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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이칼럼]비운의 축구천재의 "텀블링"

강승묵 |2007.10.01 13:59
조회 60 |추천 0


1998년 한국 프로축구의 르네상스기라고 불리우는 시점에 트로이카라고 불리우던 안정환, 이동국, 고종수...특히 축구를 떠나 그 누구보다 암울한 시기를 보내야했던 고종수가 2년 3개월만에 첫 골을 터트렸다. 컴퓨터게임과 자기관리의 소홀로 망가진 선수라고 손가락질 했던 팬들의 야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시원~한 한방을 날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텀블링도 오랜만에 봤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실로 내가슴이 쿵쾅거리는 한순간이었다.
1997년 혜성처럼 나타난 19세의 어린 고종수는 나카타와의 라이벌 구도로 떠오르며 세계언론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히딩크감독이 처음 부임할때 모든 선수들에게 '고종수처럼만 해라'는 지시가 떨어질 만큼 그는 축구천재였다. 살인적인 스케쥴과 강도높은 체력훈련으로 선수생명에 가장 걸림돌이었던 무릎부상으로 2002년 월드컵때 해설자로 그라운드를 봐야했던 비운의 축구스타다. 버릇없고 게으른 축구천재라고 멸시받던 어린 선수에게 부상은 가장 큰 시련이었고, 절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다. 프리킥의 달인이고 세계를 놀라게 했던 아시아의 축구신동으로서 말이다.
필자는 언론이 고종수를 죽여놨다고 생각한다. 어린선수는 언론의 휘둘림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댓글에 상처받고 신문기사에 상처받는다. 한달만에 회복될 부상을 세달로 만들어 놓는다. 물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할 순 없지만 호의성 기사보다 쥐어뜯는 기사를 많이 쓰는 스포츠신문의 특성때문일 것이다. 그의 바램처럼 다독여 주는 기사를 써 달라는 간곡함때문일까? 10월 1일 스포츠 신문 대서특필 1면 장식이다!!
그의 동기인 이동국도 무릎부상으로 2006년 월드컵 볼을 차지 못했다. 고종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둘은 다시 한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의 열정에 갈채를 보내는 바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열정이 아직은 가슴속에 남아있는가라는 한편으로는 아쉽고 나태해 져있다는 자신을 바라볼 때 오늘의 고종수와 같은 열정을 다시한번 불 살려봄이 어떠할까라는 후회와 결심이 교차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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