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나를 좋아하게 됐어?'
그녀가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하다..
'네 말투랑 목소리가 좋았던 것 같아.
왠지....아나운서 말투 같은거..'
'아하~~? 내 접대용 목소리?'
그녀는 갸르릉거리는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
그 두근두근한 전초전의 시기에,
그녀는 자신의 특기인 우아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었다..
그러나 그와 사귄 지 300일이 지난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앞에서는 그 접대용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근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생각해봤는데 말이야..단지 목소리 때문이었다면,
지금쯤 나하테 싫증나야 되는 거 아냐?'
며칠 후 그녀는 따지듯이 물었다.
말인즉슨, 다른 이유들도 대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사로잡았던 그녀의 매력들을
최대한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배려하는 섬세함이나 다양한 상식,
실수라곤 절대 안 할 것 같은 절도 있는 태도....
그리고 그가 감기몸살로 누워 있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고는 바로 닭매운찜을
만들어왔던 그 정성과 솜씨에 반했다고 했다..
자신에 대한 찬미를 들으면서 그녀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가 사랑했다는 그 수많은 장점들은 사실 그의 착각이거나,
그녀의 연출이거나,
이제는 없는 과거의 모습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의 사랑은 거짓에 기초하고 있단 말인가..
그녀는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그가 이런말을 했다..
'근데 진짜 이상한 게 있어.. 예전에 그 접대용 목소리보다
요즘 네가 그르릉 하는 그 소리 있잖아,
그게 더 좋아지더라구..나 미친 거 맞지,그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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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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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트콤 {프렌즈}에서 로스는
두 여자 중 한 명을 선택하기 위해 그녀들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본다.
오래전부터 짝사랑하던 레이첼은 단점 투성이고,
새로 만난 줄리는 장점이 훨씬 더 많지만,
줄리가 가진 단하나의 단점은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레이첼이 아니라는 것....
사랑이 시작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한번 사랑이 시작되고나면,
이유가 사랑 앞에 복종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