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준익
앞뒤 재지않고 세상에 개기는 용기로 인생은 즐겁다. 그러나…
영화를 봤으니 영화 본 감상을 글로 남기는 것이 당연한 순서지만,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극장을 찾아야 할 때도 간혹 있다. 쌓여 있는 일이 산더미임에도 불구하고 팔자좋게 한낮 극장을 찾은 것은 오늘 안으로 끝내야 하는 그 무엇이 있었고, 그 무엇에 영화 관련 글을 써야 했고, 그 전에 쓴 영화 관련 글들 중에는 별로 싣고 싶은 글이 없고…. 그래서였다.
전철을 타기 위해 영등포역에 도착했을 때 영등포 롯데시네마에 걸린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마침 딱 맞는 시간대다. 그래, 이준익 감독 영화라면 영화적 완성도는 따놓은 당상이고 이전 필모그래피를 돌이켜 보건대 여성관객의 입장에서 뭔가 할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를 안고 극장에 들어섰다.
역시 이준익 감독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즐거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남자배우 김윤석을 비롯해 꽤 좋아하는 정진영, 그냥 싫지 않은 김상호, 예뻐서 봐줄만한 장근석 등 주연배우의 연기와 노래, 연주도 빼어났다. 이야기 구성도 탄탄해서 어느 한 장면 허투루 흘려보낼 것이 없고 지루할 틈도 전혀 없었다. 러닝타임 내내 마치 실력 좋은 밴드의 콘서트를 즐기는 것 같았다. 밴드의 콘서트라면 환장하는 나같은 인간은 스토리 엉성하고 연기가 부실해도 침 질질 흘리며 봐줄 수 있을 만큼 음악도 좋다. 전작 에 이어 나름대로 음악과 밴드가 주인공인 영화를 연달아 만드는 걸 보면 이준익 감독도 어지간히 음악을, 라이브 밴드 분위기를 좋아하는 한량인가 보다.
20대의 아련한 기억을 찾아 떠난 찌질한 40대 남자들
찌질한 40대 남자 셋이 있다. 은행에서 실직하고 교사인 아내에게 얹혀 사는 실업자 기영(정진영 분),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는 전업주부 아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미친듯 돈을 버는 가장 성욱(김윤석 분), 자식들과 아내는 캐나다로 유학보내고 중고차 매장 창고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유학비를 벌어야 하는 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 아, 그러고 보니 셋이 아니라 넷이다. 아내도 자식도 돌보지 않고 노래를 포기못한 밤무대 가수, 그러나 영정 속 사진으로만 등장한 상우.
상우와, 상우의 부고로 오랜만에 뭉친 기영, 성욱, 혁수는 대학시절 대학가요제 진출을 목표로 결성했던 밴드 '활화산' 맴버다. 지역예선에서 세 차례나 떨어지고 잠정적으로 해체한 뒤 각자 결혼해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활화산'은 빛바랜 사진 속 추억일 뿐 버거운 일상 속에서는 끄집어 기억해 내기도 어려웠던 과거일 뿐이었다.
그러나 상우의 죽음을 통해 다시 만난 세 사람은 서로의 모습에서 찌질한 자신의 40대를 비춰보게 되고, 비록 대학가요제 본선 진출도 못했지만 꿈과 패기만큼은 찌질하지 않았던 20대를 떠올린다. 현실이 찌질할수록 세 남자의 가슴 속 깊이 묻혀 있었던 20대의 열정 가득했던 활화산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은 이름 그대로 활화산처럼 터질 것만 같다. 그리고 결국 다시 20대에 쥐었던 기타와 베이스, 드럼스틱을 집어든다. 그들을 밴드로 불러모은 리드보컬 상우의 자리엔 상우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 현준이 선다. 밴드 '활화산'은 그렇게 부활한다.
20대의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40대 남자들의 모습은 마치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춰버린 발육부진아들 같다. 몸은 늙고 배도 나오고 게다가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까지 딸렸으니 겉모습은 변해도 한참 변했지만 그들의 정신연령은 20대에 멈췄다. 부활한 '활화산' 멤버 중 가장 성숙해 뵈는 사람이 상우의 아들 현준이었고, 현준의 리드가 없었다면 아마도 활화산이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세 명의 40대 남자들은 얼치기다. 하기에 그들에게 제 한몸도 아니고 처자식까지 먹여살려야 하는 현실은 감당불능이었고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감옥이었다. 그들에게 활화산은 정신의 성장이 멈춰버린 20대로 회귀할 수 있는 탈출구와 같은 것이었다.
이 영화에서 이준익 감독이 그리는 40대 남자 세 명을 보며 나는 감독의 전전작 의 연산군을 떠올렸다. 아마도 에서 연산군을 분했던 정진영이 찌질한 세 남자 중에서도 가장 찌질한 기영을 분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을 내팽개치고 20대의 꿈을 쫓아 '활화산'으로 회귀하는 40대 남자들의 모습에서 장녹수의 속치마를 들추고 어머니 폐비윤씨의 자궁으로 기어들어가려 했던 정신발육 정지 상태의 연산군을 떠올린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그러나 홀로서기, 독립을 두려워하는 미성숙한 성인의 퇴행은 이준익 감독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그리고 음악에 힘입어 세상에 맞서 개기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객기, 아니, 용기로 탈바꿈한다.
깔끔상쾌한 이준익표 휴머니즘 판타지
퍼스트기타 기영, 베이스 성욱, 드럼 혁수, 그리고 리드보컬 젊은오빠 현준, 이 네 사람이 성인나이트클럽에서 홍대클럽으로, 종국에는 자신들만의 콘서트홀 '라이브 조개구이'로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이 대학시절 불렀던 '터질 거야'(제목이 확실치 않다. 기억력이 안 좋아서… ^^;;)는 젊은오빠 현준을 만나면서 세련된 펑크락으로 변모하고 그들이 부르는 산울림, 옥슨80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마지막 상우의 유작인 '즐거운 인생'이 나올 때 즈음엔 그들의 노래만으로 우리 인생은 충분히 즐거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들의 거침없는 질주 중간중간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다. 밴드연습과 공연에 미친 남편의 속사정을 모르는 기영의 아내는 기영이 바람난 줄로 오해하고, 밴드하느라 돈 많이 못 벌 테니 애들 학원 다 끊으라는 성욱의 말에 아내는 가출한다. 자식들과 함께 캐나다로 유학간 혁수의 아내는 결국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연처럼 캐나다 현지남과 바람이 나서 이혼을 통보한다.
그러나 이따위 우여곡절이 이들의 거침없고 아름다운 질주를 막을 수는 없다. 꿈을 향해 현실을 접은 세 남자는 20대 젊은 관객부터 7080세대 관객까지 아우르는 완벽한 콘서트를 성공시킨다. 물론 그 콘서트장에서는 남편 바람난 줄 오해했던 아내와 실업자 아빠를 쪽팔려했던 딸이 환호하고 있고 가출했던 아내가 돌아와 아들을 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멀리 캐나다에서 딴 남자랑 바람난 아내는 안 되더라도 적어도 아들만큼은 아버지의 이 무대를 인정해 줄 날이 올 것이다.
찌질한 40대 남자들의 거침없는 질주를 가능하게 한 이준익 감독의 낙관은 도대체 어디에서 근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대의 패기와 열정을 끄집어내 들려주는 환상적인 하모니에 그런 의문조차 설 자리를 잃는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말도 있듯,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렇게 신이 나는데, 그렇게 따져가면서 영화를 봐야겠어? 다 용서되잖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결국은 "감독이 사람에 대한 세상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큰가 보다, 최고의 휴머니스트 감독이로군" 하는 칭찬까지 나오고야 만다.
꿈꾸고 도전할 권리는 남자에게만 있다
그러나 그저 행복해하기에는 찜찜하다. 왠지 나는 이 영화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억울한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이쯤에서 그토록 감동적이고 행복한 그 남자들의 질주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나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기영에게는 남편이 돈을 벌지 않아도 가족의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게다가 남편의 꿈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아내가 있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돈을 벌지 않고 허공에서 꿈을 찾아 허우적대는 것보다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랑 바람 피우는 게 더 큰 공포다. (이 감독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아냇감이 아닌가 싶다.)
성욱에게는 비록 그 꿈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욱 하는 심정에 가출까지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눈물 흘리며 박수쳐줄 아내가 있다.
혁수에게는 뼈빠지게 고생해서 생활비 부쳐줬더니 캐나다에서 딴 남자랑 바람난 나쁜 아내가 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나쁜 아내이므로 밴드한다고, 가족들 돌보지 않는다고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이미 사회적 면죄부까지 주어졌다.
아예 꿈만 쫓아 살던, 그래서 마누라는 집 나가고 아들은 삐딱하게 자라도 자기 꿈은 접지 않았던 로맨티스트 상우의 빈 자리는 상우와 꼭 닮은 재능과 외모를 겸비한 아들 현준이 채우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아들로서 사랑해준 기억조차 남겨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아버지의 꿈인 음악을 통해 용서하는 성숙한 남자로 성장했다.
여기에 실업자인 아버지는 쪽팔리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아버지는 친구까지 불러모아 응원해 줄 수 있는 기영의 딸, 처음 홍대클럽에서의 어설픈 무대부터 라이브 조개구이 콘서트홀의 멋진 무대까지 후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은 현준의 여자친구들은 무개념 빠순이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자, 여기까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그 남자들의 거침없는 질주는 경제적 책임을 짊어지든 가족에 대한 정서적 책임을 짊어지든 남편에게 면죄부를 쥐어주고 자기는 나쁜년이 되든, 어찌됐든 그 남자들의 꿈이 자신의 인생을 즈려밟고 가시게끔 했던 아내들이 있었다. 아내가 아닌 여자들도 죄다 박수부대쯤은 해주어야 한다.
즈려밟았다고 하니 억지스러운가? 눈물 핑그르르 도는 감동이 있는 가족애를 두고 딴지거는 것 같은가? 아니, 내가 보기엔 하나도 억지스럽지 않다. 절대 딴지가 아니다.
그 남자들의 아내들이라고 20대가 없었을까? 몸과 마음을 다 내던져 바치고픈 꿈 하나 없었을까? 그녀들이라고 40대 아줌마가 되어 생계를 책임지든 자식 교육에 안달복달하든 그런 삶이 버겁지 않았을까? 모두 내팽개치고 하고 싶은 것, 꿈을 찾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그녀들의 꿈과 욕망은 철저히 소외시킨, 그래서 영화의 갈등구조를 만드는 장애물이었다가 결국 주인공 남자들의 박수부대로 결론나는 캐릭터 외에는 아무런 존재감 없는 여자들을 만든 감독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꿈꾸고 도전할 권리, 세상에 개길 권리는 남자에게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여자는 남자들의 권리찾기에 소품 정도로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 아예 인간이라고 하면 남자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전작들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꿈꾸고 개길 권리의 상속 역시 아버지에서 아들로
생각을 더 확장시켜 현준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그리고 현준의 홍대클럽 동료들을 보자. 그들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꿈을 펼치지 못하는 40대 남자들이 돌아가고 싶은 과거이고 현실을 무시하고 꿈을 펼칠 수 있게 용기를 주는 든든한 동료이다. 그 젊은 청춘들, 40대 남자들의 꿈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이들은 현준이든 트랜스픽션이든 노브레인이든 모두 남자다. 그들은 40대의 일탈과 도전에 아무 생각 없이 환호하는 여자 관객들과는 다르다. 현재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그들 역시 기영이나 성욱의 아내와 같은 여자들(어머니나 여자친구쯤 될까?)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세상에 맞설 기운을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확인한다. 40대 남자들의 거침없는 질주 속에서 마누라들의 꿈과 욕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듯이 앞으로의 세상에서 역시 꿈꾸고 도전할 권리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상속된다는 것을. 라이브 조개구이에서의 콘서트 직전 혁수가 전화를 걸어 자신의 꿈을 전수하는 자식 역시 맏딸이 아니라 아들이다. 이 얼마나 개떡같은 부자세습인지.
남자들의 꿈 좋다, 그렇다고 여자를 '따'시킬 것까지야…
맨 앞에서 말했듯 난 이 영화를 매우 즐겁게 보았다. 나에게도 무대에 대한 잠재된 꿈과 열망이 있다. 이 영화는 비록 삼십대 중반밖에 안 됐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혹은 인생의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포기했던 20대의 무모했던 열정을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
기영, 성욱, 혁수, 죽은 상우를 덧씌운 그의 아들 현준. 남자들의 꿈 이야기 좋다. 그들이 꿈을 찾아 세상에 개기고 맞서는 용기도 좋다. 서로의 힘듦을 소주잔과 음악으로 다독이는 의리도 좋다. 콘서트의 열정이 식은 무대 뒤에서 다시 냉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할 그 남자들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 다 좋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자들을 이렇게까지 '따'시켜가면서까지 남자들만의 꿈과 열정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나는 그걸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