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던 백범 김구 선생님은 해방된 이후로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여 이승만등 정적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으로 가서 김일성과 회동한다.
1948년 4월 22일 아직 새파란 젊음에 혹도 아직 나지 않았던 시절의 인민복 입은 소련파 공산주의자 김일성과 두루마기 차림의 백범 선생님이 한 컷에 잡힌 희귀한 사진...
본명 김성주로 소련 공산당원이던 젊은 김일성은 일제하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50이 넘어 백발과 흰수염을 기른채 백두산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진짜 김일성 장군의 신화를 차용해 해방된 이후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북에 돌아와 소련의 후원하에 지도자가 된다.
그 자신 어느정도의 항일무장투쟁을 한 것은 대체로 사실로 인정되나, 현재 북에서 주장하듯 김일성 혼자 전 조선국토의 일본군을 모두 무찌르고 해방을 가져왔다는 어처구니가 없는 과장과 왜곡은 심각한 역사날조이자 우상숭배의 시작이다.
하지만 이 회동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백범은 이후 암살당하고 1950년 김일성은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하는 것이 조선의 진짜 해방이라 주장하며 전쟁을 도발하여 씻을 수 없는 수백만 동족상잔의 비극의 불씨를 당겼다.
말년의 김일성은 소련등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거듭된 수해로 북의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이밥에 고깃국을 전인민들에게 먹이는 것이 꿈'이라고 평생 주장하고 그렇게 실현되었다고 믿었던 자신의 주체 조국이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거지 국가로 전락한 현실을 어느정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상 1974년부터 당중앙으로 실권을 장악한채 2선으로 후퇴되어 김정일에 의해 통제된 정보만을 20여년간 받아오던 김일성은 하루에도 수천명씩 굶어죽는 북한의 기아상태등에 크게 격분해 핵문제 위기를 간신히 넘긴 카터와의 회동후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 -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상당부분 도입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지기도 함 - 의 회동을 추진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김일성의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김정일 및 그 측근들이 김일성이 노망이 났다면서 그러면 우리의 사회주의 낙원(?? 김일성 김정일만의 낙원이자 인민의 지옥인 세계 최고의 독재 인권탄압국가)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하에 김일성을 제거했다는 설도 유력하다.
허나 북한사회의 비정상적 폐쇄성과 은폐성, 철저한 왜곡과 거짓 선전으로 인해 사실이 어떠한지는 당사자들만 알 뿐...진정 올바른 의미에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북한이 비정상국가에서 탈피해 체제전환을 이루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하게 되는 날이 오면 많은 비화들이 일정부분 공개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