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난이 싫어 가출했던 어린 버스 차장 순버하둘이 1년 만에 귀향했다.
재회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아이는
산모롱이에서 한참 동안 집을 바라봤다. /정한 전주방송 PD)
“빈손이라 죄송해요 엄마” 웃으며 흘린 눈물
집 떠난 ‘버스 차장 소년’ 순버하둘의 짧은 귀향
“돈도 못받고 하는 일이지만 꼭 기사돼 엄마 모실거예요”
늘 환한얼굴로 손님 불러대
너무 갑작스러운 아들의 등장에 엄마는 말을 잃었다. 안경 너머로 원망스러운 눈길만 보내고 있었다. 누나 니르멀라는 말없이 울고 있었다. 가출한 지 13개월 만에 순버하둘 따망(12)은 집을 찾았다. 맘씨 좋은 버스 기사 아저씨가 어렵게 허락해준 하루 휴가다. 순버하둘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부랑아로 살다가 석 달 전 차장으로 취직한 아이다. 집은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3시간, 산길로 5시간 걸어서 나오는 체방이라는 마을에 있다.
“죄송해요. 돈 많이 벌어서 성공해서 오려고 했는데….” 5분 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들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제야 엄마가 타박을 했다. “걱정이 돼서 네가 떠난 뒤 한시도 편안히 잠을 못 잤다.” 열두 살 소년이 의젓하게 대답한다. “빈손으로 와서 죄송해요. 다음에 올 땐 꼭 엄마 선물 사올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 쑥스럽네” 하고 멋쩍게 아이가 웃는데,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가난을 피해 수도 카트만두로 상경한 아이들 중엔 오로지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얻기 위해 하루 14시간씩 일하는 아이들도 많다. 카트만두 중심가 러트너파크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잘생긴 아이, 순버하둘도 그런 아이다.
“타라고안” “나라얀탄” “순다라” “러건켈”…. 여기저기서 카트만두의 주요 도심지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앳된 목소리였지만 주변의 시끄러운 소음들을 압도할 만큼 우렁찼다. 순버하둘도 목청껏 행선지를 외쳤다. 버스에는 노선번호가 없다. 중심가 몇 군데를 빼면 정해진 정류장도 없다. 10대 차장들은 행선지를 열심히 외치고 다니며 호객을 한다.
손님 한 명이 다가가자 순버하둘이 활짝 웃으며 버스로 이끌었다. 이미 한참 동안 출발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10명이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왜 빨리 출발하지 않느냐”고 항의가 터져 나왔다. 15인승 승합차에 20명을 채우고서야 버스가 출발을 준비했다. 활짝 열린 뒷좌석 문에 매달린 순버하둘이 마지막으로 행선지를 힘차게 외친 뒤 차 지붕을 힘차게 두 번 때렸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버하둘은 합장을 하며 “나마스떼(안녕하세요)”라고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차가 출발한 뒤에도 순버하둘은 쉴 틈이 없다. 약 20분 정도 거리인 러건켈까지 가는 도중에도 손님들이 내려달라고 하면 어느 곳에서나 버스가 선다. 그때마다 순버하둘은 손님들로부터 요금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
순버하둘이 차장이 된 건 석 달 전이다. 집에서 나와 무작정 카트만두로 올라온 뒤 아홉 달 동안 부랑아 생활을 했다.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음식을 구해 먹다가 어느 날 다른 아이들처럼 버스 정류장에서 열심히 남의 차를 닦았다. 버스기사에게 잘 보여 차장이 되기 위해서였다. 버스 기사 지뻐하둘 따망(40)씨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얼굴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웃는 얼굴이어서 차장으로 뽑았다”고 했다. 순버하둘은 아이들 부러움 속에 그날로 차장 일을 시작했다. 아이가 말했다. “돈 벌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차장 일을 하게 됐어요. 꿈은요, 기사가 돼서 엄마를 모시고 사는 거예요.”
차장은 버스회사의 정식 직원은 아니다. 카트만두에만 700여 명에 이르는 차장들은 순버하둘처럼 기사들이 개인적으로 채용한다. 돈은 없다. 대신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하루 두 끼를 먹여준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그게 전부다. 학교? 꿈도 꾸지 못한다. 기사는 “아이가 워낙 일을 잘하고 모범적이라 곧 기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사 아저씨는 지난 1일 밤 아이에게 말했다. “고향에 한번 다녀오너라.”
아이가 귀향을 했다. 거창한 꿈을 안고 떠났지만, 빈손이다. 늘 웃는 얼굴이지만, 버스를 탄 뒤로는 말이 없었다. 비가 흩뿌렸다. 마을이 보이는 산등성이에서 순버하둘은 내내 들고 왔던 검은 비닐봉지를 끌렀다. 깨끗한 빨간색 티셔츠가 들어 있다. “비록 엄마께 선물은 못 드리지만 아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사려가 깊은 아들이었다.
그리움 가득한 타박을 하고서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 나온 엄마는 홍차 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1년여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딱히 해줄 것도 없는 살림살이였다. 별다른 말 없이 서로 눈빛으로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어렵게, 정말 어렵게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저 이제 돌아가야….” 순식간에 엄마 눈에 물기가 맺힌다. 아이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엄마에게 절을 한다. 아빠에게 절을 하고, 누나에게 절을 한다. 아들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을 하며 엄마가 큰 소리로 운다. “…건강하세요.” 산모롱이까지 뒤도 안 보고 걸어가는 아이 어깨가 쉬지 않고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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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our asia가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