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_공지영_푸른숲

박동래 |2007.09.08 00:35
조회 62 |추천 0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_공지영_푸른숲

 

유리와 거울  

 

 

 '우정은 유리 같은데 사랑은 거울 같아'  

 6년 전 제 첫사랑의 대상이었던 친구에게 첫눈 구경을 하며 언뜻 사랑과 우정의 차이를 물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친구의 답은  사랑은 거울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6시간에 걸쳐 죽 읽은 이 소설속의 두 주인공의 감정이 사실 사랑인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다만 6년 전 첫사랑의 열병을 앓던 제게 그 사랑의 대상이었던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작년 KBS에서 특집으로 다룬 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사랑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화두였지만 진부하지 않은 소재 '사랑'을 사회적, 과학적, 문화적으로 다루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신경정신과 박사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흔히 우리가 열정적인 사랑을 한다고 할 때 뇌 속에서는 옥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산모가 수유를 할 때 나오는 그 호르몬은 남녀가 성 행위를 할 때도 분비됩니다. 사랑에 빠져있는 커플을 조사해 보면 이 옥시토닌 호르몬의 수치가 일반인에 비해 높게 나옵니다."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표현과 사랑에 빠져있다는 느낌 둘 다 사랑의 감정을 느낀 지 얼마 안 되는 커플에게서 나옵니다. 그리고 흔히들 사랑에 대한 표현에서 진부하게 사용하는 수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이런 사랑만 있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앞서 말한 그 신경정신과 박사가 뒤이어 하는 말이 어쩌면 진짜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커플들도 300일 정도만 지나면 옥시토닌의 수치가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게 되지요. 이 때 많은 커플들이 싸우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도 남아있는 커플들은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과학적 사고를 가진 의사마저도 사랑의 감정에 대한 원인을 과학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감정 이전에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소설속의 두 주인공 윤수와 유정은 직접적인 표현은 안 했지만 내면 대화에서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해 줬을까요. 굳이 동질성의 원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닮은 존재에서 무언가 끌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상대에게 끌리는 사람도 있지만요. 부잣집 딸에 교수신분까지 갖춘 유정과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 윤수는 닮은 점이 있었나봅니다. 그들의 사회적 배경이 어떠했던 간에 그들은 서로에게 닮은 점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유정이 윤수와의 첫 대면에서 윤수를 자신과 같은 과(科)라고 생각하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 윤수와 유정 둘 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거나 상처를 드러내 보이기 싫어서 위악을 보입니다. 윤수의 조소 섞인 표정과 유정의 거친 말은 사실 같은 이유에서 나온 것입니다. 둘은 그런 것에서 서로가 원초적인 비슷함을 지녔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감정은 단지 끌림일 뿐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게 했을 까요. 앞의 신경정신과 박사가 계속 말합니다. 

 "열정적 사랑을 만드는 호르몬이 사라져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뭐라할까요 정이라 할까요, 그런 것으로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이어온 거 같아요. 많은 상담을 통해 제가 얻은 결론은 초기의 그런 열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상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이해로 승화시키는 힘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상대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이해, 바로 이것이 윤수와 유정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닮은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이해하는 과정이 그들에게는 매주 목요일에 있었던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때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닮은 상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가 입니다. 즉 사랑하는 그 원천적인 이유가 저는 궁금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정념은 대상을 포화된 소금물에 넣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정념은 사랑의 다른 말이고 무언가를 포화된 소금물에 넣으면 소금결정이 엉겨 붙어 보석처럼 빛납니다. 또한 서양의 한 속담에 사랑은 스페인의 여관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스페인의 여관에는 오직 침대만이 있어서 텅 빈방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말은 단지 열정적인 사랑의 모습만을 담을 뿐입니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씌워지는 사랑에 눈이 머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베르그송이 다시 말합니다. '사람은 작은 빈방의 나약한 존재다.' 사람이란 마음이라는 작은 빈방에 머무르는 외로운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외롭기에 그 외로움의 적극적 표출이 또 그것의 보상받고 싶음이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닮은 존재를 찾는 것만큼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윤수와 유정 역시 서로 닮은 존재를 찾고 있었고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윤수와 유정같이 그 흔한 키스 한 번 안 하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2년 전 제가 사랑한 사람은 저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저 역시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첫 사랑을 하기 전 잠시 만났던 그녀는 그저 매력적인 여자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나 연락이 되었고 얼마 뒤 서로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말이죠. 단지 1년여의 시간동안 600여 통의 편지가 오고갔을 뿐입니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세계 60억의 인구 중 나를 이해할 거 같은 존재는 아무도 없는 거 같습니다. 사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게 사람이니까요.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울부짖는 짐승'  

 처음에 말한, 훗날 제 첫사랑이 될 친구에게 물어본 말의 대답을 기억하십니까? 그 대답인 우정은 유리 같고 사랑은 거울 같다는 말은 참으로 진실인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첫눈이 내리고 있었고 창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밖이 어두워 질수록 밖의 눈은 안 보이고 유리창에 비춰진 친구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의 대답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유리가 거울이 되네.'

 

 

 

 

 

 

 

* 앞에서 인용한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첫 번째 인용을 제외하고는 사전 지식을 토대로 창작한 것임을 밝힙니다.

 

 

*2006.06.21 박동래 lhovaw@naver.com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