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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헌모씨 보세요.

김규형 |2007.09.12 06:24
조회 453 |추천 4
 

첫째. 이슬람모독 :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이슬람을 아십니까? 아시면 어느정도까지 아십니까? 댁이 말하는 이슬람에대한 이야기는 십자군시대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십자군시대때 십자군뿐 아니라 이슬람도 똑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그모체였던 캐톨릭의 교황이 사과하였고 오늘날에는 벌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정말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필리핀 내전, 유고 내전에서 발생한 이슬람 교인들에 대한 폭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또한 기독교계에 의한 이슬람 억압 아니었습니까?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그리고 덧붙이자면, 수 백년간 점유하던 예루살렘을 십자군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들어간 쪽이 기독교입니까, 아니면 이슬람교입니까? 침입자와 수비자는 다르죠. 어떻게 똑같습니까?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사회내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고문과 핍박과 박해, 그리고 살인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죽은 사람들이 단 한번이라도 그들에게 칼들고 믿음을 가지라 강요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게 평화로운 종교가 자신의 국민의 목숨을 파리 여기듯 그렇게 죽입니까? 이라크를 보십시오? 전쟁으로 인해 미군들에 의해 죽은 민간인의 숫자보다 종파간 분쟁으로 인한 죽음과 독립이라는 미명아래 자살폭탄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향한 자살폭탄으로 더욱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민간인은 같은 이슬람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왜 죽어야 합니까?


-꼭 칼 들고 믿음을 가지라 강요하는 것만이 강요는 아니죠. 아시지 않습니까? 이슬람 사회가 어떠한 사회인지. 국가가 곧 종교이며, 근본인 곳이 이슬람 사회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타종교로의 개종은 밑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배척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믿음을 가지라고 포교하는거 자체가 강요이지요. 예를 들어 독이 든 사과를 아이들에게 맛있으니 한번 먹어보렴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학교 지어주는 것에 대하여 이슬람 인들이 반대할까요? 아니죠. 하지만 그 주체가 기독교인이라면 환영할까요?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착각하신 것 같으신데 이슬람교는 평화로운 종교입니다. 그러한 평화로운 종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많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중세 시대에 마녀 사냥으로 인하여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죠. 사랑을 중시하는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마녀 사냥으로 죽어간 수많은 민간인들, 그들은 왜 죽어야 했었죠? 마녀사냥과 사랑의 기독교, 그리고 자살폭탄과 평화의 이슬람 동일한 논리일 뿐입니다.



뉴스를 통해 이라크와 중동의 소식들, 특히 이슬람권의 소식들을 잘알고 계십니까?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유린과 자국민에 대한 핍박과 억압이 있는지 아십니까? 이슬람사회 구현이라는 명목아래 중세기독교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죄악들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알라의 이름으로 아직도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고통당하고 난민으로 몰리고 아무것도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냐고요? 사랑을 전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뒤로 한 채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해줍니다. 굶어가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대어줍니다. 학교가 없는 곳에 학교를 지어주고 고아들을 돌봅니다. 그 이유가 결국에는 예수 믿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구요?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그들이 어릴 적부터 교육받아온 이슬람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 같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럼 선교의 고의가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일년이 걸리든 백년이 걸리든 천년이 걸리든 천천히, 그러나 언젠가는 포교를 하시려고 병원 지어주고 고아 돌보는거 아닙니까? 바로 이 땅에서 기독교가 그렇게 포교 되었던 거 아닙니까?


아랍어를 아십니까? 아랍어는 평생 아랍사람이 배워도 다 못 배우는 언어라고 합니다. 코란은 그 아랍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것도 클래식 아랍어로 고전아랍어입니다. 단 이주일동안 가서 뭘 할 수 있다 생각합니까? 그들 붙잡고 기도하고 예수믿으라는 그 한마디 하려고 갔다면 정말 바보이겠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전쟁터를 방불하는 그 곳에 가는 이들은 예수님 믿으세요 한마디 전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니까 그 분이 내게 주신 그 사랑이 너무 크기에 그 분이 내게 주신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의료진료를 통해, 구제를 통해, 깨어진 가정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에 의해, 가지각색으로 행동을 통해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주 만에 목표 완성 못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모여서 결국은 기독교 교인을 만드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왜 솔직하지 못하십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눠준다는 말이 궁극적으로 선교활동을 목표로 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학교 지어주는 게 목적입니까, 아니면 선교의 수단입니까?


선교에 대해 착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알고 있는 제국주의 선교, 십자군이 판치던 중세시대의 그런 패권주의적인 선교가 아닙니다. 그 선교는 이미 서구 기독교 내에서도 잘못되었다 인정되었고 현재의 선교를 이야기하는 그 어느 누구도 그러한 선교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패권주의적 선교요? 제국주의 시대의 선교도 처음에는 학교를 지어 문맹률을 낮추고, 병원을 지어주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글쎄요. 패권주의 시대의 선교와 지금의 선교 모습이 크게 다른 거 같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선교에 대해 착각하지 마시라는 말에 저도 봉사에 대해 착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봉사는 하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합니다. 선교의 일환으로 받는 봉사에 대해 이슬람 인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정말 환영할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얼마 전 이슬람 아이들에게 한글로 찬송가를 부르게 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거기 가신 분들도 봉사의 일환으로 가신 분들 아니십니까? 그럼 왜 한글로 찬송가를 부르게 하셨을까요? 아랍어로 가르치셨다면 훨씬 더 효율적이셨을건데. 그건 바로 아랍어로 찬송가를 부를시 봉사의 목적이 탈로나기 때문 아닌가요? 아랍인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한글로 찬송가를 부르게 하는 봉사라...아랍인들이 만약 한글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그러한 봉사를 반겼을까요? 봉사. 물론 좋죠. 하지만 피봉사자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는 점 명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교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개독교라 욕하는 그런분들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경건한 것입니다.


-봉사라는 것도 봉사자만의 생각으로 봉사라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입으로 믿어라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부교회가 과도한 방법으로 교세를 확장하려는 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를 욕하십시오. 헐벗고 굶주린 곳은 우리나라에도 많다 말씀들 합니다. 맞습니다. 많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해외에만 그렇게 일을 합니까? 오늘날 한국기독교회에서 시행하는 수많은 사회를 위한 사업들이 바로 그들을 위한 사업들입니다. 당신도 하고 계십니까? 하고 계시다면 계속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하시되 꾸준히 하십시오. 정말 사랑을 가지고 하십시오. 교회도 그래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교회가 많이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목욕탕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입니다. 때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의 때를 밀어주기도하고 자신의 때를 밀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부족합니다. 부족하기에 완벽한 척 착각하고 교만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남의 문의 티끌을 보기 전에 댁의 눈에 들어있는 편견의 들보, 독선의 들보, 아집의 들보를 보십시오.


-하나만 물어보죠. 왜 교회에 의한 봉사에만 집착하시죠? 선교 목적의 봉사가 아닌 순수히 그 자체로서 목적인 봉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네이버 검색 한번만 해보시죠. 교회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해외 봉사 많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교회에 의한 봉사만을 고집하십니까? 남의 눈에 들어있는 편견을 욕하고 싶으십니까? 그럼 그러한 편견을 받지 않으면서도 봉사하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선교가 목적이 아니라면 교회에서 가는 봉사나 비기독교 단체에 의한 봉사나 차이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왜 굳이 욕먹으면서 까지 교회에 의한 봉사를 강행하시는지요. 이해가 안가네요. 네이버 창에 “해외봉사” 검색해보세요.


두 번째, 선교는 봉사? 그렇습니다. 선교는 봉사가 아닙니다. 샘물교회를 옹호하려고 이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만 피랍자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굳이 기독인의 시각으로 탈레반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선교는 댁의 말처럼 봉사가 아닙니다. 선교는 단지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팀이 그 정신으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두 번이나 그 곳을 찾아갈 필요가 없겠지요.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틀린 그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댁이라면 가겠습니까? 아름다운 휴양지라면 모를까 밤이나 낮이나 총소리가 나고 어디를 가든 죽을 수도 있다는 곳에 편안히 가시겠습니까? 그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사랑에 목숨 걸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그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사랑이요? 받으면 좋죠. 하지만 받고 싶은 사람한테 받아야 그게 사랑이죠. 별 생각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강요한다면 그건 말그대로 강요죠. 안그렇습니까? 대상이 누구라도 상관 없다니요. 만약 이슬람 교인들이 사랑을 베푼다고 기독교 사회에 학교를 건설하고 병원을 지었을 때, 정말 ‘좋은 봉사 하시는 분이시구나’ 이렇게만 생각할까요?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까요? 최소한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슬람을 바라보시는 댁 같은 사람들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요? 앞서 편견과 아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자살 폭탄 테러 운운하며 이슬람교를 비꼬신 분 아니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샘물교회에서나 박은조 목사나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 선교를 간걸 봉사갔다고 말했냐 이거지요. 저는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봤을때 정말 잘못이야기했다 생각합니다. 선교에 대해 모든 이들에게 잘못된 이해를 만들어내었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단지 말씀이 적힌 종이쪼가리를 전해주거나 그걸 외워서 사람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는 그런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시각이라면 잘 했다 생각합니다. 굳이 선교의 개념을 틀리게 이해하는 무슬림들을 자극해서 잡혀있는 이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될테니까요. 또한 그들은 봉사한 것 맞습니다.   


-앞서 봉사가 단순히 내가 하고 싶다고 전부 봉사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 드렸을텐데요.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선교의 개념과 많이 틀립니다. 왜 인지 아십니까?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사회,종교, 문화,관습, 정치 등 모든 분야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의 개종은 그 사회의 추방을 말합니다. 이슬람을 믿으라는 것은 그것을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선교입니다. 왜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한 지역에 가면 그 사회에 흡수 통합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이루어나가고 그들만이 가지는 규범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슬람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것을 요구하는 강약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유무의 차이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다른 종교는 죄악입니다. 그것을 깨뜨린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네요. 그런 분들이 가셔서 선교를 하시나요? 이슬람 국가 아이들에게 한글로 찬송가 부르게 하는 분들이 기독교인들 아니십니까? 아, 이러한 분들도 극히 예외적 소수인 분들이라고 말씀하시렵니까? 그럼 그러한 예외적 소수인 분들께라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발 이슬람 사회 내에서 죄악을 짓게 하지 마세요. 특히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상대로 말입니다. 기독교에서 우상숭배가 금지되어 있듯이 이슬람에서도 우상숭배는 금지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기독교인의 생각이니 고깝게 듣지 마세요) 이슬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행위는 그들이 보기에 분명한 우상숭배 아닌가요?



그러면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콘스탄티노플의 기독교회의 인정과 로마국교로서 자리매김할 때부터 기독교는 썩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이유중 하나는 정치와 교회의 권력이 야합하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교회가 정치와 야합한 때도 있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나라에 무슬림인구만 하더라도 제 3국에서(편의상 동남아나 중동권, 중앙아시아권을 3국이라 부르겠습니다.) 들어온 인구는 어마 어마합니다. 기독교가 언제 그들을 핍박한적 있습니까? 오히려 제3국 노동자들을 위해(그들은 대부분이 무슬림들입니다.)인권을 보호해주고 생활을 도와주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권에 들어가 있는 기독교인들은요? 그곳에는 선교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의 지상사를 비롯한 많은 한국교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습니까? 철저하게 통제를 받습니다. 선교사의 경우(한국인들뿐 아닌 외국까지) 심한 경우 얼마전 터키 말라티아에서의 사고처럼 온 몸에 칼을 100여군데나 찔리고 엄청난 고문과 함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추방당하면 오히려 그게 더 감사합니다. 손해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복수전을 펼치거나 자국에 있는 무슬림들에 대해 핍박을 가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심지어 9.11 사태 때에도 미국내 기독교인들에 의한 대규모 핍박은 없었습니다.그것은 전세계적인 것입니다.


-얼마나 독단적인 시각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의 사회를 한국의 사회와 동일하게 보십니까?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중세의 기독교 사회와 같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으며, 타종교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회와 현재의 한국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십니까? A와 B가 동일한 행위를 하여도 A가 속한 사회가 B가 속한 사회와 다르다면 당연히 그 행위에 대한 판단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사회에서 판단하는 기준으로 다른 사회를 판단하려고 하십니까? 기독교도 이슬람인들을 보호해주었으니 이슬람도 기독교인들을 보호해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 그럼 조금 상황을 바꾸어, 댁이 중세의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인들을 보호해주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게 통할 거라 보이십니까? 어찌 전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결과를 원하세요? 게다가 좀 더 지적하자면, 기독교의 원리 중에 하나가 조건 없는 사랑 아닙니까? 그럼 설령 이슬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이슬람에 대한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왜 손해를 따지십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베푸시려고 이슬람 국가로 가셨으면서 왜 손익을 계산하시는지요. 이해가 안가네요.

또한 기독교인에 의한 대규모 핍박은 당연히 발생할 수 없죠. 민주화된 기독교 사회에서의 법이 폭행, 상해, 살인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기독교인에 의하여 무슬림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은 전혀 없나요? 한번 세계 뉴스 검색해 보세요.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백인과 흑인의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던 시절, 무하마드 알리가 이슬람으로 개종 시 미국 사회가 어땠나요? 그때도 법의 제재 때문에 대놓고 때리지는 못했죠. 하지만 공공연히 차별한 것이 미국 기독교 사회의 모습 아니었습니까?



봉사하고 댓가를 바란다고요? 봉사하고 돈달랍디까? 준거 차근 차근 갚아나가랍디까? 단지 한가지 소원은 나의 행함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당신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입니까? 칼들고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몽둥이 들고 믿음을 강제하지도 않고 단지 내가 그사랑 받고 보니 당신도 그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는데 뭐가 그리 잘못되었습니까? 


-이슬람 사회에서 그 사랑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위에서 잘 서술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단순히 도덕률과 같은 것이라면 야 저도 반대 안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은 그 내면에 찬양한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칼 들고 강요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기독교 믿으면 죽임을 당하는 곳에서 기독교를 믿으라니요. 기독교를 믿으면 죽음만이 있는 사회입니다. 한국처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애같이 칼 들고 강요한 것은 아니다라고만 우기십니까?


셋째. 세금 내라구요. 한가지 물어봅시다. 댁은 세금 지금까지 꼬박 꼬박 다 내고 계십니까? 내셨다면 감사합니다. 내셨기에 이 나라가 그래도 살만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라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국민이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생명은 이 곳에 있든지 외국에 있든지 지켜져야 한다 생각합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요. 이라크 전쟁기간동안 그들도 파병했고 그들도 피랍자로 잡혔었지만 이라크를 여행금지국으로 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욱 많은 재정을 NGO팀을 통해 이라크에 쏱아부었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나라의 이미지 때문이며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봉사단체가 그 곳을 방문하여 더욱 많은 이들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라크 전쟁기간동안 그렇게 참여했었습니다. 다른 나라는 적어도 위험한 땅을 가는 이들에게 너는 문제아라고 낙인은 찍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는 이들에게 뒤는 우리가 책임져 준다는 책임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언론과 국민과 정부 모두가 ‘문제아’로 낙인을 찍고 맙니다. 그들을 통해 얻어질 잠재적 이익은 고사하고 문제 쫌 일으키지 말라고 말합니다. 한 봉사단체가 가지는 경제적인 이익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일본이 납치된 NGO로 인하여 국가 이미지에 있어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그게 사실인지 의구심이 드네요. 그러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준 사람들에 대하여 국가가 납치금을 대납하고, 대신 돌아온 이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곳이 일본 아닙니까? 참 이상하내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엄청 이득을 얻었다는데, 납치된 사람이 풀려나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왜 죽지않고 돌아왔냐고 갖은 야유를 듣고 국가가 구상권을 청구한 나라가 바로 일본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만 더 물어보죠. 미국, 독일인들이 피랍 당했을 시 그 국가들이 어떠한 일들을 했나요? 물론 가는 건 자유였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책임도 개인에게 미룬 것이 미국과 독일입니다. 뉴스 좋아하시니까, 피랍당시 독일인도 같이 피랍된 사실도 아시죠? 지금 풀려났나요? 이라크를 가든 말든 자유입니다. 하지만 뒤도 별로 봐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개인이 자초한 위난은 개인이 져야죠. 그걸 왜 국가에게 떠넘기죠?

  


400억요? 전두환에게 받을 돈에 비하면 껌값이죠. 방만한 경영으로 부실해진 기업을 회생시키느라 쏱아붓는 국민혈세에 비하면 애들 과자값도 안되지 않습니까? 몇일전 터키를 갔더니 모 단체에서 공무원과 함께 주민대표들 데려다 뭘 참관한다고 열흘을 다녀갑디다. 하루 잠깐보고 9일을 관광시켜준 그 가격이 한명당 300만원입디다. 20명이면 6천만원입니다. 그것만 썻을까요? 


-400억이요? 전두환에게도 껌 값이 아닐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겐 어마어마한 돈이죠. 왜 400억의 가치를 낮추시려고 합니까? A가 잘못되었기에 그것보다 덜 잘못한 B는 잘못한게 아니다란 문장 이해 되십니까? A는 A이고 B는 B이죠. 댁이 주장하는 것은 속칭 물타기로 밖에 안보이네요. 국민 혈세가 부실해진 기업을 회생시키느라 쓰인다고 6천만원 짜리 공무원 관광이 아무 잘못 없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단돈 1원을 잘못 써도 잘못 쓴건 잘못 쓴겁니다. 왜 물타기를 하십니까? 어쨌든 안 써도 될 돈 쓴 거 아닙니까? 그리고 무슨 근거로 그 돈이 헛되게 쓰일지 확신하십니까? 그럼 교회 헌금은 정말 필요한 곳에만 잘 쓰이나요? 한번 반문해보고 싶네요.




그럼, 그들이 선교 나갔다고 온 세계의 지탄을 받고 손가락질 받은게 그들 책임이 아니란 소리인가? 하시겠지요? 네 그건 무지한 한국교회와 정부와 국민과 언론 우리모두가 책임입니다.



-인과관계의 착오입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니요. 참 어이가 없네요. 어떠한 원인이 그 결과와 인과관계가 부정되려면 그 원인이 없었어도 결과가 발생하였어야 하죠. 자, 그럼 하나씩만 빼보죠. 피랍이라는 결과를 놔두고 봤을 때, 정부, 국민, 언론 중 어느 것이 없더라도 피랍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아니죠. 정부가 없었어도, 국민이 없었어도, 언론이 없었어도 피랍은 발생하죠. 결국 거기로 간 사람들이 있기에 피랍이라는 결과가 발생 한 거죠. 그게 왜 정부, 국민, 언론 책임인가요? 물타기도 정도껏 하세요.  



네 번째 : 생명의 소중함 ? : 도대체가 당신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당신말에 의하면 피랍자들이 죽고 돈을 주지않으면 그래도 사람이 덜 죽을것 아니냐? 이말이지요?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그렇습니다. 하나도 모르는 주제에 뭘 열을 안다고 큰소리십니까? 그들이 돈이 없어서 사람 못 죽일 것 같습니까? 무기가 없어서 사람 못 죽일 것 같습니까? 사람이 없어서 못 죽일 것 같습니까? 생각좀 하고 삽시다. 도대체 당신이 아는게 뭐가 있소? 그들이 돈이 없어서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합니까? 돈이 없어서 허구헌날 지대공만 들고 다닌답니까?  돈을 주었든 아니든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살기위해 또 다른 생명을 앗아갈 것입니다.



손가락 잘라 팔 자르는 것 막을 수 있다면 손가락 잘라라? 당신은 당신 자신의 손가락이 그렇다면 냉큼 ‘그럼 짜르죠 뭐“라고 단박에 말할 수 있습니까? 글을 쓰는 것을 보니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게 손가락 자르는 것 처럼 호락호락한가요? 지금 이 문제는 뭘 짤라내야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첨부터 잘못 짚으셨네요.  이 문제는 짤라야하는 문제가 아닌 살려야 하는 문제입니다. 잘라야 산다...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잘라도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는데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살리는 거 자체에 대해선 별 불만 없습니다.




안헌모씨...

당신의 글은 결국 기독교적인 시각에 한정되어 쓰인 글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비판의 본질은 파악 못하고

귀만 막고 이상한 이유로써 그러한 비판을 외면하죠.

그리고 안헌모씨도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외면하시는 분들 중

한 분이신거 같네요.


저와 대화를 나누시길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대화할 용의가 있습니다.


글 보시면 댓글 꼭 달아주십시오.


긴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글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왜 비판을 받는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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