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파’ 미즈노 교수, 日 극우잡지에 수차례 한국 비하 글 기고
“용사마, 다케시마 문제로 화나 날뛴다”
글: 장팔현 http://www.ohmy-japan.com
한국에는 일본우익인사들이 방송이나 학계에 진출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우익사상을 우리 학생들에게 알리는 선전장이 되어있고,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는 현대판 친일파들이 맹활약 중이다. 이와 같은 행태들을 볼 때 이미 한국은 1875년 이후와 상황이 비슷해졌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이처럼 혼란한 시대를 엮어가는 인물들이 필자의 눈에는 선하다. 때문에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간파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일본 우익인물들과 친일파 그리고 사이비보수우익 인물 열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추적하는 인물들은 미즈노 ?페이씨로부터 쿠로다 카츠히로, 오선화, 김완섭, 김문학(재중동포로 일본에 귀화신청 중?)과 같이 일본 우익인물들과 친일파에 대하여 ‘현대판 친일파’ 연구자로서 그들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필자가 일본에서 칠지도 연구 등 한일고대사를 공부하면서 2002년 우연히 교토의 한 서점에서 미즈노씨의 ‘한국인의 일본위사’라는 저서를 보고 그의 이중성을 간파하게 되었다. 같은 해 8월 귀국한 필자는 그의 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미 상당히 알려진 부분은 본고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필자는 그동안 미즈노씨와 지면과 동영상 취재를 통하여 몇 차례 공방을 벌인 적이 있다. 이에 미즈노씨의 주장은 “자신은 우익이 아니다. 억울하다.”라고 말해왔다. 그럼 그가 일본에서는 그래도 가장 양심적으로 보이는 사민당이나 공산당 당원 같은 좌파라도 된다는 말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그의 저서나 기고문을 통해볼 때 그가 일본 우익인물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을 한다 해도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나 필자는 그가 일본우익과 결국 맥을 같이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가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일본의 극우잡지인 ‘SAPIO’나 ‘SHOKUN' 등에 기고한 그의 글을 간추려 소개하고자한다. 그가 주장하듯이 과연 일본우익이 아닌지 독자들이 소개 글을 읽고 판단해주기 바란다.
미즈노씨가 그동안 일본에서 노히라 ?스이란 필명으로 한국인이 일본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을 자의대로 해석하며 조롱한다며 한국을 비난하는 여러 저서를 냈음은 익히 알려진 상태다. 그러는 틈틈이 ‘사피오(SAPIO)’와 ‘쇼쿤(諸君)’, ‘현대코리아(現代コリァ)’와 같은 극히 우익성향의 잡지에 글들을 실어왔다. 이들 잡지사는 필요이상으로 한국 비난하기를 일삼는 곳으로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나쁜 한국 이미지 알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출판사로 양심적인 일본인조차 그들 잡지사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이다.
그들 잡지사에 올려진 한국 관련 기사는 좋은 것은 없고 삼풍백화점 사건이나 대구지하철 사건, 북한 핵문제, 김정일의 신변잡기 등 부정적인 것만을 더욱 부풀려 기사화하기를 일삼는 극히 우익편향의 양심불량 출판사들이다. 이러한 출판사들은 올바른 한일교류는 고사하고 방해만하는 말기적 악성종양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필자는 상기 세 잡지사에 미즈노씨가 기고한 글을 3월초 와세다대학의 강동완박사로부터 입수했다. 새로이 입수된 미즈노씨의 글을 보면서 과연 그의 생각이 어떤지 그의 기고문을 통해서 분석하고자 한다. 입수된 글은 2002년 5월(‘사피오(SAPIO)’부터 2005년 1.2월호(‘현대코리아(現代コリァ)’에 이르기까지 총 5편에 이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출판사의 경향에 따라 기고문을 실어줌은 당연지사이다. 한국의‘월간조선’이나 조선일보에 진보성향의 글이 올라가기 힘들고, 반대로 오마이뉴스나 한겨레신문에 보수우익 성향의 글이 대부분 올려지지 않는 것과 같다.
미즈노씨의 서적이 주로 우익성향의 소학관(小學館)이나 문예춘추(文藝春秋)에서 나오듯이 상기 잡지사도 그 이상의 우익성향 잡지사임은 불문가지이다. 때문에 한국전문가라고 일본에 알려진 노히라(미즈노씨의 필명)씨의 기고문이 우익잡지에 올랐다하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미즈노씨의 본심(혼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어쩌면 그가 가진 두 개의 가면 중 일본용(日本用 ) 가면이 벗겨지는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그 새로운 증거들을 ‘신동아’측의 배려로 이 곳에 처음 기사를 올린다.
우선 노히라씨가 일본의 우익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연도순으로 따라가 보며 알아보기로 한다.
①‘SAPIO’ 2002년 5월 22일자 26쪽~28쪽
제목: -위사(僞史)-「고천원(高天原)」부터「왕인」까지 학술적 정당함을 무시한 관광명소가 속속, 일본역사의 루트를 한국에 구하는「날조구적(捏造舊蹟:옛 유적)」이 늘어나고 있다.
상기 제목으로 ‘SAPIO’는 노히라 ?스이(미즈노 ?페이)를 소개하면서 “1968년 홋카이도 태생. 천리대학 조선학과 졸.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문학박사. 현재, 동 대학 강사로 근무하는 한편, 한국의 TV프로그램에 한국 최초의 일본인출연자로서 출연, 인기를 끌고 있다. 저서에는 ‘한국․반일소설 쓰는 법(韓國日小說書き方)’(亞紀書房), ‘한일전쟁발발!?한국 엉터리책의 세계(韓日戰爭勃發!?韓國けったい本の世界)’(文藝春秋), ‘한국인의 일본위사(韓國人の日本僞史)’(小學館) 등”으로 나와 있다.
미즈노씨의 기고는 2002년 5월에 출간된 ‘한국인의 일본위사(韓國人の日本僞史)’내용 중 일부를 ‘SAPIO’에 올린 글로 보인다. 즉 ‘한국인의 일본위사’내용 속의 제2장 제5절:왕인박사의 생가는 전라남도 영암이다(93쪽), 제6절:고천원은 한국에 있었다(109쪽) 부분과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홍길동 관련 유적지를 날조하여 만든다는 부분을 추가하여 기고한 글 같다.
그에 의하면, 첫째로 홍길동에 관한 문제제기 및 장성군에서 만든 테마파크 건설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의 서남부, 전라남도의 장성군에는 ‘홍길동’에 관한 유적이 있어, 이 ‘홍길동’이 마치 이시가키지마의 ‘홍가와라’와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렇게 얘기해도 모든 일에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필자중략....그러나 홍길동과 ‘홍가와라’가 동일인물이라던가, 홍길동이 이시가키지마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한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홍길동이 남쪽의 섬으로 건너갔다고 기록하고 있는 ‘홍길동전’에는 홍길동이 ‘율도국’의 왕이 되어 30년 후인 72세에 죽었다고 쓰여 있어, 장성군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
결국 장성군의「홍가와라=홍길동」이라는 주장은 ‘조선왕조실록’의 홍길동 관련 기록과「홍가와라」에 관한 일본 측 기록을 적당히 결합해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애매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장성군의 홈페이지에는 ‘홍가와라’와 홍길동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 확고한 학설인 양 설명되어 있고, 작년에는 이시가키지마의 시장 등을 초청해서 홍길동에 관한 ‘학술세미나’도 개최하였다. 현재, 장성군은 12억8천만원(약 1억 2천800만엔)의 예산을 들여 ‘홍길동 테마파크’를 건설 중이다. ”라고 쓰고 있다. 즉, 홍길동을 오키나와 남방의 이시가키지마(石垣島)의 전설 속 인물인 ‘홍가와라’와 동일인물로 보는 것은 장성군 측이 ‘아무 근거 없이 애매한 내용을 가지고 만든 것일 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의 반박이 전혀 정밀하지 못하고 의혹제기 수준에 머문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문제제기와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좀더 학술적이며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접근해야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왕인박사의 출생지가 전라남도 영암군이라는 것도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서기’(응신기)에는 백제로부터 ‘왕인’이라는 학자가 파견되어 황태자의 스승이 됐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사기(古事記)’(중권․응신천황20년 을유)에도 ‘와니키시(和邇吉師)’라고 하는 백제의 학자가 ‘논어’10권과 ‘천자문’을 헌상했다고 하는 기술이 있다. 일한(日韓) 학계에서는 기기(記紀:필자주-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사료적 가치와 ‘천자문’의 성립시기로부터 이 기술(記述)의 신빙성에 대하여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신중한 자세는커녕, 왕인의 ‘유적’이 존재하고, 관광명소로 되어있다. ‘왕인’의 유적은 한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전라남도 영암군에 위치하며, 정식명칭은 ‘왕인박사유적지’라고 한다. 이 ‘유적’에는 왕인박사의 위패와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는 ‘왕인묘’와 왕인박사의 탄생,수학,도일(渡日),학문전수 등의 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전시관과 이외에도 왕인의 생가 터와 왕인이 마셨다는 샘(泉), 왕인이 수학한 학당, 왕인이 면학에 힘쓴 동굴 등이 있다. ....필자 중략....한국 역사 기록으로 입증이 되지 않는 날조인데도 불구하고 영암군과 왕인박사 묘소가 있는 일본의 히라카타시(枚方市)가 교류하는 것은 못마땅하다.”며, 한국 측이 근거도 없이 엉터리 유적지를 만들어 ‘마을 일으키기(마치오코시)’와 국제교류에 이용하고 있다고 분개해 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고천원도 역사적 근거 없이 날조된 유적지라는 주장이다. 즉, “‘고사기’‘일본서기’의 신화에는 ‘고천원(高天原)’이라는 세계가 등장한다. 신화의 세계에서는 천계(天界)인 ‘고천원’, 지상계(地上界)인 ‘위원중국(葦原中國:후시와라노 나카츠구니)’, 지계(地界)인 ‘황천국’이라는 삼층 구조로 되어 있어, ‘고천원’은 왕권지배의 정당성․신성성(神聖性)이 유래하는 천상의 신성한 세계였다.
그런데 최근, 이 ‘고천원’의 유적이 한국에서 복원(?)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고천원’이 있는 곳은 한국의 동남부․경상북도의 고령군에 있다. 여기에는 ‘고천원고지’라고 새겨진 비석(높이6미터, 폭2미터)과 ‘고천원의 시비(詩碑)’, ‘일본의 와카비(和歌碑)’ 등이 세워져있다. 이 ‘고천원’은 고령군에 있는 가야대학교라고 하는 지방대학의 캠퍼스 안에 위치하고 있다. 왜 ‘고천원’이 대학 구내에 있는가하면, ‘고천원=고령’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 가야대학교총장․이경희씨 때문이다.” 라 설파하고 있다.
원래 고천원이 고령에 있었다는 학설의 주장은 고령군에 사는 향토사가 김도윤(金道允)씨가 그의 논문에서 주장한 것으로, ‘일본서기’에 나오는 소시머리(曾尸茂梨)=우두산(牛頭山)으로 우두산이 가야산의 ‘우수리(牛首里)’에 해당한다고 한데서 유래한다고 소개하면서 미즈노씨의 논지를 펴고 있다. 그의 설명을 끝까지 인용해보자.
“그런데, ‘고천원’이 한국에 있다고 하는 주장은 김(김도윤)씨의 학설이전에 존재했다. 실은 ‘우두산’이라는 산은 한국의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고천원’비정의 근거에 식민지시대에는 강원도 춘천에 있는 우두산이 ‘고천원’에 비정되었고, 또한 이기동(李沂東) ‘고천원은 조선인가-고대일본과 한래(韓來)문화’(新人物往來社,1975년)에서는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우두산을 근거로 거창군이 고천원이라고 되어있다.
요약하면 ‘고천원’은 ‘우두산’의 위치에 의해 아무렇게 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엉터리 근거에도 상관없이, 이 수상한 ‘고천원’에서는 매년 ‘고천원제(高天原祭)’라는 행사가 행해져, 일한우호와 마을발전(마치오코시)에 대대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천원'에는 오오사카 아오야마 단기대학장이 봉납한 석등롱(石燈籠)과 일본인에 의한 노래비가 세워져,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鳴尊)’에 의한 마을발전을 꾀하는 시마네현의 사다쵸오(佐田町)는 ‘고천원’이 있는 고령읍과 국제교류를 행하고 있다고 한다. ”라고 양국 지방자치단체간의 교류조차 의미가 없다고 비하한다. 이유는 학술적 근거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는 미즈노씨 특유의 어리석은 고대사 비전문가의 주장이다.
미즈노씨가 일련의 고천원 지명과 관련 있는 우두산이 한국의 춘천으로부터 거창, 고령 등에 산재한 이유를 모르고 여러 곳에 우두산이 있는데 정확히 어느 곳이 우두산인지 모를 일이라는 그만의 대단한 문제제기와 얼토당토 않는 비판이다.
한일고대사를 전공한 학자라면 섣불리 그러한 무모한 지적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 산재한 우두산은 모두가 실제로 고천원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를 보면,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 중국 동부의 제나라, 노나라 사람들은 물론 서부의 진나라 지역 사람들이 노역을 피하여 조선(고조선)지역으로 흘러 들어왔음이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조선민족이 사는 지역으로 피난하여 들어 온 ‘화교(華僑)들’로서 그들이 만주지역에서의 수많은 민족간 생존 전쟁에 따라 시대별로 여러 단계에 걸쳐 파도처럼 춘천을 거쳐 거창, 고령 등지의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들어왔음이다.
물론 그들 속에는 ‘한한(漢韓)혼혈’은 물론 조선민족들도 섞여있었을 것이요, 조선민족과 살면서 동화된 진나라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우두산’또는 ‘소시머리’라는 지명이 남게 된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5세기 초엽의 일왕 응신기(應神期)에 이르러서는 백제의 도움을 받아 대거(120현의 백성) 왜열도로 이주해 갔던 것이다. 그들이 바로 ‘바다’를 뜻하는 의미의 ‘하타(秦)씨족’으로 6세기부터는 교토(京都)의 광륭사(廣隆寺) 주변에 중심을 두니, 그 곳을 ‘우즈마사(牛頭麻佐)’라 일컫지 않는가? 여기서 ‘우즈마사’는 소머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또한 ‘우두머리’를 뜻하기도 한다. 왜열도 진씨족의 우두머리격인 통령(統領)이 살던 중심지가 바로 우즈마사란 의미이다.
그들은 이미 왜열도로 들어가기 전의 한반도 거주시기는 물론 기원전 중국에 살던 선대 때부터 비단 짜는 직조기술과, 양잠기술, 토목기술, 양조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당시로써는 최첨단 기술자집단이었다.
역사를 더듬어 봐도 이들 우두산(또는 소시머리)을 신성시하던 진씨족들을 추적해 볼 수 있다. 즉, 608년 수나라의 사신인 배세청(裴世淸)이 왜열도의 규슈 북부지역에 있었다고 ‘수서’에 기록을 남긴 ‘진왕국(秦王國)’이 필시 진씨족들의 나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을 추수기 때 소머리를 베어 추수감사제를 지내며 축제를 벌였음은 여러 마츠리나 기록으로도 증명이 되고도 남는 일이요, 한반도의 ‘우두산’과 관련 있음은 일본 고대사의 전문가인 오오와 이와오(大和岩雄)씨의 엄청난 저서 및 논문을 읽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일본학자들조차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한 상식도 모르고 미즈노씨가 비전공분야인 한․일고대사 분야에서 너무 초라한 지식을 동원하여 그 알량한 무지함만을 드러내고 말았음이니, 이러한 불상사가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도 미즈노씨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처럼, 고천원고지(高天原故地) 석비와 ‘고천원의 시비’, ‘고천원의 와카비(和歌碑)’ 등이 역사적으로 확실한 근거도 없이 유적지를 꾸며놓은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하물며 이를 이용하여, 고령읍과 시마네현 사다쵸오(佐田町)가 국제교류를 하고 있는 것은 정말로 어불성설이라며, 못내 아쉬워하고 있으니, 한일고대사를 공부한 필자가 볼 때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더욱이 그는 한 술 더 떠 “이상, 한국의 ‘수상스런 시설 구적(舊蹟)’을 조망해 보았다. 이런 수법의 시설 구적은 조금만 검토를 해 보아도 쉽게 마각을 밝힐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시설 구적에 대하여 한국인이 일본에 대하여 문화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기 때문인가, 겉으로는 비판이 가해지지 않는다. 물론 한국 학계에서도 이러한 시설 구적은 학술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자치단체와 교류단체가 일한우호라 칭하고 이러한 시설 구적에 참배하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현상이다. 이러한 시설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역사적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싼값으로 편리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과 유적은 ‘일본과 일본인, 일본문화의 루트는 모두가 한국이다’라고 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역사인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인식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매우 유치한 발상으로 상기 유적지를 매개로한 한일간의 교류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학술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날조 유적에 대하여 일본의 자치단체 관계자라든가 교류단체가 ‘일․한우호’라 칭하며 구 유적에 참배하는 것은 우려할 일이라고 미즈노씨는 주장한다. 아니, 자못 비장한 각오로 끝을 맺고 있다.
미즈노씨는 한국인들이 문화우월감을 갖고 날조하여 만든 유적지에 대하여 얼빠진 일본인들이 호응하여 국제교류를 갖는 것은 결국 한국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 되므로 일본인들은 이를 피해야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참으로 어리석은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학자는 학술적 연구로 정확한 위치선정을 할 필요가 있지만, 단편적인 기록만으로는 고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연구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아무 근거도 없이 유적지를 꾸미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미즈노씨는 먼저 유적지(날조?)를 매개로한 한․일간의 국제교류에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먼저 구체적인 학술적 반론을 상기 각 자치단체에 보내는 것이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학술적 허상이 아니고 현실이며, 경제를 발전시켜야하는 주체이다. 학술적 근거는 학자들이 하는 일이지, 지방자치단체에서 할 일이 아니다. 아울러 미즈노씨는 한국인의 문화 우월주의를 주장하려고 만든 유적지에 일본인들이 부화뇌동한다고 못마땅해야 할 일이 아니다. 어찌되었건 미즈노씨의 분풀이적인 짧은 반론보다는 훨씬 한국 측의 근거가 아직까지는 있어 보인다.
그렇게 따지자면 일본에 있는 수십만 개의 신사에서 각 각 모시고 숭배하는 대상물들은 역사적 기록과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미즈노씨에게 되묻고 싶다. 특히 일왕 계보에 있어서도 ‘일본서기’의 기록 중 초대 신무(神武)로부터 제9대 개화(開化)까지는 실제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일본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데, 이것부터 한번 증명함이 어떨지? 역사왜곡은 기본이요, 남 나라 땅인 독도마저 일본영토라고 우기고 억지 부리는 일본인들이 어찌 감히 실재적인 역사적 인물로 알려진 왕인박사나 홍길동(소설이라 하지만, 실재인물을 묘사한 것으로 판단 됨)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은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안 그런가? 미즈노씨!
와세다 대학의 미즈노 유 교수 같은 분은 일본 천왕가가 3번에 걸쳐 바뀌었다고 ‘3왕조 교체설’을 주장하는데, 이를 모르는 척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이 양심불량아니던가? 더욱 가관인 것은 ‘일본서기’ 기록에 초대 일왕인 신무가 서기전 660년에 즉위했다하니, 이를 사실로 믿음은 지적 수준이 형편없는 일본 우익인물들이거나 신토오와 천황제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일 뿐이다.
상기 기고문은 한일관계를 봄에 있어 미즈노씨의 콤플렉스만 드러낸 글이 아닌가한다.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시각으로 보면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한․일 양국민간의 교류에 대하여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교류는 교류대로 해가면서 정설이 아니라고 불만이 있는 학자는 학자대로 연구해서 정설을 만들어 내면 된다. 학자라 하여 현실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학술적 근거가 있어야 만이 유적 조성이 가능하며 그 후에 국제교류가 시작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은 어리석거나 앞뒤 안 맞는 얘기이다. 기존의 유적지가 근거가 부족하다하여 판마저 뒤엎을 것이 아니라, 먼저 충분한 반론 제기를 하고 해결책이나 연구 성과로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여 한․일 양국 국민이 정설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미 조성된 유적지를 새로운 학설에 따라 폐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 또한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②‘SAPIO’ 2003년 10월 8일자 23쪽~25쪽
제목:-친북신파- 「사랑은 국경을 넘는다」「CIA공작원이 사랑의 장해」의 엉터리 스토리 속속 공개 중, 북조선「미녀군단」에 감쪽같이 속아 농락당한 한국판「멍텅구리 바보 남북 멜로드라마」의 촐랑거림
예의 한국 폄훼와 비방의 최선봉에 선 극우잡지에 미즈노씨가 노히라 ?스이라는 필명으로 2003년 대구에서 벌어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의 남북 팀을 위한 단일응원과 북한 미녀들의 응원에 대하여 당시 만들어진 한국의 드라마, 영화와 연결시켜 혹평하고 있음이다. 당시의 남북화해무드를 반영해 만들어진 ‘남남북녀’와 ‘휘파람공주’와 같은 영화와 ‘신견우직녀’ 등의 드라마에 대하여 매정하고도 차가운 비난조의 기고문을 올렸으니, 그의 가면은 두껍고도 두껍도다.
프로필에는 같은 잡지 2002년 5월22일호에 추가하여 ‘웬일인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なぜだかで韓國で一番有名な日本人)’이란 부분도 추가되어있다. 아마도 KBS의 ‘좋은나라 운동본부’에 출연하면서 그를 친한파로 오인한 인정 많은 한국인들의 호응으로 속내로는 친한파가 절대 아닌 미즈노로서도 약간 미안했던지, 일본에서 그의 본심을 밝히는 책을 냈음이다. 정말로 웬일인지 한국에서는 그를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잘 구사하는 외국인이자 친한파로 알고 좋아했으니, 그의 본심은 일본에서 ‘나는 조국 일본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한국인들이 왜 나를 좋아하지?’로 집약되지 않았을까한다.
하여튼 이 기고문 또한 미즈노씨의 속내가 잘 밝혀지는 좋은 증거물이 되고 말았다. 당시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응원 차 내려온 북한 미녀군단에 대하여 독설을 퍼부었다. 당시 만들어진 남한 대학생 철수와 북한의 인민무력부장의 딸인 여대생(연희)이 연변의 한 발굴현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의 ‘남남북녀’라는 영화마저 못마땅해 하며, 이는 “유니버시아드를 의식해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하면서, ‘멍텅구리’니 ‘바보’라는 말로 비난까지 하니, 학자로서의 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의 인격을 유감없이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음이다.
‘남남북녀’는 물론 ‘장군님(김정일)의 딸과 악사와의 사랑을 그린 ‘휘파람공주’’라는 영화에 대해서도 유니버시아드를 의식한 영화라며, 오지랖 넓은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북조선관련 드라마와 영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의 북조선관계 영화’라 하면 ‘쉬리’와 ‘JSA’ 등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그 내용이 확 바뀌어졌다. ‘쉬리’는 ‘남북의 대결’을, ‘JSA’는 한국병사와 북조선병사와의 ‘화해’를 그린 작품이지만, 최근의 북조선물은 오로지 남북남녀의 ‘연애’를 묘사하고 있다.
우선 작년(2002년) 12월에 개봉된 ‘휘파람공주’. ‘휘파람’이라함은 북조선의 가요곡명으로, 경쾌한 멜로디로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왜 ‘공주(왕녀)’인가하면, 히로인이 북조선의 최고지도자․김정일장군의 딸(숨겨둔 자식?)이라는 설정 때문이다. 스토리를 대충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대는 2000년 5월의 서울. 역사적인 남북수뇌회담 전에 북조선의 예술공연단이 서울에 온다. 무용가로서 예술단에 참가하고 있는 김정일의 딸 김은지는 경호가 느슨한 틈을 타 숙사의 호텔로부터 탈주한다. 북조선 공작원과 한국 정보기관의 추적을 따돌리고, 변두리의 카바레에 뛰어든 은지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악사들과 행동을 함께한다. 은지는 밴드의 매니저를 떠맡지만, 결국 밴드의 리더인 준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은지가 매니저가 된 덕으로 악단은 멤버간의 불협화음과 자금부족을 극복. 준오가 이끄는 밴드는 5월말에 록 페스티벌을 향해 맹연습을 반복한다.
한편 미국의 CIA는 비밀리에 김은지의 뒤를 밟고 있다. 미국은 은지가 김정일의 딸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으며, 비밀리에 은지를 암살해서 남북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조선반도(한반도)에 있어서의 자국(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이다.”...필자 중략....
그는 이어서 “‘휘파람공주’라는 영화는 이전에 일본에서도 공개된 북한관련 영화같이 남북의 긴장과 연애를 그린 작품 같지만, 이 영화로부터 그러한 분위기는 조금도 없고 은지의 당돌한 행동에 희롱당하는 극빈한 악사들과 남북 정보기관의 소란을 피우며 웃기려는 희극이라 하는 것이 제일 타당하다. 유일하게 위협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CIA요원들뿐이다. 한국의 동맹국이어야 할 아메리카가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할만 하지만, ‘민족의 화해(연애?) 앞에서는 아메리카와의 동맹도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로써 이해된다.”라고 자못 영화평론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한국인의 대미인식에 있어 나이가 젊을수록 미국보다는 같은 동포인 북한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2003년 7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타나는바, 이렇게 된 이유는 드라마와 남남북녀 같은 영화의 역할이 컸으며, 북한 미녀응원단의 “우리들은 하나”라는 구호에 의해서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유니버시아드 대회 후 북한과의 이념차이에 대하여 변화가 있었음도 묘사하며, 남북통일에 대한 그의 속내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즉 , “유니버시아드가 끝나고 한국의 ‘북조선미녀 붐’은 일단락된 모양이다.
북조선의 미녀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은 민족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었다. 그러나 동시에 남북 상호 이해의 어려움과 통일에의 길이 아직도 험난함을 좋든 싫든 간에 재확인하게 되었다. 드라마 ‘신견우직녀’를 제작한 MBC의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져 있었다. 현재의 한국인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생각되었기에 일부를 소개해보고 싶다. ‘정말로 드라마만으로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금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서 본 북한 응원단의 모습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았네요, 드라마 같이 짧은 순간에 이념과 사고의 벽을 넘는 사랑이 가능할까요?’
과연 이런 드라마가 현실이 되는 날이 올까 오지 않을까......라는 것보다 현실이 조금이라도 드라마에 가깝지 않는 한 ‘남북의 화해도 ‘남남북녀(영화)’의 연애도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현재의 엄연한 상황이다.”라 하여 남북화해와 통일에 관한 그의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가히 조심하고도 조심해야할 인물이로다.
③‘SAPIO’ 2004년 8월 18일자 80쪽~82쪽
제목:앙천(매우놀람)「여자는 음란, 남자는 비열」-이래서 방송할 수 없다
「후유소나(=후유노 소나타: 겨울연가)」로써는 알 수 없는 한국드라마「엉터리일본인」열전. 상기 제목으로 ‘사피오’에 기고한 본 글은 프로필에 소오바샤(雙葉社)에서 간행한 최신간행물로 ‘한국 속의 엉터리 일본인(韓國のなかのドンデモ日本人)’이란 책 내용에서 주장된 내용 같다.
먼저 잡지사에서 서두에 노히라(미즈노)씨를 소개하는 글부터 번역해 보자!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시점으로 최근의 ‘한류붐’을 바라보면, 단순한 ‘놀라움’으로는 끝낼 수 없다. 복잡한 생각이 끌어 오르는 것 같다. 특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위화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것은 한국작품에 등장하는 ‘일본인’의 묘사방법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금년(2004년) ‘한국 속의 엉터리 일본인(韓国のなかのトンデモ日本人)’을 저술한 노히라 ?스히(미즈노 ?페이)씨가 한류 팬이 깜짝 놀랄 한국의 ‘국내사정’을 소개한다.”로 시작되는 글이다.
미즈노(노히라)씨는 한국의 드라마나 TV에서 일본인을 형편없고 터무니없는 엉터리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분개해 하고 있다. 특히 일본여자는 모두가 한국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에 순종적이고 음란한 키모노 여자’로 묘사하며, 일본남자는 ‘야비하고 잔인하고 비열한 야쿠자, 사무라이, 샐러리맨’으로 그려진다고 이를 일본 독자들에게 알려 한류가 거짓됨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63년 작의 ‘행복한 고독’으로부터 68년 작 ‘일본인’과 ‘동경의 왼손잡이’, 70년의 ‘굿바이 동경’, 80년대의 ‘ 일본여자’, 89년의 ‘애란’, 90년의 ‘장군의 아들’ 92년의 ‘장군의 아들2’영화가 왜곡된 일본, 일본인상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드라마도 마찬가지로 94년 8월 SBS의 ‘아키코의 꽃신’과 같은 해 MBC의 ‘대국(對局-바둑세계를 그린 작품)’, 96년 KBS의 ‘며느리삼국지’, MBC의 ‘프랜드’ 2002년 7월부터 2003년 9월까지 방영된 SBS의 ‘야인시대’, 2004년 MBC의 ‘소나기’등이 있으나 거기서 그려지는 것도 예외 없이 ‘한국남자와 일본여자’의 연애로 명확히 40년의 역사를 가진 ‘일한연애드라마’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 공개되는 것은 형편상 역사적인 문제라든가 일본인에 대한 매도용어, ‘순종적이고 음란한 일본여자’라고 하는 요소, 일상생활에서의 키모노착용과 같은 시대착오는 모두 삭제되고 있다며 한국 드라마에 의한 일본, 일본인 왜곡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례를 들면, 그는 ‘일본 여자는 모두 한국 남자를 좋아하게 된다.’라는 제목으로, “우선은 한국영화․드라마에 나타나는 ‘일본 여자’로부터 보자. 우선, 성격은 조용하고 신중하며, 어디까지나 남성에 순종. 거의 전원이 키모노를 입고 등장, 정월(설)도 아닌데, (항상) 키모노와 후리소데(긴 소매)를 착용한다. 이름은 전부가 ‘OO꼬’(마지막 자가 ‘꼬’자로 끝나니, 일제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순자, 숙자, 미자와 같이 ‘꼬(子)’자로 이름이 끝난다는 말). (일본인 여배우의)배역은 ‘한국주인공에 홀딱 반하는 히로인’이다. 보통은 얌전하지만, 일단 한국주인공과 만나면 욕정에 불이 붙는 일도 있다.
이러한 ‘일본의 여자’가 등장하는 것은 대부분이 ‘일본 여자와 한국 남’의 연애영화 드라마이다. 이러한 수법의 영화 드라마의 역사는 길어 필자가 확인 가능했던 가장 오래된 작품은 1963년 공개의 ‘행복한 고독’이라는 영화다. 대학출신의 재원 토시코(키모노 착용)가 가족의 맹 반대를 뿌리치고 한국 청년과 결혼, 결국 한국에 귀화한다는 줄거리이다.
68년 공개의 ‘일본인’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자식인 한국인 청년과 일본 검사의 딸 유리코와의 연애가 그려지고 있다. 줄거리는 유리코를 고통스럽게 하는 야쿠자 야마모토의 방해를 물리치고 둘이 맺어진다는 작품. ‘동경의 왼손잡이’(68년)에서는 동경에 잠입한 한국의 첩보원이 일본여자 히네코의 도움으로 조선총련(총련)의 비밀조적을 괴멸시킨다.
더욱이 이 영화의 속편 ‘굿바이 동경’(70년)은 동경에 잠입한 한국의 첩보원이 조선총련의 비밀조직을 괴멸시켜, 비밀조직에 잡혀있던 일본인 유리코를 구출해서 두 사람이 서울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필자 중략...96년 KBS(=한국방송공사)가 방영한 ‘며느리삼국지’는 일본여자 미치코가 한국가정에 시집온다는 홈드라마.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에 방송된 연속 드라마였는데, 꽤 시청률이 높았다. 미치코는 ‘동경대학 관광개발학과’ 출신이었지만, 일본에 유학중이었던 한국청년에 한 눈에 반해 한국까지 밀어닥친다는 설정으로 되어있다.
역사적 갈등이 거의 묘사되지 않는 작품이었지만, 미치코의 부친이 서울에 와서 ‘종군위안부, 독도(타케시마)문제, 모두 일본이 나쁘다’라고 말하면서 무릎 꿇는 장면이 있다.”며, 그는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천편일률적이고 왜곡된 일본여자 이미지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96년에는 월드컵 축구 일한공동개최가 결정되어, 이러한 분위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필요성으로부터 일한공동으로 ‘일한연애드라마’제작이 구상된다. ‘프렌드’(MBC=한국문화방송)TBS,2002년) ‘소나기’‘Star's Echo’(MBC 후지,04년) 등이지만, 거기서 묘사되고 있는 것도 예외 없이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와의 연애. 명확히 40년의 역사를 가진 ‘일한연애드라마’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다만 일본에서도 공개되었기에 사정상, 역사적인 문제와 일본인에 대한 매도용어, ‘순종적이고 음란한 일본여자’와 같은 요소, 일상생활에서의 키모노착용과 같은 시대착오는 전부 제거되어 있었다. ”라며,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드라마를 만들 때에만 일본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바뀌었노라(물론 일본 측의 입김?)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그리는 일본 남자는 -“야비하고 잔인하며 비열”항상 악역의 일본인 남자-로 그려진다고 주장한다. 즉, “그런데, 한국 영화․드라마에 그려진 ‘일본 여자’는 현실과 괴리되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다. 반면,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 남자’의 이미지는 극히 부정적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직접적으로 체험했던 세대를 제외하면, 한국인이 가진 ‘일본 남자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왜구’ ‘문록(임진왜란) 경장의 역(정유재란)’‘조선인을 고문에 거는 헌병’ 등이다. 더욱이 일찍이 일본남자가 한국에서 행했던 ‘계집질(기생관광)’도 이미지 악화에 한 역할을 사고 있다.
이러한 ‘일본남자’의 부정적 이미지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의 영화 드라마에서 ‘일본남자’가 완성하는 역할이란 ‘야비하고 잔인하며 비열한 증오 받는 역’이다.”라며, 대표작으로 ‘장군의 아들’(90년)과 ‘장군의 아들2’(91년)를 들고 있다.
때문에 미즈노씨는 “한국에서 영화, 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묘사되는 일본, 일본인 왜곡 프로를 보지 못하고 이러한 부분이 제거되거나 일본, 일본인 비판이 없는 것만 보고서 한류에 빠져듦은 어리석다.”고 일본인들에게 자랑스러운 듯 한국사정을 속속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니, 절대로 일본에서 공개될 수 없는 일본, 일본인이 심하게 왜곡된 한국 영화나 드라마들 보고나서야 진짜로 한류 팬이 될 수 있다고 핏대 올리고 있다.
따라서 그의 결론은 “일본인 취향의 수출 작품만을 보고서 ‘한류’에 빠져들어, 한국영화 드라마 팬이 되어버린 분들이 많겠지만, 진짜로 한국영화․드라마 팬을 자칭한다면 ‘일본에서 공개 되지 않은(할 수 없는)’영화․드라마를 먼저 봐두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글을 맺고 있다.
일본을 지극히 사랑하는 우익인물 미즈노씨의 울분에 찬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왜곡 비판에 대해 일본우익들은 손뼉을 치며 한류를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합동작전을 꾀하는 것 같다. 유치한 발상과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대하여 느끼는 ‘우월과 콤플렉스’가 믹스된 일본우익 인사들의 후안무치한 쇼를 보는 것 같다.
과연 미즈노씨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하여 그러한 비판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오늘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식민지 시대의 미화와 역사교과서 왜곡도 모자라 독도조차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일본이 과연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비판할 수 있는가 되묻고 싶다. 미즈노씨는 그러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비난에 앞서 먼저 일본이 일제 시대에 한국, 한국민에 가한 징용으로부터 종군위안부 강제 차출과 관동 대지진 때의 6300여명에 이르는 대학살에 대하여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고 미미한 사안을 가지고 그 원인을 찾지 않고 생떼를 부림은 마치 어린 아기가 질투와 시샘으로 자꾸 응석부리며 어리광부리는 것과 같다.
한일간에 모처럼 훈풍이 부는 문화면에서의 한류조차 거부하라며 일본인을 향해 선동 질하는 미즈노씨는 후안무치하며 우익인사들과 똑같은 사상을 가진 그렇고 그런 보통의 일본인에 다름 아니다. 일본인들이 과거에 한국민들에게 행한 악행은 묻어두고 억지주장만 일삼는 미즈노씨는 먼저 자신의 조국, 일본이 행한 근현대사나 제대로 배우고 대한민국을 비판할 지어다!
④‘쇼쿤(諸君-SHOKUN)’2004년 8월 177쪽~184쪽
제목:특집 안에서도 밖에서도 ‘반일’의 회오리바람.엣, ‘욘사마’마저도 반일!? 코이즈미수상이 ‘후유소나(겨울연가)’통(通)임을 거드름피우며 요이쇼(얼씨구!)했다. (그러나)욘사마는 타케시마(독도)문제 때문에 매우 화가나 날뛰고 있어요.
“한국 드라마 ‘일본혐오’사정”
상기 ‘쇼쿤’이라는 잡지는 일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익잡지 중의 우익 잡지이다. 한국 때리기와 비난에 있어 최선봉의 용장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출판사에 예의 노히라(미즈노)씨가 ‘SAPIO’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비판했듯이 이곳에서도 한국의 영화 드라마를 비난하면서 한류스타 배용준마저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당연하고도 당연한 주장을 두고 비난하면서 반일파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가히 그가 일본 우익인사에 진배없는 인물이며 지한파(知韓派)이자, 반한파(反韓派)일 가능성도 엿보이는 근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이다.
미즈노씨가 일본 우익잡지에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비난하고 있을 때 한국의 국영방송은 물론 SBS, MBC마저 그를 무슨 대단한 친한파라도 되는 듯 경쟁적으로 그를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를 향해 아까운 전파를 타게 했으니, 이 아니 얼빠진 일이더냐?
이 기고문에서 그는 김진명 저술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영화화한 것 마저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한 핵병기로 일본을 향해 발사한다고 극히 불쾌해하고 분개해 한다. 물론 역사왜곡으로 배운 보통의 일본인의 지식으로는 매우 불쾌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 때의 일본인들의 악독한 행위를 알지 못하고 먼저 비판하지 못한다면 미즈노씨의 분노는 그저 그렇고 그런 양심 없는 학자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음이다.
우선 도입부부터 보자! “‘배용준씨는 일본의 여성들 사이에서 [욘사마]라고 불리며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 최근에는 일본의 톱스타보다도 더 인기가 높다.”
지난 6월3일 밤에 도쿄에서 행해진 국제교류회의 석상에서의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이다, 베트남의 환 반 카이 수상,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수상 등을 앞에 두고 고이즈미 수상은 “겨울연가”의 아시아적 일체감과 친근감, 매력을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에 활용하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아마도 아시아의 지도자들 앞에서 ‘겨울연가’통임을 자랑스레 보여서, 친 아시아적인 자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행해진 발언일 것이다. 확실히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하는 한국 드라마와 배용준은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과 다소간의 공헌을 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의 극히 일부이고, NHK가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것을 엄선해서 방영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한국에서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고, 배용준도 ‘친일가(친일파)’이지 않다. 본고에서는 일본에서는 절대방영 되는 일 없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와 배용준의 ‘속내’를 소개, 한국 드라마 붐의 허실을 조망해보려고 생각한다.
천황을 저격하는 역사드라마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에 관한 서적이 대량으로 발생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 관한 것으로 한국의 드라마 사(史)를 취급한 것은 극히 소수이다. 그 드라마 사를 취급한 서적이라도 거의 대부분 건드리지 않은 드라마가 있다.
그는 겨울연가보다 일본인 야쿠자 두목을 때려눕히는 ‘야인시대’가 훨씬 한국인에게 인기 있었음에 불쾌해 한다. 그가 ‘’후유소나‘보다 인기의 ‘야인시대’라는 부제목으로 주장한 글이다. 그에 의하면 “한편, 맨손대결에서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드라마도 건재 한다. 2002년 7월부터 2003년 9월까지 SBS는 ‘야인시대’라고 하는 대하드라마를 방영했다. 출연자는 5백4인, 엑스트라도 포함하면 4만명이라는 대작이었다.
내용은 ‘장군의 아들’과 같이 식민지 하에 있어서의 김두한의 ‘활약’을 그린 것으로, 볼만한 곳도 김두한과 마루오까 경부(警部)와 하야시 오야붕과의 한판승부라고 하는 ‘일본과 한국의 대결’이었다. ‘장군의 아들'과의 차이는 식민지 해방 이후의 김두한까지를 묘사한 점이지만, 전체적으로 일본과 식민지시대를 묘사한 부분의 시청률이 높았다. 식민지시대를 묘사한 제1부의 평균 시청률은 무려 40.00%, 식민지 해방 이후를 그린 제2부는 25.0%(닐센 미디어 조사). 그리고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장면은 역시 김두한과 하야시의 대결로 무려 51.5%를 기록했다.
이 장면에서 5명의 부하를 데리고 온 김두한은 40인이나 있는 하야시의 조직에 대결을 자청, 놀랍게도 이겨 버리고 만다.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어쨌든 (한국)시청자는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김두한에 갈채를 보냈던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김두한을 연출한 안재모는 2002년도 SBS연기대상이라는 10대 스타상을 수상. 드라마의 프로듀서도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 때의 일본은 월드컵배의 공동개최로 친한 무드 일색. 월드컵배 준결승의 한국대 독일전에서는 자발적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현상마저 일었다. 설마 한국인이 일본인을 때려눕히는 드라마에 박수를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실은 일본에서는 거의 대부분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일본인에 대한 매도용어도 보통으로 쓰여 진 이 ‘야인시대’의 시청률은 같은 시기 방영된 ‘겨울연가’보다도 훨씬 높았다. 한국 방영 시 ‘겨울연가’의 최고 시청률은 27.6%, 최종회의 시청률도 25.4%였다는 일을 고려하면 인기의 차는 확실히 드러난다.
일한공동개최로 행해진 W배의 직후에 방영 된 반일색이 강한 드라마에 한국인이 갈채를 보냈다......이 일은 일본인의 대한감정과 한국인의 대일감정의 엇갈림의 크기를 상징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182쪽)
미즈노씨가 화난 이유는 아마도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겨울연가(시청률 최고 27.6%)보다 야인시대 장면 중 김두한과 일본인 하야시와의 대결 시 보인 최고 시청률 51.5%에 경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때려눕히고 승리해야만 좋아하면서 박수친다고, 모든 드라마, 영화가 그렇다며 그는 화를 잔뜩 내고 있음이다.
특히 한류스타 배용준마저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2004년 1월 19일 스포츠투데이 기자회견)”며, 미즈노씨는 화를 내고 있다. 먼저 그의 글을 인용해보자.
“그런데, 여기서 배용준의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본고의 서두에서 ‘배용준은 친일가(핀일파)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일본에서 알려지고 있는 배용준의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것으로, 드라마에서는 실제의 배용준의 속내가 말해지지 않고 있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사실, 배용준은 자기 자신의 대일감정에 대하여 언급을 피하던가, 극히 신중한 발언으로 일관해 왔다. 예를 들면, 일본의 월간지 ‘현대’(2004년 7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한국인의 반일감정에 관한 질문에 “‘우리들 한국인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그것은 모두가 옛일이다.’라고 결론내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상처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더욱이 현재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반일감정과는 별도로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은 배우자라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을 빙빙 돌려서 답하고 있다. 이 ‘일본은 과거에 한국을 식민지화한 용서할 수 없는 국가이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배용준의 세대에 공통된 일반적인 대일감정이다.”
또한 ‘Newsweek'(일본판, 2004년 4월21일호)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질문)아시아에서 대단한 인기자가 된 당신은, 아시아제국의 ‘관계개선대사(關係改善大使)’와 같은 존재이다.
-(배용준)그 점에서는 매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싸움이나 오해는 서로를 잘 몰라서 일어난다. 서로의 언어와 문화에 흥미를 가지도록 하면, 알력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인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인도 일본을 알도록 하면 좋다.
그러나 (배용준씨는) 일한간의 알력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배용준이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일본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국 일본에 대한 ‘(그의) 속내’가 일본인의 기호에 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183쪽)라고 결론 내리며, 일본인들은 배용준씨의 속내(반일감정?)에 속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음이다.
결국, 일본에서 알려지고 있는 배용준의 모습은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것으로 그 곳에서는 실제 배용준의 속내가 말해지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일부 호도하고 있음이다. 배용준이 “나도 한국인으로서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고 말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미즈노씨는 일본역사부터 제대로 배우고 독도문제 또한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가 독도를 일본영토라 주장하는 고이즈미 수상이나 일본우익인사들의 발언에 동조함은 여러 기사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안이다.
또한 미즈노씨는 배용준씨가 독도문제에 있어,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도 늘어놓고 있다. 즉, 그의 글을 다시 인용해보면, “올해 1월에 배용준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한국정부가 일한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독도(타케시마) 기념우표를 발행한다고 한데서 시작한다. 일본정부는 그것에 반발, 한국정부에 우표의 발행 중지를 요구했다. 1월9일에는 고이즈미 수상이 ‘타케시마는 일본의 영토이다’라고 발언, 이것을 ‘망언(망령된 말)’이러고 보는 한국 국내에서는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번에 일어난 반발의 특징은 반일데모 등 종래의 항의행동에 더하여 인터넷상의 반일운동이 눈에 띄었다.
배용준의 일본공식 사이트의 게시판에도 한국인에 의한 매도하는 쌍스런 말이 올라와, 사이트가 일시 폐쇄되는 사퇴가 일어났다. 이것은 배용준을 대상으로 한 항의가 아니라, 사이트를 이용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배용준이 튀기는 물을 뒤집어 쓴 꼴이 되었다. (183쪽)
한편, 배용준 자신은 1월19일 ‘스포츠투데이’라고 하는 한국의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한국인으로서 독도망언에는 화가 난다.’ ‘그러나 홈페이지의(일본인)회원들은 망언과는 관계없다. 오히려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공간을 지키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라며 상당히 불편해 하고 있다. 그도 학자적 양심보다는 그렇고 그런 틀림없는 한 일본인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음이다.
미즈노씨는 “겨울연가=우호는 (일본인들의) 짝사랑”이라며, “여기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배용준이 고이즈미 수상의 타케시마(독도)관련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배용준도 한국의 일반적인 애국자로서 ‘독도는 한국의 영토’ ‘고이즈미수상의 발언은 망언이다’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것은 한국인,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보인다. 만일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에 이해를 표시하는 사람이라면 한국 국내에서 ‘매국노’ ‘친일파(원래는 일본 식민지 지배에 협력한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로써 매국노와 같은 의미)라고 하는 비판이나 매도를 당해 연예활동 중단으로까지 내몰려 버렸을 것이다.
전술한대로 고이즈미수상은 배용준을 ‘조화(調和)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수상에 한해서 말한다면, 그런 물러빠진 달콤한 상념은 빨리 버리는 편이 낫다. 고이즈미 수상이 배용준과 가까이 지내고 싶다면, 우선 ‘타케시마(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더욱이 배용준의 입장도 괴롭다. 혹시 한국인 시청자의 감정에 너무 배려한 나머지 ‘고이즈미 수상의 발언은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초한 망언입니다’ 등이라고 ‘속내’를 공언하면 이번에는 일본 내에서 반발을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일본에서의 연예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배용준 자신은 ‘속내’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연예인에게 ‘조화와 공감을 기초로 한 코뮤니티의 형성’을 바라는 것은 다소 기대과잉이란 감이 든다.
일한 양국의 문화교류라고 하는 시점으로부터 볼 때, 한국의 영화․드라마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은 나쁜현상은 아니다. 일본의 중년여성이 배용준과 ‘겨울연가’에 이루지 못한 꿈을 기대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을 확대해석해서 ‘일한우호’와 ‘국제코뮤니티의 형성’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일본인의 짝사랑이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도저히 일본에서 방영될 수 없는 드라마와 영화가 존재하고, 한국인이 그것에 갈채를 보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184쪽) 라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그야말로 자가당착도 유분수처럼 일본인을 향해 배용준과 한국인을 믿지 말라고 일갈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배용준의 ‘속내’가 그렇듯이 한국인에 있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영토문제는 증오와 원념(怨念), 반감의 대상으로 일본과 타협할 여지 등은 없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로부터 쭉 눈을 돌린 채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드라마에 도취해서 ‘일한우호’를 얘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만족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한국영화․드라마, 매우 좋아함’이라는 수준의 문제라면 ,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이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전부이지는 않다.
일본에서 공개할 수 없는, 그리고 일본인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영화․드라마야말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속내가 잘 표현되어 있다. 배용준의, 아니 한국인의 속내를 잘 알고 싶다면, 그러한 영화․드라마는 반드시 봐 둘 필요가 있다.”(184쪽) 라고 자못 심각한 마음으로 일본인들에게 훈수를 두고 있다.
⑤‘현대코리아’ 2004년 12월호/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