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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큐 파티

김종근 |2007.08.14 03:47
조회 109 |추천 0

  아침부터 김씨에게 전화가 왔다.

  "조사장, 뭐하시나?"

  이 사람은 나를 '사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사장은 아니다.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벌써 대학 졸업 후 벌써 2년 째 구직자라는 단어가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임에 불과한 백수인데도, 김씨는 나를 항상 '조사장'이라고 부른다.

  김씨가 나를 조사장이라고 부르는 된 것은 그가 저번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부터였다. 내가 생활비가 없어 옥션에 때묻은 구닥다리 전자제품 몇개를 팔려고 올려놓은 것을 보고 신기해하더니, 자기물건을 파는 사람은 사장될 자격이 있다며 그 다음부터는 꼭 조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빨래에 피죤 좀 담궈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네는 항상 기다리는 사람인가?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을 기다리지는 않네."

  "..."

  김씨는 항상 이런식으로 어이없는 말들을 지껄이지만 그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기력의 낭비임을 잘 아는 나는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다.

  "할 일 없으면 우리 집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나 하는 것이 어떤가? 마침 돼지를 좋은 걸 하나 잡아와서 말이야"

  안 그래도 마당에서는 고기굽는 냄새가 난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해변에서나 입는 노란색 반바지에 다 늘어난 흰색 런닝셔츠 차림을 한 김씨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면장갑을 끼고 작은 마당 가운데에 볼품없는 평상에 앉아 부르스타에 삼겹살을 올리고 있었다.

  "어이 조사장~"

  "썬그라스가 멋지시네요."

  "하- 그래도 모처럼만에 바베큐 파티인데 갖출 것은 갖춰야지. 아메리칸 스타일의 완성은 선-그라스."

  "아 그래도 집 앞 마당에서 썬그라스까지는... 좀... 아무튼 같은 집 살면서 전화 좀 하지 마십쇼. 한번 크게 부르면 될 것 같다가..."

  김씨와 나는 같은 집에서 셋방살이 하는 처지이다.

  "조사장~"

  "..."

  "조사장~!"

  "네... 회..장님..."

  그가 조사장이라고 부르면 나는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면 그는 곧 만족한듯이 웃어보인다.

  "자네는 항상 불만이 많은 것이 문제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말야. 그런 사소한 불만들은 말이야. 접수가 안된다는 것이 문제네. 처리가 안되는 불만사항은 언제나 미결상태로 남아있기 마련이거든. 그러니 불만이 더욱 쌓여갈 수 밖에...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생겨도 그 작은 불만들 때문에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말이야. 그러니 내가 자네를 불러서 이렇게 바베큐 파티를 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겠나? 내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유기농 야채들을 준비하는 동안 자네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그 불만을 속으로 좀 태워보시게."

  내가 고기를 굽고 있는 동안 그는 옥상 안집 주인의 텃밭에서 상추와 고추를 따가지고 왔다.

  "다 좋은데, 왜 고추장 같은 것은 없습니까?

  "좋은 질문이네."

  "항상 우리가 사물을 대할 때는 그 본질적인 모습을 살피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 이미 우리에게는 고추가 있는데 고추장이 있을 필요가 무어있나? 고추장을 먹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고추는 실재하지 않는 개념에 불과해. 그에게 아무리 고추에 대한 말을 해도 그들은 시뻘겋고 걸죽하게 끈적거리는 고추장을 떠올릴 뿐이거든. 하지만 자네나 나와 같이 좀 더 여유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물의 본질과 개념의 최초 순수한 의미에 좀 더 겸허하게 대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

  그도 나와 같은 백수 신세이지만, 그와 같은 처지의 나를 조금 다른 의미에서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그런 의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김씨는 지금과 같이 기계적으로만 이루어진 사회 구조속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처사라며 일장 연설을 토했었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나는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바베큐 파티라고는 하지만 무언가 빠짓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이제 알겠네 그려. 허허 마침 저기 파티걸이 오는구만."

  김씨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2층에서 주인집 아주머니가 상기된 얼굴을 가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남이 힘들게 키운 걸 허락도 안맞고 맘대로 훔쳐가면 어떻게 해? 정말 도둑놈들 같으니라고, 방세를 제때 내기를 하나 뭘하나? 생건달 날백수에 이제는 도둑질까지해?"

  주인 아주머니는 김씨의 얼굴 바로 앞으로 삿대질을 하며 거칠게 몰아부쳤다. 하지만 욕은 하지 않았다. 김씨는 이것이 주인 아주머니의 매력이라고 했다. 세상에는 가짓 것에 걸맞는 품위와 교양이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데 그에 말에 의하면 주인 아주머니는 딱 필요한 만큼의 교양이 함양되어 있어 오우너 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허허... 부인 무언가 오해가 있으셨나 봅니다. 상추와 고추가 우리를 필요로 했고, 우리도 마침 그 친구들이 필요한 참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간절히 원할 때 누군가 한쪽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부인이 부모의 심정으로 자식같이 그네들을 대하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도둑이 되어야 한다면 부인을 따라나서게끔 만든 그 열렬한 마음으로 부인을 사랑하던 남편도 도둑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게 됩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남편 이야기를 꺼낸 것은 김씨의 잘못이었다. 김씨의 쓰잘데기 없는 말도 왠만해서 잘 받아 넘겨주는 주인 아주머니도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김씨가 가져온 상추며 고추들이 담겨진 바구니를 김씨의 얼굴에 집어 던져 버렸다.

  "그 인간 이야기를 꺼내? 흥! 아무튼 한번만 더 훔쳐먹어봐! 아주 콩밥을 먹여줄 테니깐!"

  주인 아주머니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나섰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남편은 아주머니를 두고 노름에 미쳐 몇 달간씩을 집에 돌아오지 않았었고, 최근 10년 동안은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슈퍼마켓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옆 마을에 큰 노름판에서 노름빚을 지고 도망다니다 그 패거리들에게 잡혀 마을 뒷산에 묻혀있다는 것인데, 다른 이웃주민에게도 같은 말을 몇번 들었던 걸로 보면 영 터무늬없는 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어찌됐든 이십대 후반부터 과부팔자가 되어서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가 된 딱한 여자였다.

  아주머니는 아직도 성이 덜 풀렸는지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 불판을 걷어차버리고는 씩씩 거리며 올라갔다. 김씨는 얼굴에 붙은 상추를 몇개 띄어내며 늘어난 런닝구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허허. 오늘은 부인이 기분이 조금 안 좋은 것 같네. 그래도 이정도라면 다행이네. 저번 겨울에는 김장김치 포기로 한 번 맞은적이 있었는데 얼얼한 얼굴 위에 까칠하고도 촉촉한 고추가루의 감촉이 참 신선한 충격이었지. 다음에 그 얘기를 좀 더 하기로 하고 오늘 파티는 이쯤에서 끝내세."

  그도 그럴것이 이미 더 구울 수 있는 고기가 없었다. 아마 한 반근정도 사온 것 같았다. 그는 내 어깨를 아버지가 아들 다루듯 몇번 두둘기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written by F.L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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