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약물 다이어트, 청소년들이 위험하다
위클리조선 | 기사입력 2007-09-04 14:37
“살만 뺄 수 있다면 거식증 걸려도 좋아”… 무분별한 다이어트 확산식욕억제제 남발, 성장기 영양불균형 초래하고 폭식 등 부작용도 심각
↑illust 정현종
“급식을 왜 이렇게 많이 남기니?”
“곧 소풍이잖아요. 그전까지 살 빼야 해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지미선씨는 지난 봄에 급식지도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초등학생들이 소풍이나 현장체험학습을 대비해 살을 뺀다는 것이다. 취업이나 결혼식 등을 대비해 살을 빼는 여성들 얘기는 들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른 학생을 조사해보니 그 학생 외에도 4명의 학생이 소풍을 대비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지씨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소에도 15명의 여학생 중 절반 정도가 몸매에 신경을 쓰며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오히려 마른 학생들이 살찌는 것에 더 민감하다”고 말했다.
대학생·청소년·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성장기의 학생들 사이에서 다이어트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학생들의 경우 성인보다 판단력이 떨어져 다이어트로 인한 폭식증·거식증 등의 부작용과 다이어트 식품·약품의 남용 등 문제 발생 비율이 높다.
weekly chosun이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 30명의 여학생 중에서 자신의 체중에 만족하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운동보다는 식사조절을 통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키와 몸무게의 평균은 키 167㎝에 몸무게 49㎏으로 표준체중보다 10㎏이나 낮았다.
학생들은 운동과 식사조절을 병행하는 다이어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운동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주로 식사조절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다이어트의 목적으로 건강을 꼽는 경우는 1명뿐이었고 나머지 학생은 모두 예뻐지고 싶거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식사를 한 뒤 ‘왜 먹었을까?’라는 생각으로 구토를 느끼는 학생은 15% 정도 됐고 실제로 거식증을 겪고 있는 학생도 1명 있었다. 학생의 33%는 식욕억제제 등을 처방 받기 위해 비만클리닉을 다닐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서울 강남의 한 비만클리닉의 경우, 환자의 3분의 1 정도가 학생이며 고도비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학생들 스스로가 원해서 찾는 경우라고 한다.
이곳에선 청소년에게 운동요법과 함께 이산화탄소를 피부에 주입해 지방을 분해시키는 카복시테라피 요법을 시술하고 있다. 비용은 5주에 20만원 정도. 학생이 성인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이어트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학생들의 다이어트·체중감량 열풍은 헬스클럽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의 한 헬스클럽 원장은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운동하러 오는 학생이 크게 늘었다”며 “요즘엔 중고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손님도 꽤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상에서도 ‘다이어트’는 인기검색어 우선순위에 항상 올라 있고 싸이월드에는 다이어트와 관련해 3000여개의 클럽이 운영 중이다. 클럽 회원의 대다수는 20대 초반의 여성이지만 고등학생 이하의 어린 학생도 상당히 많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깡마르고 싶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거식증에 걸릴 수 있는 방법을 묻는 글도 올라있다.
다국적 생활용품회사 유니레버가 지난해 아시아 9개국의 15~17세 여성청소년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여성청소년 49%가 17세 이전에 다이어트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어트 경험 정도는 대만(58%)에 이어 두번째였다.
또 한국 여성청소년의 3%는 체중관리를 위해 먹은 걸 토하거나 아예 먹지 않는 등 심각한 다이어트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민우회가 설문조사한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여고생 1000여명을 조사한 결과 51.9%가 다이어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11~18세 여성청소년 중 29%는 날씬해져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학업과 음식물 섭취에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경우 운동을 통한 체중조절은 지나치지만 않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음식조절이나 약물을 이용한 다이어트는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거식증과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는 다이어트로 인한 대표적인 부작용. 거식증은 정상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만이라고 생각해 과도하게 식사량을 줄이고 식욕을 억제하는 증상이다.
폭식증과 거식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한쪽은 너무 많이 먹고 한쪽은 음식을 거부한다는 것이 다르지만 모두 날씬한 몸매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 지나치게 굶으면 몸은 자연적으로 영양소의 공급을 원하게 되고 참을 수 없는 충동으로 폭식을 하게 된다. 엄격하게 다이어트를 한 사람일수록 더욱 음식에 대한 자제력을 상실하게 되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폭식하게 된다.
폭식한 사람은 주체할 수 없이 음식을 많이 섭취하다가도 체중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고 통제력을 잃은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수치심으로 억지로 구토를 하거나 설사약을 사용하게 된다.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고 이뇨제를 습관적으로 사용할 경우 신장질환에 걸릴 우려가 있으며 소화기에 염증이 생기고 심리적으로는 열등감과 좌절감을 겪게 된다.
다이어트 관련 사이트나 신경과 게시판에는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이 많이 올라있다. 한 익명의 회원은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데 식구에게 들킬까 무서워 조마조마해요.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을 기다리게 돼요”라고 호소하며 조언을 구했다.
무분별하게 다이어트 약물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경기도 용인의 ‘참좋은 통증의학과’에서 비만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 정우택씨는 “식습관을 바로잡고 운동요법 위주로 치료하고 있지만 빠르고 강력한 체중감량을 원하는 환자들은 약물 위주로 치료하는 곳을 찾아 병원을 옮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다이어트 약물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식욕을 느끼는 뇌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거나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식욕억제제’와 섭취된 지방이 체내에 흡수되는 것을 줄이고 배설되게 하는 ‘지방분해효소억제제’다. 식욕억제제에는 습관성이나 중독성이 있어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는 염산펜터민, 주석산펜디메트라진, 염산디에틸프로피온 성분제제와 전문의약품으로 관리되는 염산시부트라민 성분제제가 있다.
↑요즘 헬스클럽에서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하는
청소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600억원에 달하는 다이어트 약품시장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약은 한국애보트사의 리덕틸로 한 해 매출이 250억원에 달한다. 리덕틸은 뇌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신경호르몬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재흡수를 억제시켜 식욕을 떨어뜨리는 약물이다.
본래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하던 중 이 약을 복용한 환자의 체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비만치료제로 개발됐다. 중독의 위험은 없지만 입마름·피로·불면증·두통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리덕틸은 지난 7월에 특허 유효기간이 끝나면서 복제약이 여러 제약회사에서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한때 한 달 복용량 기준으로 12만원에 달했던 리덕틸의 값이 6만원대로 떨어졌다. 복제약은 4만~5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때문에 청소년도 과거에 비해 큰 부담 없이 약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도 사용이 늘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와 방안’ 토론회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향정신성의약품 소비량은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마약관리과 김호동씨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리덕틸 등에 비해 값이 싸고 초기에 체중감량 효과가 뛰어나지만 무분별하게 복용할 경우 마약과 같은 의존성과 습관성이 생기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약물은 청소년도 어렵지 않게 구해서 사용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는 원칙적으로는 비만치료제 처방이 금지돼있지만 식욕억제제 처방전 발급에 제한이 없고 가정의학과·내과·피부과·산부인과 등 어디서든 비만약 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리덕틸의 값이 낮아진 이후로 여러 병원에는 리덕틸을 처방해 달라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다이어트보조제 관련 사이트에는 어린 학생이 ‘대신 처방을 받아주거나 처방 받은 약을 팔아달라’는 내용의 글을 많이 올리고 있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건강보험심사연령평가원의 관리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유통경로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제약회사의 생산실적이나 매출실적을 제외하고는 연령별 사용량이나 처방 패턴에 대한 통계가 없다. 식약청이 지난 6월 향정신성의약품 및 식욕억제제를 취급하는 약국 및 의료기관 134곳을 점검한 결과 15곳에서 21건의 위반사례를 적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식욕억제제를 식이요법이나 운동 등 체중감량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비만환자에 한해 보조요법으로 최대 4주 이내로 단기처방에만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3개월 이상 장기 복용하거나 다른 식욕억제제와 같이 복용할 경우 폐동맥성 고혈압과 판막성 심장병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홍순욱 식약청 마약관리팀장은 “최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식욕억제제의 사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그런 약물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전문인도 그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황에서 약물의 무분별한 사용은 결국 심한 우울증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나친 다이어트는 또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특히 성장과 뼈 건강에 필수적인 칼슘 섭취의 부족도 심각하다. 하루 한 끼만 밥을 먹고 나머지 두 끼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는 서울 대치동의 박모양은 “친구들 대부분이 다이어트 식품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식품은 가격도 고가인데다 장기복용할 경우 심각한 영양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칼슘 섭취량은 한국영양학회가 제정한 권장섭취량의 76.3%에 그쳤다. 연령대별로는 1~2살의 유아들만 100.9%로 권장량을 초과했고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권장섭취량에 미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13~19살 청소년은 55.4%로 가장 낮았다. 이 연령대의 여성 중고생이 칼슘 섭취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또 7~12살이 68.7%, 20~29살이 76.9%로 성장기의 칼슘섭취량이 특히 낮은 편이었다. 나머지 연령대에선 65살 이상이 65.4%, 3~6살이 77.5%, 50~64살이 77.7%, 30~49살이 83.9%였다.
여성 중고생과 20대의 칼슘섭취량 부족은 젊은 여성의 뼈 건강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광동한방병원이 지난해 직장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20대 여성의 75%가 골감소증이나 골다공증인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이들이 결핵에 걸리는 비율이 증가 추세인 것도 무리한 다이어트로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대유비스병원 내과전문의 이소영씨는 “청소년이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약을 오·남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다이어트 약 중 식욕억제제를 갑자기 많이 복용하면 저호흡이나 경련, 혼수상태를 일으켜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 “청소년이 다이어트 때문에 균형잡힌 식단으로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성장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특히 여성청소년의 경우 나이 들었을 때 골다공증이 나타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 박준동 기자 jdpark@chosun.com
한승욱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