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디자인 사회를 향하다 - 생활속의 이야기 138호

조효정 |2007.09.28 23:19
조회 474 |추천 0

 

찌는 듯한 무더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이른 아침과 저녁에 툇마루 끝에 앉아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오묘한 게절의 변화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력과 자연의 창조적인 힘을 느끼게 하고, 또 언제나 감동적이다.

 '미쳤다'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거다. 올 여름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는 더위와 게릴라성 폭우 등에서는, 지속적으로 감지되던 이상기후의 징후가 점차 끝을 알 수 없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우리가 소비하고 그럼으로써 생산되는 각종 폐기물들은 점점 자연의 치유력과 재생력을 병들게 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올 여름 하안거를 마친 뒤 해제집회에서 온난화를 지구가 중병이 들어 내뿜는 신열로 해석하고 지구 환경 개선을 위해 청빈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한 법정 스님의 지적은, 새삼 '디자인'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산업화와 대량생산 체계의 발달과 맞물려 최근 수십 년간 디자인은 '소비자 주도 디자인'이라는 미명 하에 병들어가는 지구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디자인 광란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1980년대를 보내고, 일부 디자이너들은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책임있는 디자인과 윤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현명한 시도를 조심스레 전개하고 있다.

 

관심과 배려로서의 디자인

 

 얼마 전 올림픽공원 내에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이라는 전시장이 생겼다. 말 그대로, 종이로 만든 기둥과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지은 미술관이다. 월간 디자인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가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일본 건축가인 반 시게루(Shigeru Ban)에게 의뢰해서 지은 정말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우선 종이 기둥과 컨테이너로만 지어졌기 떄문에 해체해서 어느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고, 또 다시 종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종문화회관규모의 미술관이 일정 정도의 땅을 소유하지 않고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부지 매입에 대한 걱정 없이, 필요와 의지에 따라서 문화적 소외 지역에 이동성 불연속적 프로젝트 갤러리로 기능할 수 있다면 보다 의미 있는 사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반 시게루의 페이퍼 건축은 1986년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Alvar Alto)의 전시장 디자인을 위해 처음 시도된 이래, 1994년 고베 지진 때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사용되면서 그 건축적 진가를 인정받았다. 지진과 같은 비상사태에 기증 받은 맥주 크레이트와 포장용 천, 종이 기둥처럼 가볍고 조립이 용이한 재료를 이용해 빠른 시간에 이재민들을 위한 숙소를 지을 수 있는 데다 사태 회복 후 철거도 용이하고 100퍼센트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친환경적인 요소까지 더해져 페이퍼 건축은 효과적인 이재민 구호 대책으로 주목 받았으며, 2000년 터키, 2001년 인도와 르완다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참고자료 반 시게루의 페이퍼 건축

 

 

 

 

 

 

 

 

 

 

 

 

 

 



 

 

 

 

 

 

 

 

 

 

 

 

 

 

 


 

 

 

 

 

 

 

 

 

 

 

 

 

 

 

 

 

 반 시게루가 종이를 사용해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건축적 대안을 제시하고 재난 구호 등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노숙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예술가도 있다. 뉴욕 태생의 예술가인 마이클 라코위츠(Michael Rakowitz)는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석사 과정에 재학 당시, 건물에서 난방을 위해 사용된 후 배출된 공기가 온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 에너지를 이용해 노숙자들이 한겨울데도 따뜻하게 거주할 수 있는 이동식 숙소인 '파라사이트(parasite)'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닐로 만들어져 간단하게 접어서 소지가 가능하고 제작비도 5달러에 불과한 이 이동식 숙소의 가장 큰 특징은, 건물에서 버려지는 더운 공기가 이 구조물의 형태 유지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한다는 점이다. 물론 마이클의 접근은 노숙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혹은 디자이너로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으로 그 관심을 환기시켜나가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의 프로젝트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 참고자료 마이클 라코위츠의 이동식 숙소


 소외계층을 위한 디자인

 

 거의 모든 디자인들이 일반적인 소비자 혹은 보다 많은 소비가 가능한 소비자들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UDAP(the UInit for the Development of Alternative Products, 대안제품개발유닛)과 같은 영국의 몇몇 집단은 장애 아동이나 환자들처럼 디자인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제품의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주로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의 목욕을 돕는 제품이나 호흡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번거로운 병원용 철제 호흡 보조 장치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가정용 환기 장치, 버스나 열차를 타는 것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휴대용 경량 장치 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프로젝트들이 단순히 타깃 대상들의 1차적인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인간적인 욕구를 만족시켜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LICT(the London Centre for Product Development and Technological Resuources)의 쥬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깔끔한 식사(neater eater)'는 다발성경화증이나 뇌성마비와 같은 증상의 부작용으로 떨림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혼자서 편하게 식사 시간을 즐기고 품위를 잃지 않게 도와준다. 어떤 환자들에게 있어서 품위를 잃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 참고자료 neater-eater

 


Impefect shop project

 

 콘셉트 디자이너인 이상훈과 프로젝트 그룹 노네임 노샵, 얼스 프로젝트가 2005년 8월에 하께 진행한 은 전은 외모지상주의에 근거한 여러 가지 편견 및 겉으로 보여지는 조건들이 한 사람의 내적 가치도 대변해버리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깨드리자는 메시지를 은유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 더불어, 기존의 다자인이 지나치게 심미적인 면에 치우치는 현실을 자각하고, 불완전한 산업 폐기물들을 통해 오히려 수공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이를 상품화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디자인의 내적인 가치와 함의를 드러낸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공장 생산라인에서 불량으로 폐기처분 되는 자기류와 유리 제품을 수거해 'imperfect'라는 브랜드 로고를 입히는 작업만으로 그 불량품들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나 소비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독일의 코지올사 등이 생산 라인의 불량품들을 적극적으로 수거, 항공편으로 지원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반면, 국내 굴지의 업체들은 자신들의 브랜드 이미지가 좋지 않게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시 협조를 거절했다.

 

-참고자료 imperfect shop simulation전

 



 

 

 

 

 

 

 

 

 

 

 

 

 

 

 

윤리적 생산, 윤리적 소비자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 떄문에, 디자인은 특히 중요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에게 윤리적 생산의식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큼 기업의 윤리적 투자와 소비자의 선택적인 윤리적 소비 또한 '세상이 모두에게 더 나은 곳'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핀란드의 파올라 수호넨(Paola Suhonen)은 윤리적인 디자인 사업을 표방한다. 그녀는 제3세계 재봉사들을 착취하면서 옷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며, 유행이 지나면 헐값에 팔고 그래도 남는 제품들이 창고에서 쓰레기 취급 당하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임금이 비싸지만 핀란드에서 옷을 만들고, 재고가 안 남을 만큼 소량생산을 하며(주문 베이스 생산방식으로), 제봉사들과 실크스크린 장인들에게 합리적인 급여와 연금을 제공하기 충분하도록 가격을 책정했다. 그녀의 제품을 구매하는 전세계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그만큼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행동주의적인 소비자들을 대체로 오존층의 파괴와 같은 환경적인 쟁점을 일으키거나 동물 실험을 남용하고 제3세계의 값싼 인력을 착취해 이윤을 높이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운동의 대상으로 삼지만, 어떤 소비자들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도 한다. 제2차 대전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본과 독일 상품을 여전히 피하고 있는 경우가 바로 그런 예일 것이다. 1980년과 1984년에 코카콜라는 지속적인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었는데, 이유는 과테말라의 코카콜라 병 제조공장의 노동조합 설립 과정에서 협박과 살인이 자행되었다는 증거가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행동의 근거가 되는 건 정확한 정보이어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이런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통계와 정보를 제공해주는 정보지의 이름은 이다.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마케팅 주도 디자인의 가치관이 지구의 미래를 병들어가게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반 디자인이나 비소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 대한 직시와 보다 윤리적인 생산 방식과 소비가, 보다 밝은 미래를 가능케 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떄론 사소한 디테일에 대한 강조와 그 차이를 알아보는 심미안이 가치있을 수가 있다. 소비자로서 우리는 우리의 선택 가능성과 다양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수준의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사계절의 변화라는 오묘한 감동을 고유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참고자료 이바나 헬싱키 제품들



 

 

 

 

 

 

 

 

 

 

 

 

 

 

 

 

 

 

 

 



 

 

 

 

 

 

 

 

 

 

 

 

 

 

진계영-문화콘텐츠 기획자-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