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눈을 뜨면 바로 하늘이 눈에 들어오는 이 넓고 포근하고
아늑한 집에서 밤새 따뜻하게 데펴진 내 몸은, 여전히 튀김옷을 입
은 오징어 처럼 이불 속에 깊숙히, 아주 깊숙히 파묻혀 있다. 그러므
로 나는 빼꼼이, 눈만 들어 하늘을 본다. 난롯가 앞에서 보는 창밖의
눈보라가 더욱 드라마틱 한 것 처럼, 지금 보이는 저 비는 더욱 비
다. 더욱 젖었고 더욱 적신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내가 있는 이 곳으
로, 구름을 적시며 끝도없는 하늘을 낙하하는, 저 환상적인 곡선이
매스큘린하다. 환상적이다. 차다. 그래서 이불은 더욱 포근하고 그
안은 더 따뜻하다.
종종걸음으로, 키만한 우산을 쓰고 학교가는 초등학생들의 표정에
서 비장미가 엿보인다. 우산을 방패처럼 두손으로 들고, 빗줄기를
거치며 한발한발 '학교'를 향해 진격하는 듯한 아이들의 종종걸음
과, 그 두 손이 너무나 귀엽다. 사랑스럽다.
길은 모두 젖어있다. 화창한 날 건물 사이에 음습한 한 조각의 그늘
처럼, 구름이 잔뜩 낀 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세상에 꿈같
은 그늘을 슬쩍 만들고 다시 숨는 태양처럼, 아직 비에 젖지 않은 몇
조각의 세상들이 간혹가다 눈에 띤다. 만지면 부서질 듯, 모래가 묻
어나올 듯 더욱 건조해 보인다.
한 우산 아래 같이 걷는 그녀의 두 볼에, 햇살 두 조각이 묻어있다.
그 곳에 눈을 감고 얼굴을 부비고 싶다. 입술을 모아 후룹 하고 빨아
들이고도 싶다. 그녀가 출근 버스에 오르면, 나는 얼른 집으로 가 설
겆이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이 모든 감흥들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
각을 한다. 아니, 우선 글로 남기고 그 담에 청소를 하고싶다. 설겆
이는 미룰 수 없다. 냄새가 날 지도 모르기 떄문이다. 골프우산은 혼
자 쓰기엔 너무 크다. 그래도 이따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 올 떄는 분
명 유용할 것이다. 신발이 젖었다. 아참, 비가 오고 있었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비는 여전하다. 하늘은 검정이 섞인 듯 짙디 짙은 회색
이다.
오늘은 밤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