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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을 기다린다''는 것의 가치

김지예 |2007.08.23 01:17
조회 679 |추천 15


훈련소 따라가서 울면 헤어진다고 하길래, 부르르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웃던게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인제 가면 언제오나(원통해서...는 아닙니다)' 라고도 말하는-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을 하던 그 아이는,

지금 말년 휴가 중이며 29일에 복귀하면 31일에 제대합니다.

 

혹자는 대단하다고도 말해주고, 또 누군가는 신기하다고도 말합니다.

대한의 건아들을 보내기엔 너무나 긴 2년, 사회에서 학교 생활하기엔 꽤나 짧은 2년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어렵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아이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제 의지가 대단해서도 아니고-

그 아이가 특별히 저에게 잘 해서도 아니고-

우리의 사랑이 절대 반지 같은 강인함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며-

'2년'이 짧은 세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저, 시간은 흘렀고-

우리 사랑의 수명은 2년보다 길었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도 2년 이상 사귀었을거고,

혹시나 중간에 헤어졌다면-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도 그맘때쯤 헤어졌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2시간에 한번씩 보던 CC가 전화도 제대로 못하고 얼굴도 못보고 지내는 건 힘들죠.

 

군대에서 고생하는 남자분들도 힘들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여자도 쉽지만은 않거든요.

늘 함께 가던 곳, 함께 걷던 거리, 함께 전화하던 시간을

혼자 지나치면서 함께 하던 순간을 곱씹어야 하는 것은,

이별과 같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일을 벌려가며 바쁘게 지내고 정신 없이 나 자신을 몰아치는 자학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한계에 부딪쳐서 이내 익숙해져버리면-

가끔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싶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가 군대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서로가 세상의 전부고, 일상이고, 너무나 당연해지는 1년차 커플인 우리를 갈라놓은 게

군대였습니다.

 

군대는 저에게 '그 아이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보통은 이걸 깨달은 순간 헤어짐이 시작된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웬걸-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은,

나를 더욱더 여유롭게 사랑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내 의지로 사랑하고 내 뜻으로 신뢰하고 내 마음으로 받아들여 왔다는 사실을,

그것이 그 누구의 뜻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고, 조작도 아니고, 그의 작전도 아니고-

오롯이 나, 스스로의 주체적 움직임이라는 명제를 주어주었습니다.

 

헤어지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이유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음을 알게 되면 사실 군인을 기다리는 게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나만 변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군인을 기다린다'는 것의 가치는 이런 것입니다.

세상 모든 원리는 Give&Take라지요.

그런데 설마-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2년을 그런 식으로 보내게 해 놓고 입 싹 씻을 파렴치한 신은 없습니다.

군대에 끌려 가야 했던 그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은 기분입니다.

 

그 아이는 제대가 조금 무섭다고 합니다.

다시 사회로 나와 대학이라는 곳을 다니며 경쟁의 최전선으로 던져진다는 게-

기대도 되지만 조금은 두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저에게 의지하게 되었지요.

2년 전 멈춰버린 이 아이의 사랑 수준은,

저보다 낮지만 어쩌면 깊이는 더욱 깊은 것 같아-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새삼스레 '시작하는 과정'같아 두근거립니다.

 

군인을 기다리고 있나요? 혹은 기다리시게 되었나요?

그렇담 지레 겁먹고 마음을 결정하지 마세요.

못기다릴 것 같고 힘들 것 같아서 헤어지지 말고,

도저히 못기다리게 되었고 미칠것처럼 힘들면 그 때 헤어지세요.

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떠나서 헤어지게 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곧 군대에 가시나요?

그렇담 헤어질까 계속 만날까 정도는 여자가 결정하게 해주세요.

군대에 가게 될 당신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닐테지만,

나라에 남자친구 뺏긴 것 같은 여자친구의 억울함도 장난이 아니거든요.

거기다 대놓고 배려해준답시고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건-

여자친구가 평생 애국자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하는거나 다름 없어요.

 

제대하셨는데 다양한 연애의 욕구가 치밀어 오르시나요?

하나만 기억하세요.

세상은 Give&Take.

이 세상에 꽃신 신은 여자들을 보건대,

지금 당신이 이별을 말하려는 여자는-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있는 그녀와 수준이 달라요. 결코 동등하지 않아요.

분명 무엇가를 더 잃게 되거나 돌이킬 수 없을때 후회가 밀려올꺼에요.

 

그리고 또 잊지 마세요.

그녀는요-,

당신이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떠난 2년은 기다려줄 수 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떠난 몇 개월은 기다려주지 않아요.

 

 

전-

군복에 개구리 쳤다고 실실거리는 이 아이를 기다린 걸 후회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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