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관용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관용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대 의사를 행동으로 표시 할 수 있는 힘의 유무에 따라 관용인가 복종인가 하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관용은 반대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용납해 주는 것이었고 거기에 나는 부합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 사람의 행동을 관용한 것일까, 묵인, 복종한 것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는 내리기 힘들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만큼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는‘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첫 장을 연다. 다원적인 사회에서의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는 분명 크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그 차이를 인식하는 이는 극히 적다. 라는 생각이 우리의 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관용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1995년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1995년은 유엔이 선포한 ‘세계 관용의 해’이며, ‘해방 50돌’이고, 한국 교회의 ‘희년 선포’된 해이다. 라고 저자는 말하면서 이 세 가지에서 관용의 필요성을 잡아내며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1.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부터의 해방 2. 연고주의로부터 해방. 3. 광신주의적 편협성으로부터의 해방. 4.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해방. 이 네 가지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2. 줄거리
이제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적절히 적응시킴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철학자들까지 관용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원인을 두 가지 통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두 번째는,
여기에 세 번째를 넣어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세 번째는, 우리말 사전에서 관용이‘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이란 단순한 사전적 정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관용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견해는 힘 있는 자의 권리 행사 또는 통치 기술, 소수자들만이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으로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관용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고 저자는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며, 사람들이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또 관용을 권리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나 역시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관용의 정의에서 저자는 반대와 용납의 결합이라는 프레스톤 킹 교수의 정의를 지지하나 다만 용납의 의미를 보다 제한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맨 처음부분에서 말했듯이 반대 의사를 행동으로 표시 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것은 용납이 아니라 굴복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외연; 일정한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의 전 범위.
*내포;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에 속하는 여러 사물이 공통으로 지니는 필연적 성질의 전체.
*< >; 책 인용 부분.
관용의 기능은 궁극적으로 갈등의 해소에 있다. 저자는 다원 민주주의 사회에 적절한 갈등 해소의 방법으로 이라고 이야기 한다.
관용이 도덕적 또는 정치적 개념으로서 제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관용의 정당화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로서 여기서는 관용을 정당화하는 세 가지 근거와 관용을 실천할 때 종종 직면하게 되는 두 가지 한계를 지적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번째는 관용의 한계는 어디인가 하는 문제로서 구체적으로 어디인가를 묻는 것은 이론적으로 대답되어질 성질의 물음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관용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문제 제기한다.
관용을 정당화하는 세 가지는 1.분별력으로부터의 논증. 2.합리성으로부터의 논증. 3.도덕성으로부터의 논증이다. 이 세 가지 논증은 관용을 정당화해 주는 데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관용의 한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논리적 한계와 실천적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밝혀지고 있는데 논리적 한계는 ‘관용의 역설’이고 실천적 한계는 ‘자기 부정의 어려움’이다.
뒤로는 종교적 관용론에 대한 이야기로 종교의 다양성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나 고 이야기 하며 중세적 수준의 종교 의식으로부터 탈피하여 근대적 종교관으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성이 언급된다.
종교에 대해 관용적 태도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데 기여한 홉스의 ‘교회에 대한 국가의 우위론’, 로크의 ‘제한된 관용론’그리고 흄의 회의주의 철학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언급되어지며 고 말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다원주의 사회에서 또는 한국 사회에서 관용이 왜 요청되는 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불관용의 심리적 배경들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끝으로 저자는 라는 말로써 관용 교육이 시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3. 결론.
저자는 현재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을 관용의 자세라 보고 현재 관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서부터 정의, 기능, 관용이 가지는 모순과 그러함에도 관용이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점, 그리고 어떠한 배경에 의해 관용이 필요한가를 자세히 저술했다.
이 작품이 쓰여 진 시기는 1990년대 말로 경제적으로는 IMF가 일어났던 시기이고, 사회·문화적으로는 획일화된 문화에서 점점 탈피되어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해지는 문화로 탈바꿈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적 배경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관용이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성을 느끼고 관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그동안 발표된 관용에 관한 글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들에게 관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쓰여 진 책이다. 여기에서 관용은 현대 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것이며, 갈등을 해소할 최선의 방법이며 관용의 자세로서 우리나라가 더욱 성숙,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걸 담고 있다.
4. 나의 결론.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관용에 대한 일반적인 오류를 나도 가지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더욱 자세하고 정확하게 관용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잘못된 인식 또한 바꾸게 되었다. 뜻 깊은 이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바이다.
작품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의 관용의 중요성을 나 역시 필요하다고 느끼고 공감한다. 더불어 이 책을 펴낸 저자의 의도 또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의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단어도 그렇지만 관용에 대한 전문용어 같은 것들이 너무 생소하고 낯설었다. 분명 저자는 보다 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관용에 대해 알리려는 생각에서 책을 집필 했을테지만 읽는 사람에 입장에서 어려운 이 책은 결코 좋은 책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위대하고 좋은 의도를 가진 책도 읽는 사람에게 어렵다면 저자의 의도는 100%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이 교양교재가 아니였다면 중간에 읽는 것을 포기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