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힘들고 막막하지만… 사명감과 호기심이 나를 채찍질"
강력반 형사가 경찰관의 꽃이던 시절이 있었다. 몸은 지치고 주머니는 텅 비었어도 신이 나서 범인을 쫓던 시절. 강력반 형사만이 갖는 묘한 매력이 그들을 다시 일으켜세우고는 한다.
하루 25시를 뛰는 강력반 형사들의 한숨과 보람, 그리고 각오.
인천의 한 택시회사에 세미정장 차림의 건장한 30대 남성 둘이 불쑥 나타났다. 근육질 몸매에 매서운 눈초리의 이들은 서울 용산경찰서 강력6팀의 이형식(38)·문경렬(33) 형사. 두 달째 한 마약 유통 조직원들을 잡아들이고 있던 이들은 이날도 지루한 탐문과 잠복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경기도 김포 인근에 있다는 ‘마파도’(대마밭)를 찾는 것. 마약 판매책인 용의자 검거를 위해 들이닥친 이들이 회사 관계자에게 내뱉는 첫 마디는 의외로 점잖다.
“폭행사건 목격자를 찾고 있는데요, 실례지만 직원 중에 ○○씨 계신가요?”
이들의 외모에 움찔 놀랐던 택시회사 관계자는 ‘목격자 탐문’이라는 말에 마음을 놓고 용의자의 소재를 순순히 적어 주었다.
이 형사는 “요즘은 경찰 신분을 밝히고 탐문에 나서면 상대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신분은 밝혀야 하지만 방문 목적 등은 에둘러 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겸연쩍게 말했다.
강력반 1년 만에 빚은 늘어가고…
어느새 해가 눕자 다시 이어지는 잠복. ‘무에타이’로 다져진 전형적인 ‘액션 공무원’인 이 형사에게는 이 시간이 가장 괴로운 순간이다. 용의자의 집 인근에 차를 세운 이들은 사발면과 김밥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잠복 3일째, 허기진 배보다 오늘은 ‘놈’을 꼭 잡아야 한다는 집념이 앞서서다. 입으로는 라면 국물을 들이켜도 시선은 전방 15도. 다소 긴장감이 흐르는 차 안의 소품들 중 캠코더 기능이 있는 최신형 휴대전화가 눈에 띈다.
이 형사는 “체포 과정에서 자신을 무리하게 제압했다고 항의하는 용의자가 크게 늘어 카메라로 검거 과정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총보다 카메라가 우선”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정당방위 수준의 제압을 해도 인터넷에 경찰이 과잉대응했다는 일방적 주장이 올라와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날 두 형사는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용의자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밤 8시가 넘어 서울로 차를 돌렸다.
이들이 자리를 뜰 무렵 서울 강남경찰서에서는 형사과장 주재 아래 수사본부 정례회의가 한창이었다. 지난 하루 동안의 탐문 결과를 공유하고 오늘의 경로를 나눠 맡았다. 회의를 마친 정성기 과장은 “사건이 일어난 뒤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면서 “증거도, 목격자도 없고 살인 동기도 불분명해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미 두 달째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청담동 20대 여성 살인사건’이야기다.
지난 8월26일 새벽 5시 서울 청담동의 한 건물 2층 화장실 앞에서 발견된 꽃다운 20대 여성.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때 어머니가 가출한 뒤 혼자 살아온 최모(20) 양은 자신을 버린 남자친구를 찾아가던 길에 변을 당했다. 옷이 다 벗겨진 채 발견됐지만 살해 현장과 최양의 체내에서는 용의자의 정액도 체모도 발견되지 않았다. 얼굴이 으스러질 정도로 맞은 상태였지만 지문도 남지 않았다. 부검 결과 최씨의 몸에서 나온 가검물은 일하던 룸살롱에 나가 억지로 마신 양주 한 잔 반이 전부. 며칠째 식음을 전폐한 상태였다.
▶서울 강남경찰서 형사과장 주재 하에 '청담동 20대 여인 살인사건' 수사본부의 정례회의가 한창이다.
강력반 10년차 김권섭(41) 경사는 “나도 딸만 둘인데 이런 사건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며 “범인은 꼭 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김 형사는 “탐문 수사를 위해서는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친해지지 않으면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며 “오죽하면 부산 출신인 내가 목포 사투리까지 쓴다”며 웃었다.
“으메~ 반가운 거, 잘 있었소잉?”
길건너 룸살롱에 들어선 김 형사는 보여주기라도 하듯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를 꺼냈다.
몇 마디 길지 않은 대화를 마친 김 형사는 정씨를 이날 “처음 만났다”고 했다. 룸살롱 같은 곳에 자주 드나들면 비리니 뭐니 말이 나기 때문에 요즘 경찰들에게 관할구역 내 업소는 기피지역이다. 예전 같으면 이미 정보원으로 길들여져 있었을 법한 술집 주인과 종업원들이 이제는 껄끄럽기만 하다.
범죄자들이 돈 생기면 쓰는 데가 술집이고, 사건도 그 주변에서 많이 나는 것은 여전하지만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얼굴을 익히는 상황에서 첩보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 김 형사의 설명이다. 한 동료 형사는 “깨끗한 경찰을 강조하면서도 수사비가 한 달 기름값도 안돼 청렴하려면 게을러야 하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 강력반의 현실”이라고 아쉬워했다.
흉터는 강력반 형사들의 또 다른 훈장?
‘강력반 1년 = 빚 500만 원’이라는 경험치는 강력팀 형사들에게는 상식이다. 서울 영등포 경찰서 박모(50) 강력팀장은 “봉급날이면 표정이 어두운 팀원들 모습에 속이 쓰린다”고 말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월급은 밑 빠진 독 메우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 달에 강력반 형사 한 명에게 지급되는 ‘수사비’는 30만 원 안팎. 자가용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보통 직장인들의 한 달 기름값 정도가 전부다. 자기 차로 전국을 누벼야 하는 강력반 형사에게는 열흘치도 못된다. 기름값 말고도 공무에 들어가는 개인비용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심지어 지난 2월 인신매매범을 잡기 위해 제주도에 내려간 팀원들은 애써 잡은 용의자의 밥값과 비행기표를 십시일반하기도 했다. 지급된 수사비에 용의자 몫은 없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용의자 한두 명 밥값이 얼마나 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쌓이면 만만치 않다”고 씁쓸해 했다. 업무 성격상 수시로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하지만 규정상 보장돼 있는 월 2만5,000원씩의 통신보조금은 ‘각 경찰서 예산 한도 내’라는 조항을 핑계로 지급된 적이 없다.
서울 방배경찰서 강력반 김찬웅(40) 경사의 아들 련기(11)는 지난 2일 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머리를 빡빡 깎은 채 얼굴이며 어깨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 잠든 아빠를 보고 놀라서였다.
이날 오전 0시쯤 양재동의 한 할인점 지하 주차장. 차량 절도 용의자 검거에 나선 김 형사는 용의 차량이 움직이자 도주를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를 멈추려는 김 형사가 운전대에 손을 뻗는 순간 용의자는 고의로 주차장 기둥에 차를 들이받았다.
앞좌석 쪽으로 고꾸라진 김 형사의 피부를 유리창 파편이 파고들었다. 전치 4주의 부상. 몸을 일으켜 동료와 함께 용의자를 검거한 김 형사는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이날도 쉴 수 없었다. 용의자 심문과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사를 마친 뒤 집에 잠시 들른 김 형사에게, 속상한 아내는 “그렇게 다치면서도 계속해야 하느냐”며 원망했지만, 그는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범 검거를 위해 부산행 차에 올라야 했다. 부산으로 떠나던 김 형사는“매년 수사과정에서 다치는 선후배들 숱하게 봐왔다”며 “6년 만에 이 정도면 괜찮은 편 아니냐”며 빙그레 웃었다.
어떻게 덤벼들지 모르는 용의자들의 위협에 강력반 형사들은 늘 부상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자신을 지킬 때 도움이 되는 장비는 삼단봉과 가스총·전자충격기·방검복 정도다. 권총이 지급돼 있기는 하지만 사용만 하면 과잉 대응 논란을 일으키는 탓에 손대기가 겁난다.
강력반 11년차의 한 형사는 “등산용 칼이라도 휘두르는 용의자를 만나면 가스총은 초라하다”며“총을 쏴야만 제압이 가능하지만 언론에 잘못 나면 식구들 밥숟가락 놓을까봐 어떻게든 몸으로 때운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경찰의 순직률은 일반 공무원에 비해 1.6배나 높다. 공무수행 중 부상을 입는 공상률은 일반 공무원의 4.2배. 그러나 순직할 경우 그 보상은 초라하기만 하다. 지난해 ‘이학만사건’ 당시 이씨가 갑작스레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의 유족들이 공식적으로 받은 보상금은 각각 6,000여 만 원과 4,600여 만 원이 전부였다.
지난 10월7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경찰서 강력3팀. 강력팀 중견 형사인 현모(38) 경사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전날 오전 9시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의 당직근무를 마친 뒤였다. 혁신기획팀 일까지 맡아 아침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30시간째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5회 연속 베스트 수사팀으로 선정된 서울 동대문경찰서 강력 3팀(팀장 박승태 경위)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력반 6년차…. 어느덧 중견 형사가 된 그는 요즘 가끔 떠난 동료들이 생각난다. 현 형사가 일을 시작한 2000년 강력반에서 만났던 사람 중 이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 형사는 “다른 보직으로 옮긴 동료도 있고 좋지 않은 일로 면직된 동료도 있다”며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오락실이나 주점을 운영하거나 변호사 사무장이 돼 경찰에서 요주의 인물이 된 퇴직 동료들을 보면 가끔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해 보게 된다”고 한숨의 의미를 부연해 주었다. 집요하게 따라붙어 범인을 낚는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막상 사회 적응력은 ‘0’에 가깝다는 것이다.“전직 경찰이 어디 가서 다른 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 들어봤어요?”
현 형사가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17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또 피곤한 몸이지만 틈만 나면 상무관이며 헬스장을 찾아다니며 채찍질을 한다. ‘형사는 배 나오면 끝장’이라는 말이 새삼 와 닿아서다. “가끔 범인을 뒤쫓다 숨이 가쁠 때는 위기감이 든다”는 현 형사는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니만큼 체력 단련은 필수”라는 말을 남기고 이날도 긴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체력단련실로 향했다.
전직 후 사회 적응력은 ‘0’
서울 용산경찰서에는 정성희(53) 강력6팀장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배달됐다. 얼마 전 그가 검거해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한 재소자가 보낸 것이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몇 번씩이나 교도소를 들락거렸지만 반장님처럼 저를 인간적으로 대해 주시고 따뜻하게 관심 가져준 분은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출소하면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마약사범 김모(34) 씨의 편지는 정 팀장에 대한 감사와 새 인생에 대한 다짐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경찰생활 28년, 강력계 형사생활만 26년째인 정 팀장은 강력계 형사생활이 고단하지만 이렇게 인간적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라는 고 말한다.
“요즘 어때” 하는 질문에는 늘 “죽을 맛”이라는 강력반 형사들이지만 “힘들면 그만둬”라는 권유에는 정색을 하는 것도 이들이다. 현장을 뛰는 형사들은 하나같이 형사가 ‘천직’이라고 했다. 그들은 “‘비는 만인의 머리에 평등하게 떨어진다’는 믿음을 지켜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