부분조차 유치한 부분으로 치부하는 것은 감독의 미숙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애정을 가지고 상징성을 제고해 주는 여러 평론가와 관객의 몫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한류를 목표로 하는 수많은 애국코드, 민족코드의 작품들이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과열되어 있는 시장 환경에서 유독 '디-워'에 대해서만 날을 세워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단지 세계시장을 목표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점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영화가 세계로 나갔을 때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성향의 자국 홍보 영화의 색채로 비춰지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겠지요. 외국에서조차 한류 드라마나 충무로의 영화가 식상한 조폭 영화나 뻔한 삼,사각 관계의 애정 영화라 더이상 볼 것이 못된다는 비난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차라리 우리는 솔직하게 애국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신선한 소재의 '디-워'에 대한 시도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점도 제고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결코 그런 소재나 의도로 인해 함부로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표현을 남발해서는 안되며, 아직 대중의 인식을 이해하거나 분석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애국주의 마케팅 때문에 성공하고 있는' 디-워라는 언론 뉴스의 보도는 불필요한 수식어의 남발 뿐 아니라 정확하지 않은 인과 관계로 사실의 기정화를 시키는 언론의 무식하고 경솔한 행동을 보인 꼴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언론이라는 대중 매체의 의식 조작에 대한 불신이 불거지고, 영화 상영 초반부터 평론의 수준 이하인 표현과 평론에 임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인 객관성의 결여, 상대반의 의견 존중, 다원성의 인정 등의 결여로 인해 관객 및 대중들은 그 어떤 평론에 대해서도 설득당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인정하지 못하다 보니, '디-워'의 옹호론의 기류에 합세될 수 밖에 없었겠죠. 옹호론의 기류는 적극적인 정서적 옹호자뿐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테죠. 따라서 이제껏 밟아 왔던 실수들....즉 서태지와 아이들에서의 비평가들의 실수와 번복들, 월드컵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뒤늦게 분석하기 시작한 언론계와 학계들에 이어 이번에도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의 부류가 아닌 옹호론자들을 애국주의 마케팅에 이끌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동정심에 자비를 베푸는 정의 민족으로 쉽게 정리해 버렸으니 말입니다.

신적 해결에 대해서도 수많은 영화들이 밟기도 한 소재나 주제겠죠. 평론가의 입장에서는 난이도를 논할 만한 꺼리임에 틀림 없습니다. 저는 신적 해결에 대해서는 오히려 좋은 결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전설, 용의 승천에 대해서 인간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면 오히려 제가 듣고 보고 자란 그 전설은 빛을 바랬을지 모릅니다. 대신 어떤 분의 의견처럼 주인공은 처음부터 이무기었으니 이든과 새라의 비중을 차라리 줄이는게 나았을지 모른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편집이나 스토리 구성면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원천적으로 아주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일부는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 있으나 미흡함으로 조금 고쳤으면 하는 것인지의 정도만이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요. 그밖에 인물들간에 이뤄지는 씬들 사이에 비약과 생략이 많은 것에 대해서는 아쉽습니다. 그러나 생뚱맞게 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대중의 심리나 정서도 이해해야 겠습니다.

주인공의 갑작스런 키스신이 스토리 전개상에 빈약한 기반 위에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황' 혹은 '당혹'스러움을 일으킬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논리적 인과에서는 부족하지만, 우리만의 문화 코드로 수긍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한다면 이렇습니다. 원래 윤회, 환생의 개념에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끌림이나 행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전생에서의 인연이 끊기지 못해서입니다. 그걸 좀더 심형래 감독이 잘 풀어냈다면 손쉽게 이해하며 보았을 수 있었던 것을 세밀한 편집 미숙으로 인해 이런 질타까지 받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선한 이무기가 갑자기 나타나 구해준 것에 대해서도 왜 진작...이라는 표현을 보았는데 부라퀴는 결정적인 순간-새라의 20번째 생일- 훨씬 이전에 등장해 혼란을 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이무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허무하게 스토리를 신적 해결로 마감했는가..목걸이나 용 문신이 그 순간에 뜬금없이 힘을 발휘하는가에 대해서는 스토리 자체가 엉망이거나 형편이 없다기 보다는 목걸이나 용 문신이 효력이나 전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언급, 혹은 선한 이무기가 왜 미리 나타나 사태를 수습해주지 못하고 결정적인 그 순간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더 훌륭한 내용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CG의 허술함 역시 화려한 찬사에 가려져 논하지 않았을 뿐 저 또한 간과하지 못하고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프로그램에서 '옥의 티'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처럼 어느 영화나 저지르기 쉬운 실수이고 여러 어려움을 감안하고 우리나라에서 시도된 장르의 영화이니만큼 유독스런 날을 세워 말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애정론과 동정론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다른 영화에서는 묵과했던 날을 '디-워'에서만 세우는 것은 더 좋은 영화로 거듭나라고 하는 격려도 채찍질도 아닌 '객관성의 결여'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신뢰가 실추되면 어떻게 인식하게 되는지의 논리적인 구조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이상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CG가 플롯을 삼켜 먹거나, 영화 미학이 밟히는 듯한 감독의 의도로 마치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일으키는 명제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잃습니다. 많이 차분해지고 정황의 눈치를 살피시는 것 같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평론을 해볼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발언하는 것도 토론의 기본이라고 하지요? 인터넷상의 격분한 댓글이나 게시판이 아니라도 잘 된 평론의 글과 개인 소견을 적은 글들이 많습니다. 경청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대중보다 나은 평론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블로그나 토론의 장에서 누리꾼의 표현처럼 같은 수준으로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대중은 수많은 지식인을 포함한 집단입니다. 지식인과 대중이 물과 기름으로 분리된 계층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댓글을 작성하는 공간에서 확인하는 화면창이 작고, 제가 쓴 글을 첨삭하는 과정이 불가능하여 오타가 많거나 쉼표를 다수 생력하여 읽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는 점 양해합니다. 충분히 수정하여 보실 수 있을 것이라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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