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 최후의 역작이며, 최대의 걸작이다. 그는 1879년에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80년 11월에 연재를 끝내고 겨우 석달밖에 더 살지 못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년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인 만큼 그 규모나 심오함에 있어서 그가 쓴 여타의 어느 작품도 추종을 불허한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 속에 그의 문학적 역량과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에서 그의 굴곡 있던 삶의 질곡과 문학 역량을 결합, 종합해 보려는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그의 어린 시절, 농노를 무자비하게 학대했던 저주스런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유형지에서 알게 된 부친 살해범의 체험담을 교묘히 ‘오버랩’시킨 사건의 구조에 기초하여, 그의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 즉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백치”의 무쉬킨, “악령”의 스따브로긴과 키릴로프 등이 추구했던 사상들을 접목, 심화, 종합해 보려는 의욕적인 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이 규모나 깊이에서 그의 어느 작품보다 방대하고 심오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예술적인 짜임새에서 다소 벗어난 듯한 산만함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아간 당대는 사회 생활 속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현실적인 모순들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시대였다. 자연히 작가에게는 결코 평온한 삶이 허락되지 않았다. 러시아 사회는 예언자의 풍모와 능력을 갖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현실 참여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속에서 그가 병적일 만치 중요하고 절박하게 여겼던 문제들, 즉 사회의 정신적 발전과 인간의 이데올로기적 도덕적 발전문제에 최종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랫동안 도스토예프스키를 격동시키고 끊임없이 괴롭혀온 동시대인들의 자기 만족과 안일, 소시민적 근성에 대한 경고로 나타났다.
소설의 구체적인 배경이 되는 1870년대에는 러시아사에서도 유난히 경제적*사회적 혼란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농촌은 지주들의 착취로 붕괴되고 도시는 관료들의 전횡으로 피폐해 갔으며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테러를 주요 수단으로 삼은 인민주의와 니힐리즘이 확산되고 있었다. 급기야 러시아 전국은 혁명 전야와 다를 바 없는 사회적 불안에 휩싸였다. 농노제 폐지 직전의 1860년대 초와 마찬가지로 전제 정권의 권력자들과 잡계급 출신의 지식인들 사이에 긴장된 대결이 다시 반복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파괴적인 새로운 사조 앞에서 과연 기존의 사회 질서는 유지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뇌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가장 큰 상처를 준 것은 지배 계급의 폭압과 신음하는 민중들의 고통이었다. 당시 러시아의 지도층은 종교를 버리고 서구의 민주주의나 공리주의 혹은 물질주의를 향해 맹목적으로 치닫고 있었다. 여기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붕괴와 민중적 불행이 뾰뜨르 대제 이래로 추진된 서구화에서 비롯된 지식인과 민중 사이의 이분화 현상 때문이라고 보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런 판단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서구의 제도, 카톨리시즘, 풍속, 개인적인 품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조롱으로 나타난다. 소설 속에서 이국적이고 이질적인 문화는 신과 민중의 의지에 역행하는 해로운 것으로, 러시아적이며 민중적인 문화는 정당하고 유익한 것으로 묘사된다. 예를 들면, 스페인 대심문관의 종교적 과오는 그리스도와의 대화 속에서 적시되고, 그루셴카를 유혹하는 파렴치하고 교활한 폴란드인에게서는 아무런 구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사회주의에 물든 신학생 라끼찐은 출세주의자로 왜곡되고 프랑스의 시인 피롱은 공연히 모욕당하기도 한다. 소설의 도처에 산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완고하고 편협한 이 국수주의적 경향은 서구 문명에 반대하고 정교 정신을 부활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속에 나타난 인간 영혼에 대한 깊은 탐구와 기독교적 사랑에 바탕을 둔 휴머니즘은 작가의 이러한 사상적 편향성을 상당 부분 덮어주고 있는 것 같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당시 러시아의 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도스토예프스키가 희구하던 미래 러시아의 모습을 여러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인물들의 모습을 통하여 제시하고자 하였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주인공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한 가족에 대한 것이다. 작품은 카라마조프 일가의 행복과 불행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음탕하고 교활하고 냉소적인 표도르 카라마조프라는 인물을 아버지로 하여 각기 다른 어머니를 가진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스메르자코프 등의 성격이 다른 4명의 아들을 중심으로 한 부친살해에 얽힌 애욕과 재산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탐정 소설적 스토리로 전개한 것이다. 주제나 그 의도는 전혀 다른 거대한 러시아 사회를 한 가족에 집약시켜 놓고 그 당시의 사상적 종교적 대 논쟁을 전개하는 방식이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여러 계층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설정해 놓고 그들의 갈등을 통해서 당시의 사회상을 리얼하게 표출하고 싶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야성적 정열과 러시아다운 순수성을 지닌 드미트리, 지성적이고 허무적 무정부주의자인 신을 부정하는 이반, 조시마 장로에 심취된 순진한 금욕주의자 알료샤, 리자베타라는 백치 미친 여자에게서 낳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 기타 조시마 장로, 구루생카, 소년들, 당시 사회의 계층인 귀족, 농노, 수도승, 평민 여인, 지성인, 관리 들 여러 계급 여러 계층이 빚어내는 러시아의 생활단면도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늙은 호색가 표도르 카르마조프가 극복해야 할 낡고 부정적인 러시아의 과거일 수 있고, 드미트리나 이반이 러시아의 현재라면 알료샤는 러시아의 미래일수 있다. 즉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살아있는 인간유형이라기보다는 사상과 신념의 결정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표면적으로는 두 대조적인 여성, 이를테면 관능적인 그루센카와 이지적인 카체리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형과 아우간의 애증에 기초하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막내인 알료샤와 그의 형 이반 사이에 벌어지는 무신론과 기독교의 사상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표면적인 줄거리를 이루는 플롯보다는 내면에 깔린 테마로서의 사상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즉 ‘A가 범인인 줄 알았더니, 사실은 B가 범인이더라’는 전통적인 미스테리 구조가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그 범죄의 배경이 되고 있는 강력하고 논리적인 무신론이 기독교라는 이상주의와 충돌하면서 쏟아내는 사상적 갈등이 이 작품의 피와 살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 피와 살이 되는 사상 논쟁이 이 작품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부친 살해’ 구조는 극적인 흥미를 돋우는 중요한 뼈대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중심 테마는 신앙과 종교(기독교)문제이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윤리적인 이상의 최고 실현자였다. 그리고 그의 기독교 사상의 기저에는 꿈과 이상이 고이 간직된 원시 기독교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저지른 죄를 인간이 당하는 수난의 원인으로 단정하는 데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그는 수난이야말로 죄의 용서에 필요한 내면적 조건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즉 자기가 자신에게 내릴 수 있는 용서, 이를테면 양심의 과정에 주목했다. 결국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죄의 문제와 수난의 문제에 귀착되는 것이다.
표드르 카라마조프의 맏아들 드미트리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와 서로 구애하고 사랑하는 연적관계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표드르가 살해당한다. 드미트리는 부친 살해의 혐의를 받고 구금되어 재판을 받는데,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은 이반을 숭배하고 있던 사생아 스메르쟈코프였다. 그의 범죄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이반의 명제를 실제의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범인은 드미트리의 이복 동생 이반의 방관과 사주를 받고 범행을 했노라고 직접 이반에게 자백한다. 드미트리에 대한 판결이 잇기 전날, 스메르쟈코프는 자신의 범죄를 수수께끼로 남기고 자살해 버린다. 드미트리는 자신의 전 약혼녀였던 카체리나의 음모, 즉 드미트리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는 결정적인 법정 증언으로 부친 살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20년의 유형을 선고받는다. 이 작품은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수난 받는 드미트리와 신을 탄핵하는 이반의 저항이 두 줄기를 이루며 포효하는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세 형제 중에서 드미트리는 죄 많은 열정의 인간으로 인간의 육체를 대변하는 인물이고, 이반은 지적회의론자로서 인간의 지성을, 막내인 알료샤는 기독교적인 이상 실현의 대변자로서 인간의 감성을 상징하고 있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견해는 앞에서 언급하였던 등장 인물들의 러시아에 대한 상징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볼 때 매우 시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드미트리 카르마조프는 분노의 절정에서도 갑자기 자기 모멸에 빠지는 절도 없는 감정의 소유자이지만, 시인과 같은 감수성도 지닌 가장 러시아인다운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한 여자를 두고 맏아들과 연적관계로 대적하는 희대의 어릿광대이며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한 보기 드문 희비극적인 인물의 하나이다. 여기에 뒤질세라 러시아 농노의 우직한 맹목주의를 상징하는 스메르쟈코프도 작가가 창조해낸 매우 특이한 인물인데, 표도르의 외도로 태어난 사생아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결정타를 날리는 역할로 클라이막스 속에 어엿이 숨쉬고 있다.
카체리나는 배신한 드미트리에 대한 병적인 연민과 이반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번민하는 지적인 여성으로서 그루센카와 대조되는 여성이다. 선정적인 몸매와 남자를 유혹하는 천부적인 끼를 지닌 열정의 여인 그루센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여인들 중에서 그 유형을 찾아보기 힘든 개성적인 인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유의 문제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자유의 행사는 고뇌를 부른다. 왜냐하면 선과 악, 그리고 범죄는 자유의 문제와 직면되며, 자유가 없으면 이것들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라는 글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소극적인 자유'가 아닌 자아의 자발성을 뜻하는 '적극적인 자유'를 갈망한다. 이러한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에는 크게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있다. 인류가 외적인 억압을 제거하고 소극적 자유를 찾는데 노력함은 지금까지의 인류의 행적과 희생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억압이 제거될수록, 내적인 억압은 증가한다. 이러한 내적인 억압은 바로 무력감과 고독감이다. 인간은 이러한 것들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는 자발적 자아를 이룩하고, 개성을 형성해 나가는, 또한 그럼으로써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여 무력감과 고독감을 피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적극적 자유'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자아의 통일성을 포기함으로써 세계와 결합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결국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력감과 고독감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하며,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의미한다. 이반이 온몸으로 저항하는 무신론의 특징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데 있다. 다만 신이 창조한 세계와 신에게 귀의할 것을 거부하며 저항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식으로 이반은 본질적으로는 자유와 복종의 문제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긍정적인 세계관과 부정적인 세계관으로 서로 맞물려서 분수령을 이루며 작품에 작용, 반작용을 한다. 이와 같이 그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사랑과 미움, 자존심과 굴욕, 쾌락과 고뇌, 정욕(관능)과 연민으로 갈등하며 대립하며 어울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빛과 어두움이 서로 상대쪽 때문에 제 존재가 더욱 극명해지듯이 낮과 밤은 대조되면서도 서로 상응하는 것과 비견된다. 조시마 장로와 알료샤가 빛의 인물이라면, 이반과 스메르쟈코프는 어둠의 자식들이다.
여기서 얄료샤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알료샤는 미래의 러시아, 즉 국민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타국민을 배척하는 일 없이, 도리어 이 국민적 요소로서 전인류를 포옹할 러시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 그루센카에 의한 유혹이라든가, 조시마 장로의 급속한 시체부패로 인한 종교적 회의 등을 통하여 치열한 고민 없이 간직해 온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조시마 장로의 환영을 본 순간 그는 신이라는 선악의 심판자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며 그것은 나아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실천적 사랑을 낳게 한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인류에 대한 희망이며 가치관이 정립된 인간, 선의 심판자로서의 신을 믿는 인간은 신이 창조한 인간에 대한 사랑, 인류라는 전체를 생각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신에게 부여받은 자유를 완전하게 실천하기 위해 신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만물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소년 알료샤의 장례식에서 알료샤를 통해 소년들에게 사랑의 필요성과 사랑의 힘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을 통하여 그는 인간의 죄의 문제와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문제, 선악의 문제를 다룸으로서 종교적 신앙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시도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반을 파멸시키고 드미트리를 선에 귀의시키고 알료샤에게 가능성을 부여하여 새로운 미래의 러시아를 기초하는 사회 윤리의 문제에 대한 그의 야심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허무주의와 묵시주의의 양극을 치닫는 순수한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인간성의 심연을 정상인보다도 정신 착란자에게서, 합법보다 범죄와 무의식의 세계에서 더욱 분명히 측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정신의 분열은 그의 전 작품의 중심소재였다. 이처럼 ‘사회적 법칙으로부터, 때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이탈된 자유의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불가피하게 어디로 끌고 가는가’에 작가의 관심은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실존이 무서울 정도로 자유롭다는 사실과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비극적이며 아울러 무거운 짐이고 고뇌라는 사실을 그 어느 누구보다 깊이 통찰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작품속의 작품인 “대심문관” 장은 알료샤의 종교적 반문, 즉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이 세상의 고통이 소멸될 것이라는 약속을 뜻하는 것’이라는 항변에 대한 이반의 대답이다. 이 “대심문관”은 표면적으로는 로마 카톨릭을 공격하는 내용이지만, 언뜻 보면 혁명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안에 작가의 역설적인 경고가 내포되어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나 전체주의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것은 첫째, 가족에 대한 사랑은 재산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므로, 이 욕망을 없애는 일(사유재산 제도를 없애는 일)과 둘째, 일체의 것이 완전한 평등으로 변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완전한 비인격화와 복종을 끌어내기 위한 인간을 조직화하는 일과 셋째, 노예는 노예 상태에서 평등하므로 인간의 지능, 학문, 재능의 수준을 낮추는 일, 즉 인간 지능의 평준화 등에 주력하는 것인데 혁명적 사회주의나 전체주의가 지향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작가는 “대심문관”에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경고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예수와 대심문관의 대립은 이 작품의 주된 테마로서 작가는 기독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토피아로 가장한 전체주의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 극인 “대심문관”의 작가 이반의 기독교에 대한 성토는 이래서 오묘한 패러독스인 셈이다.
여기서 예수의 침묵은 대심문관(즉 이반)의 웅변보다도 더욱 강력한 것이다. 종교와 신앙은 논리와 사변으로 설명될 수 잇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는 그의 침묵과 상징적이고도 함축성 있는 행동으로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끝난 작품이 아니었다. 그는 이 작품의 속편을 쓸 작정으로 오래 전부터 속편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위대한 죄인의 생애”라는 이름으로 완성시킬 계획이었으며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은 13년전의 사건으로 주인공인 알료샤가 수도원으로부터 세상에 나갔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즉 그는 이 작품의 속편을 통해 무신론자 및 위대한 죄인의 생애를 이야기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끝냈을 때 스보린에게 다음 작품(속편)에서 보여질 주인공 알료샤의 행적을 말한 바 있다. 알료샤는 종교적 인물로서 혁명가가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정치적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마침내 사형집행을 당하게 된다고 했다. 바꾸어 말해서 신앙을 가졌던 알료샤가 신앙을 떠나게 되고 위대한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뇌에 의한 정화를 알료샤는 경험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죽음은 13년 후의 알료샤를 쓸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