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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사랑… 현실의 벽에 부딪혀 부서지다

장헤영 |2007.09.14 10:02
조회 31 |추천 0


 

 

시티즌 걸


거창하게 한번 묻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손이 닿지도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하게 가려운 느낌을 전해오는 등허리의 한

가운데를 지목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측정될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현상적인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줄거리도 심리묘사도 없이

인간의 의식을 자연발생적으로 미분하는 고난도 방정식 같은 것인가요.

 

이번 주는 누보 로망(nouveau roman)의 기수로 불리는 프랑스 알랭

로브-그리예의 밀회의 집(문학과지성사)을 권해드립니다.

이 소설은 순차적인 시간 개념을 파괴합니다.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기묘한 사랑이 비정상적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조금씩

맛을 들이면 마치 혀 사이로 끈끈하게 감겨오는 프로마주처럼 무쟈게

재미 있습니다. 마카오에서 양귀비 밭을 운영하는 미국인 랠프 존슨이

주인공입니다. 존슨은 홍콩에 있는 고급 요정의 호스티스에게 푹 빠집니다.

그녀의 이름은 로렌입니다. 조금은 엽기적인 사랑 행각을 위해 존슨은

많은 돈을 로렌에게 줍니다. 존슨은 그녀에게 마카오로 같이 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로렌은 엄청난 돈을 요구합니다. 존슨은 돈을 구하기

위해 부자인 마느레에게 갔다가 그만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 그녀 앞에 무력한 남성, 변태 성욕, 마약과 돈,

그리고 살인사건이 이어집니다. 자세히 분석해보면 전통적인 탐정

소설의 연결고리가 작동하고 있어 읽기 편합니다. 발표된지 40년이

넘은 작품입니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로브-그리예의 대표작을 읽으면

서 오랜만에 소설문학의 묘미에 푹 빠져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내니의 일기’로 유명한 에마 매클로플린·니콜라 크라우스

공저의 장편 시티즌 걸(문학사상사)로 조금 가벼워지실래요?

이 작품은 대도시의 정글을 헤쳐가는 젊은 직장여성들의 사랑과 삶을

그리는 칙릿소설의 새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삶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를 풍자하고 시대를 고발하는 요소를 담뿍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주인공 ‘걸’은 전 세계 핍박 받는

여성을 구원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첫 직장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복사기나

돌리고 파일을 색깔 별로 맞추는 정도입니다. 1970년대 여성 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던 고용주는 무능과 악덕으로 뭉쳐 있습니다. 걸은 당장

박차고 떠나지도 못합니다. 식비, 집세, 학자금대출 상환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겨우 찾은 두 번째 직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 사이트 회사

입니다. 그곳에서 걸은 브랜드 이미지 쇄신 정보수집실장이란 직책을

맡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상사는 여전한 고통으로 다가오고, 더욱이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가 그녀의 꿈을 또 한번 왜곡시킵니다.

젊은 두 여성작가가 뉴욕을 무대로 펼치는 재치 넘치는 필치, 그리고

수수께끼처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플롯이 압권입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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