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훈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지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 당혜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를 숙이고 ......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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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 처마 끝이 보기 좋게 위로 들리게 하여 모양 나게 한 서까래
주렴 : 구슬을 꿰어 만든 발
자지빛 : 자줏빛
호장 : '회장'이 표준어로, 여자 저고리의 깃, 소맷부리, 겨드랑이
따위를 자줏빛 또는 남빛 헝겊으로 꾸미는 일
호장저고리 : 회장저고리, 곧 저고리의 깃, 소맷부리, 겨드랑이,
옷고름 등을 색 헝겊으로 댄 여성용 저고리
동정 : 한복의 저고리 깃 위에 덧 꾸미는 흰 헝겊의 가느다란 가닥
초마 : '치마'의 방언
운혜 : 앞코에 구름무늬를 놓은 여자의 마른신
당혜 : 조선 시대 부녀자가 신던 가죽신의 하나
호접 : 나비
사푸시 : 살포시
아미 : 아름다운 여인의 눈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