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있어야 해서 있는 것'과 '있으니까 있는 것' 두가지가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전자와 후자의 존재가치를 물어보면 모두다 전자를
더 소중하고 가치있게 생각한다.
단 한명만이 후자를 더 가치있게 생각했다.
너무나 신기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왠지 그냥 그렇게 느껴졌단다.
있어야 해서 있는 것.
우선 이것이 무엇이냐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있어야 해서 있는것은 말 그대로 있어야 해서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위, 컴퓨터, TV, 신발, 공장, 자동차 그리고 집...등등
쉽게 말해 문명이다.
문명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다.
있으니까 있는 것은 역시 말 그대로 있으니까 있는 것이다.
역시 예를 들어 나무, 돌, 물, 바다...그리고 인간... 등등
쉽게 말해 비(非)문명이다.
비문명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있는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계보는 쇼펜하우어에서 나왔다고 윤리시간에
배웠다. 쇼펜하우어는 허무주의, 반이성주의, 비합리주의, 주정주의, 염세주의자다. 그의 철학이 생철학이란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그의 철학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나왔다는 말도 잘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실존주의의 성향은 주체성 회복을 중심으로 한
비문명주의자들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샤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했다.
실존은 '있으니까 있는 것'이고, 본질은 '있어야 해서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있어야 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인간이 아니다.
누구도 날 이용할 정의를 가진 인간은 없다.
나의 존재가치는 '삶' 그 자체에 있다.
나는 살아 가는 것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나의 존재가치는 '삶' 그 자체에 있지만
나의 존재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