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할까? 뭐 하고 싶은 거 없냐?" 만나기 만났는데 그녀도 나도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습니다. 그렇다고 밥을 먹기엔 이른 시간,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합니다. 주말 오후, 볼만한 것은 이미 다 매진되었고 우리 둘 다 예매를 안했으니 그저 표가 남아있는 영화를 봅니다. 예상대로 영화는 지루했지만, 어째든 영화가 끝나니 밥을 먹기에 적당한 시간이 됐습니다. 식당으로 들어가 각자 메뉴를 주문하고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하고 나는 무심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들려 오는 시끄러운 소리. 옆을 돌아보니, 연인인 듯한 두 사람. 남자가 무얼 잘못한건지, 아니면 여자가 무얼 오해한건지, 두 사람은 당장이라도 헤어질 태세입니다. "끝내!" 여자가 말하자 남자도 지지 않고 대답하기를, "좋아!"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는 어쩐지 쓴웃음이 나올 것 같아 혼잣말인 듯, 질문인 듯 그녀에게 물어 봅니다. "우리는 언제 싸웠지?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네." 그제야 전화를 끊은 그녀가, 나를 빤히 보며 대답합니다. "오래됐겠지. 나도 생각 안나. 니가 기억 못하는 걸, 나라고 기억하겠어?" 화낼 생각은 없었는데, 꼭 화난 사람같네요. 방금 내 목소리가. 하지만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내 목소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도 없다는 듯, 산만하게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말다툼.. 우리도 많이 다투었죠. 서로 먼저 전화 끊으라고, 왜 내 전화를 더 빨리 받아주지 않냐고, 왜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냐고, 그러는 넌 왜 다른 여자를 쳐다보냐고, 그런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서로에게 시비도 짜증도 화도 내지 않게 된 건 아마도.. 그 맘 때였던 것 같아요. 어느 피곤한 날 마지못해 보낸 내 문자 메시지에 그가 답장을 하지 않았을 때, 그런데도 난, 화가나거나 서운한 대신 '아 다행이다. 다시 귀찮게 답장 보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때. 우리도 싸울 일이 많았어요. 나는 그 사람만 바라보았고 그 사람이 나만 바라보아 주었으면 바라던 시절엔. 다시 돌아 갈수 있을까 싶은 아득하기만 한 그때는 우리도 그랬지요. 『이미나 - 그남자 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