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마저 그를 사랑했다.
< 안중근 의사 이야기 >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총으로 쏜 사람은 안중근 의사다. 그때 옆에 있다가 총알을 맞은 남만주철도이사 다나카 세이지로는 생전에 가장 훌륭한 사람을 '안중근' 이라고 한다.
일본 흥륭의 장본인으로 추앙받던 이토 히로부미를 즉살하고 자신의 다리에 총상까지 입힌 식민지 조선의 청년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스러울 것입니다.
다나카 세이지로는 총에 맞는 순간 마주친 안중근의 눈빛에서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함을 느꼈는데, 그 눈빛에 정신이 팔려 자신의 총을 맞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는 당시 사건현장에서 10여 분간 안중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가 총을 쏘고 나서 의연히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치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들었다. 그것도 음산한 신이 아니라 광명처럼 빛나는 밝은 신이었다. 그는 참으로 태연하고 늠름했다. 그 같이 훌륭한 인물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다나가 세이지로의 이야기입니다.
안중근에게 감복한 일본인은 비단 다나카 세이지로만이 아니며 하얼빈에서 잡힌 안중근이 여순감옥에 수감되어 사형당할 때까지 5개월여를 함께했던 일본헌병 출신의 간수 치바 토시치는 안중근에게 감복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안중근 영전에 치성을 올리며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후에는 아내에게 이르길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신과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함께 조석으로 공양하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치바 토시치의 아내 기츠요 역시 1965년 7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유언을 그대로 이행했고, 1979년에는 치바 토시치와 기츠요의 유족들이 안중근 의사 탄신 백주년에 맞쳐 그동안 가보로 소중히 보관해온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안중근 의사 숭모회에 전달하였습니다.
자료출처 정진홍 저자의 "완벽에의 충동" (148~149p)
안중근 의사 친필 유묵 국내 첫 공개
안중근 의사가 신처럼 보였을 정도로
강렬했던 그 눈빛이 궁금하다.
나에겐 흐리멍텅한 눈빛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나도 그와 같은 눈빛을 언젠가는 가질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