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우리 역사 바로잡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왜곡되고 폄하된 고구려 역사의 30가지 쟁점들을 되짚어보고 있는 책이다. 『삼국사기』와 전통적인 중화 패권주의 사관에 입각해 쓴 중국 사서들의 잘못된 표기방식,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 때문에 고구려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다소 왜곡되고 평가절하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이라는 구각을 깨고 고구려를 바라보고 있다. 독자적인 천하관으로 광활한 대륙을 경영한 고구려에 대해 풍부한 사료와 함께 제시한다.
저자 : 이덕일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뚜렷한 관점과 흡입력 있는 문체로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냄으로써 역사대중화를 이끌어가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역사학자다.
특히 『조선왕 독살사건』,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사도세자의 고백』, 『조선선비 살해사건』 등의 조선사 관련 저술은 조선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는 우리나라 최초 국가인 고조선의 실체를 다각도로 파헤쳐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에 의해 왜곡된 고조선 역사를 완전 복원해낸 책으로 주목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며, 시대와 인물을 읽어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저술에 힘쓰고 있다.
저자 : 김병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인 증조부와 부친을 이어 가학家學인 한국사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단국대학교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대한독립운동총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문위원으로 한국사 저술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공저), 『조선 명가 안동 김씨』,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3』(공저), 『한국사의 천재들』(공저) 등이 있다.
저자 : 박찬규
단국대학교에서 한국 고대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에서 연구원으로 고구려사를 연구하고 있다. 1998년 만주 지역 첫 답사에서 고구려를 재발견하는 벅찬 감동을 느낀 후 지금까지 중국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고구려?발해 유적지를 본격적으로 답사하며 우리 역사의 현장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이며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 편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1부 고구려의 건국
1_ 고구려 시조 추모왕은 단군의 아들인가?
2_ 고구려 시조 추모왕은 어디에서 왔을까?
3_ 베일에 싸인 예맥족의 실체
4_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부여 시조 동명왕
5_ 고구려 700년인가 900년인가
2부 전쟁과 외교로 보는 고구려의 강역
6_ 중원의 한·신·후한과의 숙명적 대결
7_ 선비족 모용씨의 전연·후연과의 관계
8_ 북위를 장악한 고구려 사람들
9_ 남북조를 이이제이로 다스리다
10_ 북방 유목민족들과 고구려
11_ 백제와 신라와 고구려
3부 고구려의 국왕과 지배층
12_ 고구려 초기의 이상한 왕위계승
13_ 태조대왕 즉위의 수수께끼
14_ 농민 출신 을파소의 개혁 정치
15_ 광개토태왕의 대제국 건설
16_ 장수왕의 평양 천도가 남긴 것
17_ 고구려 후기 왕실의 혼란
18_ 귀족과 국왕의 갈등
4부 중원과의 전쟁
19_ 고구려의 군사력이 강했던 이유는?
20_ 고구려는 왜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을까?
21_ 수나라 두 황제를 물리친 영양왕을 찾아서
22_ 대막리지 연개소문 일대기
5부 고구려인의 사상과 풍속
23_ 고구려식 천하관과 중국식 천하관
24_ 고구려인들의 종교 생활
25_ 고구려의 혼인제도는 데릴사위제였나?
26_ 형제의 부인이 된 왕후 우씨
6부 고구려인과 망명객 그리고 유민들
27_ 고구려에 온 중국 망명객들
28_ 덕흥리 고분벽화의 유주자사 진
29_ 고구려 유장들의 궤적
30_ 잊혀진 건국영웅 이정기
7부 답사기로 읽는 고구려사
31_ 발로 쓴 고구려사
32_ 산성의 나라 고구려
고구려 왕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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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중원을 호령하며 한민족 최강의 제국을 건설한 고구려의 진취성과 대륙성이 깨어난다!
기마민족 특유의 대륙성과 진취성을 발휘하여 중원의 패자로 군림한 동아시아 최강국 고구려! 그러나 고구려의 역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시각이 반영된 『삼국사기』와 전통적인 중화 패권주의 사관에 입각해 쓴 중국 사서들의 잘못된 표기방식,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모순된 논리 때문에 진정한 실체가 왜곡, 폄하된 채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식민사관과 중화사관이라는 구각을 깨고 고구려를 바라본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는 고구려가 건국 초기부터 복속과 연합을 적절히 활용한 자주적인 외교술을 펼쳐 한·신·후한·삼국시대·위진 남북조시대·수·당 등 중국의 수많은 나라와 대적해 우위를 점하는 과정, 고구려를 천하의 중심이라고 생각한 독자적인 천하관,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사상과 풍속, 신라의 삼국통일 후에도 150여 년이나 이어진 유민들의 발자취 등을 통해 살아 숨쉬는 고구려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추모왕(주몽), 동쪽으로 연해주, 서쪽으로 난하 지역, 남쪽으로 예성강에서 충주와 영일만을 잇는 지역, 북쪽으로 흥안령 산맥 북쪽 흑룡강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태왕, 후한이 멸망하고 369년 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해 한껏 기세가 오른 수나라에 선제공격을 가하고 200만에 이르는 침략군을 일거에 무너뜨린 영양왕,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도 당나라 한복판에 치청왕국을 세워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 일대의 15개 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한 이정기 등 고구려인이 기마민족 특유의 진취성을 발휘하여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기상을 떨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 엄중한 학문적 방법으로 바로잡은 고구려 역사의 30가지 쟁점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는 ‘우리 역사 바로잡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이 시리즈의 첫 책인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에 이어 엄중한 학문적 방법을 동원하여 왜곡되고 폄하된 고구려 역사의 30가지 쟁점들을 되짚었다.
고구려 역사 중 대표적인 왜곡 사례는 고구려를 중국의 역대 정권에 조공을 바친 국가로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중화사관에 입각한 기록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439년 화북을 통일한 북위 효문제의 황후가 된 고구려 여인 문소황후 고씨를 비롯하여 북위 황실과 이중 삼중의 혼인관계를 맺은 고씨 일가가 북위의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은 그들에게 강력한 배경으로 작용한 고구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의 시각으로 고구려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해준다.
이 밖에도 고구려를 비롯하여 고조선의 옛 강역에 존재했던 부여, 비류국 등이 고조선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이유, 고구려 건국연대에 관한 여러 설들, 무려 94년이나 재위했다는 태조대왕과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차대왕(95세 즉위), 신대왕(77세 즉위)에 관한 의문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북방확장정책을 계속 수행하는 대신 수도를 남쪽의 평양으로 옮긴 이유,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 당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고구려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한 용장이자 영웅인 연개소문이 흉포하고 잔인한 독재자로 전해진 이유, 미천왕과 부인 주씨의 합장 무덤인 안악 3호분에 전연前燕에서 망명한 동수의 시신을 배장한 과정을 꼼꼼히 추적함으로써 중국 측 사료를 근거로 한 역사 기술로 그동안 왜곡되어온 고구려 역사의 진실을 밝혀냈다.
▶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 고구려
지금까지 고구려는 고조선과는 별개의 나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으나 고구려가 고조선의 옛 고토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국가라는 사실, 주몽을 단군의 아들이라고 명명한 『삼국유사』의 기록,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단군사화의 내용 등을 통해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라는 역사 의식을 갖고 성장한 나라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의 건국과 관련하여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기록들, 고구려인들이 직접 기록한 건국기원에 대한 일차 자료인 광개토태왕릉비문과 모두루묘지문 등을 종합, 분석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세력과 시조 추모왕에 대한 의문점들을 명쾌하게 정리해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국가인 부여와 또 한 명의 건국영웅인 부여 시조 동명왕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 독자적인 천하관으로 광활한 대륙을 경영한 고구려
고구려인의 시각으로 고구려 역사를 기록한 광개토태왕릉비는 시조 추모왕을 천자라고 당당히 밝히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고구려인은 추모왕을 천제天帝(하늘의 신)와 하백河伯(물의 신)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천자’로 여겼고, 현실적인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에서 천하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독자적인 천하관에 따라 동북아 지역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공관계로 규정하고, 하늘의 후예인 고구려왕은 이런 국제질서를 담당하는 주체로 자임했다.
고구려인들이 이러한 천하관을 갖게 된 데에는 여러 나라들에 둘러싸인 고구려의 지형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구려가 자리 잡은 지역에는 고구려 이외에도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있었고, 고구려는 주변국들을 무력으로 정복하면서 성장한 나라였다. 시조 추모왕이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를 정복한 것을 시작으로, 추모왕의 뒤를 이은 유리왕은 선비와 양맥을 멸망시켰다. 대무신왕은 개마국과 낙랑국을 멸망시켰고, 모본왕은 한나라의 북평·어양·상곡·태원을 공격했고, 태조대왕은 동옥저와 갈사국까지 영토를 넓히고 조나국과 주나국을 쳐서 항복을 받아냈다. 고구려가 힘이 약하거나 싸움을 회피했다면 오히려 이들에게 정복당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는 숙명적으로 당시 세계 최강대국 한나라와 싸워야 했다. 이처럼 싸움은 고구려인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이었다. 강하지 못하면 곧바로 멸망하거나 다른 민족에게 복속되는 곳이 만주 지역이었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에서는 고구려가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며 국가 발전을 이루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 발로 쓴 고구려사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에는 두 편의 답사기가 실려 있어 고구려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고구려 첫 도읍지인 오녀산성(중국 길림성 환인 소재), 우리 민족의 전통 공법인 그랭이 공법을 사용해 축조한 장수왕릉, 지금은 많이 무너져 내려 본래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잔존 형태를 보아 7층 이상으로 조성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광개토태왕릉, 고구려의 건국기원이 기록된 광개토태왕릉비와 모두루묘지, 고구려와 공동 군사작전을 펼쳐 후한後漢에 맞선 선비족의 발상지 알선동굴, 고구려 여인으로 북위의 황후가 된 문소황후의 영릉을 구석구석 찾아간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고구려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중원의 여러 나라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축조한 고구려의 산성 중 중국 요녕성과 길림성 일대의 주요 산성 여섯 곳을 찾은 답사기를 함께 실었다. 고구려는 당시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산성을 가장 많이 쌓고 제일 잘 이용한 나라였기 때문에 산성은 고구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며, 동북공정 이전과 이후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중국과 맞서 싸운 고구려의 산성이 중국의 문화유산이 된 아이러니한 현장, 1950년대에는 20미터가량 남아 있던 고구려 성의 벽돌을 동네 사람들이 가져가 담으로 사용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 중국의 동북공정이 심화되면서 일부 고구려 산성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중국식으로 복원한 모습은 올바른 역사 인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