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 민병훈 감독 ⓒ2007 오마이뉴스 천호영 "'괜찮아, 울지마'는 원래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던 얘기였는데 지금 보니 마치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얘기처럼 돼버렸네요."
지난 21일 영화 의 언론시사회장에서 민병훈 감독은 겸연쩍은 듯 그렇게 무대인사의 말문을 열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참석자 누구도 그저 가벼운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는 듯 싶었다. 그러기엔 와 민 감독이 헤쳐온 길이 너무 험난했다.
민병훈 감독은 이제까지 장편영화로는 (1998), (2006) 등 세 작품을 연출했다. 이른바 '두려움 3부작'이다. 는 그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지난 2월 가 앞서 개봉됐다.
작품성 인정받고도 6년째 인큐베이터에 갇혀
는 2001년 제작됐다. 정식 개봉까지 무려 6년이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6년을 기다려온 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은 전국 1600여 개의 스크린 중에서 단 1곳 뿐이다. 서울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30일 단관 개봉으로 2주 상영한다.
작품이 형편없어서? 아니다. 이미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2002년 체코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와 그리스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에서 비평가상과 예술공헌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 왜?
며칠 뒤 민병훈 감독을 서울 신사동 한 커피숍에서 다시 만났다. 그에게 "6년만의 개봉을 축하한다"는 인사가 적절한지 망설여졌다. 개봉을 앞둔 그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작품은 제 자식과도 같잖아요. 는 둘째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어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는 상태니까 마음이 굉장히 아팠죠. 이 아이가 사장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부모 입장에서 어떻게든 구원하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아서 정확히는 7년 만에 세상에 나온 거죠. 아이가 부활했으니까 기쁘고 마음의 빚을 덜기도 했지만 그동안 고생시킨 아이한테 미안하기도 하죠."
보도자료에 밝혀져 있는 제작노트는 고난의 행군기에 가깝다. 그는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면서 고난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 기억은 그로 하여금 결코 국내 개봉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또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기인 영화 제작노트
는 우즈베키스탄(우즈베크)에서 우즈베크 배우와 마을 사람들을 출연시켜 우즈베크 말로 찍었다.
촬영장소로 낙점한 마을은 수도 타슈켄트에서 20시간 정도 떨어진 내전 지역이었다. 한국인 스태프 13명과 현지 스태프 40명 모두가 반대했다. 거듭된 설득으로 스태프의 마음을 돌렸다. 이번엔 우즈베크 당국이 막아섰다. 결국 스태프 모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나서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디션은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TV에 광고를 내자 1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그들로선 스필버그가 왔다고 생각한 거예요. 우즈베크 모든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러 온 거 같았죠."
외국영화에 출연해 돈을 벌고 싶은 배우도 있었고, 그저 작품을 하고 싶어 찾아온 배우도 있었다. "실제로도 허풍이 세 촬영 때 도망갈까 봐 마음 졸였던" 주인공 무하마드 역할의 배우가 전자였다면, 그의 어머니 역할을 한 배우는 후자였다. "그 분은 우즈베크의 인민배우이신데 시나리오를 보고 무하마드 같은 친아들이 있다며 무료로 출연해주셨어요."
그밖에 무하마드의 할아버지·부자·대령을 제외하곤 모두 현지 마을 사람들이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와 극영화적인 요소를 같이 띠고 싶었죠. 배우와 마을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있는 그 상태에서 삶이 묻어나올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거든요."
제작비 아끼기 위해 하루 2끼만... 그러고도 빚
▲ 우즈베키스탄 촬영 현장에서의 민병훈 감독. 그가 직접 촬영도 맡았다.
ⓒ2007 영화공간
한국인과 현지인 스태프의 유일한 의사소통 채널은 자신뿐이었다. 그가 직접 의상과 소품·미술·발전차 등을 섭외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진행비도 그가 직접 챙겨야 했다.그는 촬영 감독이기도 했다. 물론 스태프들도 그와 고생을 함께했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를 두 끼로 견뎠다. 그러면서 산길을 내고 돌산 작업장 등을 만드는 육체적 노동도 치러내야 했다. 게다가 현지의 까다로운 통관 절차 때문에 필름도 몰래 밀수로 들여와야 했다.
그렇듯 어렵게 70% 정도 촬영을 마쳤을 때 국내 제작사로부터 전화 1통이 걸려왔다. 더는 제작비를 댈 수 없으니 제작을 중단하고 바로 철수하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모든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나는 못 돌아간다, 나머지 30%에 대한 비용은 어떻게든 마련하겠다"며 밤새 설득했다.
마침내 촬영을 마쳤고 다른 스태프들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빚 때문에 6개월을 더 우즈베크에 머물러야 했다. 주변인들과 은행 대출 등을 통해 빚을 다 갚고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후반작업이었다. 이미 원래 제작사는 손을 놓은 상태이고 다른 제작사를 겨우 구해 후반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해 호평을 얻고 유명 해외영화제들로부터 러브콜도 받았다. 고생 끝에 낙인가 싶었는데 공동제작사마저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판권의 주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권한을 가질 수 없었다. 두 제작사 대표와의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자신이 돈을 마련해 마침내 판권을 확보했다. 제작 후 5년이 지난, 2006년이었다.
"한국에서 만들면 편했죠, 그래도 0.1% 놓칠 수 없어요"
- 란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지금 세상 사람들 다 힘들잖아요. 이상하게 경제는 발전하는데 삶은 더 힘들잖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제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괜찮아, 울지마' 이런 게 아닐까 싶었죠. 무하마드가 계속 거짓말을 하지만 그가 바로 우리라고 생각했어요. 무하마드가 미워 보여도 그 친구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고, 그래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 촬영을 하면서 진 빚은 다 갚았나요? 혹시 빚쟁이에 쫓기는 영화 속 무하마드와 같은 신세는 아닌지요?
"못 갚았죠. 때부터 있는 돈 없는 돈, 친구 돈 엄마 돈, 할 것 없이 많이 썼죠. 사채도 많이 썼고. 세 작품 모두 연출료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문제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히려 제게 지금 1억의 빚이 있다면 그 빚이 저를 살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1억의 빚 때문에 더 열심히 뛰고 더 작품에 정진할 수 있다면 그 빚이 저를 살리고 있는 거죠.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정서와 영혼을 움직여주고 싶은데 제 작품에 제 영혼과 제 땀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기죠."
ⓒ2007 오마이뉴스 천호영-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우즈베크에서 현지인들로 작품을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요?"처음 제작자와 많은 분도 '조금 각색해서 한국에서 찍자'고 설득했어요. 그런데 제가 0.1%도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게 있어요. 이 영화의 모티브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를 여행하면서 만난 한 젊은 청년의 얘기거든요. 우리와 풍광이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0.1%지만 느낌이 다르고 정서가 다른 점이 있어요. 그 미묘한 0.1%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저도 한국에서 영화를 하면 너무 편하죠. 감독님 대접받고 호기 부리면서, 너무 편하죠. 그런데 바이올린 곡을 썼는데 비올라를 쓸 수는 없잖아요. 물론 비올라를 써도 관객은 눈치 못 챌 수도 있죠. 그러나 저는 반드시 바이올린을 써야 제가 원했던, 추구하고 싶었던, 그 색깔 그대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 혹시 우즈베크에서 정식 개봉할 계획도 있나요??
"이 곳 상영이 끝나면 프린트 들고 우즈베크로 가서 영화 속에 나오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스크린 걸고 무료 상영을 하려고 해요. 또 학용품이나 축구공 같은 거 나눠주고, 조촐하게 마을 사람들과 밥 한 번 먹고 오는 게 풀고 싶은 한이죠. 프린트도 그쪽에 주고 오려고 해요. 이 영화는 제 영화이기도 하지만 지지해주시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주신 그 분들의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 제작한 지 6년이 흘렀는데 지금 다시 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터뷰를 하면서도 지금 입장에서 얘기하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1년도 당시의 생각이 제일 중요하죠. 6년이란 세월이 흘러 물론 아쉬운 게 있죠. 하지만 한편으론 대견스럽기도 해요. 열악한 여건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대견스러운 게 아니라 그 당시에 그 작품 나름대로 제가 들이댔던 순박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순박함이 대견해요(웃음)."
- 만약 같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지금도 또 우즈베크에서 찍을 건가요?
"저는 우즈베크가 아니라 아프리카라도 가죠. 너무 당연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예술을 빙자한 사기를 치는 거죠."
예술영화는 불친절한가?
영화 개봉 당시 언론들은 민병훈 감독의 작품을 상업영화와 비교하며 '한국 작가주의 예술영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감독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상업영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지만 극장에 영화를 걸고 수익을 내니 상업영화를 하고 있는 거죠. 다만, 상업성 안에 있되 다른 색깔을 내고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뿐이거든요."
그렇기에 그는 '독립영화' '예술영화'라는 용어보다 '다양성영화'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2000년도 들어와서 우리 영화가 산업적으로는 급성장을 했잖아요. 그러나 질적으로 다양성의 성장은 전혀 없거든요. 인간 체형으로 보면 하체비만, 복부비만이 극대화된 상태죠. 음식으로 말하면 피자하고 치킨 같은 음식들만 있는 상태에서 저는 다른 메뉴를 내놓은 거죠. 그런데 다양성이 없어진 상태에서 영화산업은 100만명, 200만명이라는 숫자상의 신화만을 들이대니까 제 영화와 같은 영화들은 오히려 설 땅이 점점 더 없어지고 관객과 온전히 소통할 기회가 사라졌죠."
ⓒ2007 오마이뉴스 천호영
- 작가주의 예술영화라 하더라도 '좀 더 친절하게 만들면'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우리 어머님도 '너도 처럼 친절하게 만들면 안되겠니' 하고 만날 말씀하세요. 그런데 미술로 치면 저는 현대미술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걸 친절하게 하자면 제 색깔은 없어지는 거죠. 어떤 분들은 3%의 관객만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데, 저는 거꾸로 제 영화를 통해 나머지 97%의 관객 가운데 1%를 뺏어오겠다는 거예요. 그게 제가 할 일이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제 작품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는 작업이 오히려 관객을 배려하는 작업이고, 관객을 존중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다음 작품은 더 친절해지느냐고요? 아니죠. 더 어려워진다는 게 아니라 더 깊어져야 해요. 창작자한테 동어반복은 죽음이거든요."
- 그럼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나요? 또는 영화가 갖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영화란 시화(詩畫), 시와 그림의 만남 같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관객에게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여백을 찾게끔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작품에서 이렇게 얘기했지만 관객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 다른 생각을 하면서 자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죠. 제가 바라는 것은 100개관, 100만명이 아니라 10명의 관객이라도 제가 던지는 질문을 놓고 온전히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하는 거죠."
- 만약 기회가 된다면 충무로 자본과 함께 대규모 상업영화를 만들 의향은 있나요?
"전혀 없어요. 제가 아니라도 남들이 많이 하잖아요. 제 스토리에 대해선 책임감을 느껴요. 최소한 손해를 안 끼쳤으면 좋겠다는. 제가 이야기하려는 주제가 소박하고 조금 더 인간적인 거라면 반드시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저도 30억짜리 영화 만들고 싶어요. 안 그러겠습니까. 편안하게, 연출비도 받고, 이병헌도 쓰면서. 그리고 예술영화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건 허영심이에요. 제가 가진 주제와 하고 싶은 얘기를 가지고 어떻게 20억, 30억짜리를 만들겠습니까. 이건 사기예요.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거대 영화자본은 가만두지 않아요. 제가 왜 무덤으로 갑니까. 육체적으로는 편하겠지만, 정신적으로나 작품의 질은… 스스로 무덤 팔 생각이 전혀 없죠."
"예술영화를 게토로 내몰지 마라"
그가 먼저 스크린쿼터 얘기를 꺼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스크린쿼터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그렇지만 영화인들이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크린 독과점의 대안으로 '예술영화전용관을 확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됐거든요. 지금 예술영화전용관을 더 짓겠다는 얘기는 그 곳을 '게토'로 만드는 거예요. 멀티플렉스에는 올 생각을 하지 말고 너희는 너희끼리 놀아라, 이런 얘기거든요. 예술영화전용관을 확대할 게 아니라 예술영화도 CGV에도 걸리고 메가박스에도 걸리게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서로 다른 차이를 느끼게 하고. 이게 다양성을 위한 환경이죠. 영화인들이 왜 이 문제에는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할까요? 강자 앞에 약한 거예요. 배급을 좌지우지하는 CJ나 쇼박스나 롯데시네마에 잘못 보이면 자신들 영화가 못 들어가니까…."
ⓒ2007 오마이뉴스 천호영민병훈 감독은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부터 활동해온 당원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이 발의한 '스크린 독과점 규제법안'에 대해서는 "법으로 강제 시행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부닥치며 고민해온 세 가지의 대안을 제시했다.첫째,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을 돈으로 이미 있는 멀티플렉스별로 1~2개 상영관씩을 '다양성영화관'으로 임대해서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관람료도 1천원, 2천원 정도로 낮춰받고 그 곳에 예술영화 전단들도 비치하고.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려줘야 해요. 지속적으로 5년만 해보세요, 5년만. 아니 왜 CVG와 메가박스가 반대합니까. 임대료 내주고 티켓값 보상해준다는데…."
둘째, 대안상영관을 적극 활용한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구민회관이 있고 공공·학교도서관 같은 시설이 있습니다. 이런 곳에 다양성이 인정되는 좋은 영화는 DVD 2만 장 정도를 보급해주는 거예요. 판권을 해결해 무료로 틀 수 있게끔 하는 거죠. 는 DVD를 300장 찍어낸대요. DVD숍도 안 들어가고, 케이블은 안 틀고, 대중이 보고 싶어도 어디서 볼 수 있겠어요?"
셋째, 공중파 3사에서 의무적으로 1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다양성영화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토록 한다. 그는 이 대목에서 TV 영화소개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제가 를 5초만 소개해달라고 했는데도 안 해줘요. 그 주에 개봉하는 영화를 5초, 10초 선보이는 게 뭐 어렵냐구요. 그러면서 모든 방송사가 똑같은 영화를 내용을 다 알려줄 정도로 보여주잖아요. 이게 폭력이 아닌가요? 막가는 방송이 대중들한테 가하는 폭력이에요."
그의 마무리 발언.
"부모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굶고 있어요. 왜 밥 안 먹었어 물어보니까 집에 밥이 없대요. 이 때 제일 멍청한 부모가 애한테 돈 주고 나가 사먹어 하는 부모죠. 애가 뭘 사먹겠어요. 입맛 당기는 것만 사먹겠죠. 부모가 아이를 완전히 방치하는 거잖아요. 이게 지금 우리 영화 상황이랑 뭐가 틀리죠? 시스템이 잘못됐어요. 관객들은 죄가 없어요."
"솔직히 가 정말 부러워요"
민병훈 감독의 와 심형래 감독의 는 몇 가지 점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가 작가주의의 최전선에 있다면 는 상업주의의 최전선에 있다. 가 우즈베크에서 현지 배우와 주민으로 찍었다면 는 할리우드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찍었다. 는 제작에 6년이 걸렸고 는 개봉에 6년이 걸렸다. 는 5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상영했고 는 단관으로 개봉할 예정이다.
민병훈 감독에게 를 봤냐고 물었더니 "볼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안 봤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논쟁에 관한 감상평을 덧붙였다.
"를 600만 명이 보든 1000만 명이 보든 그것은 관객의 자유죠. 관객의 자유니까 충분히 존중해줄 수 있는 거죠. 그 사람들 말대로 오락거리로서 광분을 한다는데 뭘 어떡하겠어요. 또 평론가들이 오락영화로 볼 때도 함량미달이고 자격미달이라는 것도 자유고. 저는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봐요. 이걸 신드롬으로 만드는 것은 오히려 언론들이… 요즘 심심했나 보죠."
그는 논쟁에서 느끼는 아쉬운 점도 지적했다.
"사람을 비판할 때 애정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과 그냥 막 씹어대는 건 틀리거든요. 냉엄한 꾸짖음 안에 애정이 있는 태도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빠져 있어요. 네티즌도 그게 빠져 있어요. 너 편이야 아니야, 이거 미친 거 아니에요. 누구 편이 어딨어요.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가 어딨어요.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깨는 것, 이건 최악이죠."
그리고는 뜬금없이(?) "솔직히 가 정말 부럽다"고 말했다. 가 부럽다고?
"관객이 많아서 부러운 게 아니라 제 영화가 그렇게 논쟁만 됐어도… 제가 영화 하면서 가장 힘든 게 '저 작품 안 좋아'도 아니고 '1개관 개봉'도 아니에요. 저한테 가장 힘든 건 무관심이에요, 무관심. 아예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 무관심보다 더 폭력적인 게 있을까요? 인터뷰 좀 해주세요, 됐거든요! 기자시사 오세요, 됐거든요! 이것보다 더 폭력적인 게 어딨겠어요."
두려움 다음에 희망이 오는 까닭
앞서 얘기했듯이 민병훈 감독의 장편 세 작품, 는 '두려움에 관한 3부작'이다. '가난과 권력에 대한 두려움' '거짓과 허영에 대한 두려움' '구원과 사랑에 관한 두려움'을 각기 다루고 있다.
그는 현재 다음 작품으로 를 준비하고 있다. '두려움 3부작'에 이은 '희망 3부작'의 첫 작품이다. 어린 천재 소녀가 자신이 부정하던 어머니의 몸에서 나던 향기가 자신의 몸에서도 나는 것을 깨닫고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제작비는 10억을 예상하고 부산국제영화제 PPP(Pusan Promotion Plan)작에도 뽑혔지만 "안 되면 5억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제 희망 3부작이 시작될 거예요. 희망에 앞서 왜 두려움을 먼저 얘기했느냐면,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하면서 막연하게 얘기해요. '내년은 잘될 거야, 앞으로 잘될 거야' 참 막연한 얘기거든요. 막연한 희망은 거짓말이에요. 현실은 냉정하거든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희망을 얘기하려면 두려움을 먼저 얘기해야 해요. 에서 무하마드가 맨 마지막에 두려움에 직면하잖아요. 자기가 누군지를 깨닫게 되는 게 두려움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야 자기 안에서 희망이 피어나거든요. 그래서 용기있게 떠날 수 있거든요. 자기 스스로 누군지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희망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거죠."
▲ 영화 의 한 장면
ⓒ2007 영화공간
- 정작 감독 자신의 두려움은 무엇이었나요?"세 작품의 주인공 다 저를 투영한 거죠. 부에 대한 욕망도 있죠. 차가 없으니까 차도 가지고 싶고, 좋은 아파트에 살고도 싶고. 그런데 자꾸 뭐를 하면서 나를 합리화시킬 때가 있거든요. 이게 제일 두려운 거예요. '난 영화를 열심히 만드니까 가난해도 돼' 이건 비겁한 거거든요. 오히려 저니까 부자가 돼야죠. 제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 놓아 얘기하는 것도 이 시스템이 바뀌어야 저도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죠. 또 그래야 저처럼 생각하는 후배 감독들도 동료 감독들도 희망을 가질 거 아녜요? 다만 그 길을 정석으로 가야 하는 거죠. 내 것을 변질시키면서 가서는 안 되죠. 이 길을 가면서 도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게 제 길이라는 거죠."
- 앞으로 나올 희망 3부작을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조화롭게 사는 법이에요. 우리 삶은 우리 세상은, 강도도 있고 나쁜 놈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죠. 어쨌든 조화롭게 살고 있잖아요. 조화로운 것을 자꾸 이분법으로, 니 편 내 편으로 나누려고 하니까 문제인 거죠."
- 자신이 걸어갈 길에는 희망이 보이나요?
"당연히 보이죠. 영화로만 말하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건 없잖아요. 영화 만들어 6년 만에 개봉하고. 1개 관보다 더 적은 스크린은 없잖아요. 관객도 지금보다 더 떨어질 건 아닌 것 같고. 당연히 희망이 있죠. 또 제가 1% 뺏어오면 되니까. 세상에 대해서도 인간이 움직이는 거지 세상이 움직이는 거는 아니잖아요. 내 안에 희망이 분명히 있죠.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긍정의 힘이란 다른 게 아니라 저 스스로 삶을 비관하지 않고,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자기 안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나오는 희망…."
의 영어 제목은 'Don't cry'가 아니라 'Let's not cry'다. 직역하면 '우리 울지맙시다' 정도가 될까. 따라서 '괜찮아, 울지마'란 다독거림은 영화 속 무하마드뿐만 아니라 민병훈 감독 자신, 그리고 관객과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다. 1%의 희망을 안고 민 감독이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듯, 세상살이가 고달픈 여러분, 우리 울지 맙시다!
는 어떤 영화?
는 민병훈 감독의 '두려움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에서 호평을 받았고, 2002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 비평가상을, 또 테살로니키국제영화제에서 예술공헌상, 아시아 유럽상을 수상했다.
작가주의 예술영화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감독의 말처럼 '여백'은 많지만 스토리 자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 도박 빚에 쫓겨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의 작은 마을로 돌아온 무하마드. 그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 상자를 보고 그가 도시에서 성공한 연주자인 줄로 착각하는 고향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친구들은 그를 반겨주지 않고 가족들의 삶 또한 여전히 고단해 보인다.
서투른 영화평을 덧붙이는 대신 해외 영화인들의 평가를 소개한다. "내가 젊었더라면 바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테오 앙겔로플로스ㆍ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그리스 영화감독), "심오한 철학과 여유로운 유머가 공존하는 유쾌한 영화"(토리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풍자와 해학으로 인간의 애환을 달래주는 영화"(데살로니키영화제 심사위원장).
30일 서울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개봉. 9월 7·8일에는 등 '두려움 3부작'을 함께 상영한다.
/천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