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주인은 단 한명 나머지는 모두 하인' (영화 춤추는 무뚜 중에서)
제가 2004년 상반기에 가장 기대했던 게임이라면, 포루투갈의 인도 식민지 경영을 다룬 게임 '고아'와 함께 오늘 소개할 게임인 '마하라자'를 꼽을 수 있을 것같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게임은 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도는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며 모든 격투술의 원류가 시작되는 곳이며, 높은 수준의 철학과 정신 문화를 자랑으로 하는 곳입니다만, 어쩐지 소를 신성시 여기거나 손으로 카레를 떠 먹는 등 뭔가 구질구질한 곳으로 여겨지는 면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흐느적거리며 공중에 떠 다니고 늘어나는 긴 손발에 입에서는 불을 뿜는 요가 괴인의 나라라는 쓸데없는 선입견마저 있었지요. 생각해 보면 이슬람과 그 주변 문화를 야만스럽게 묘사하는 양키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식인종도 아닌데, 해골목걸이는 왜 하신거예요?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이미지 관리 좀 하자고요~마하라자? 그게 뭘까?
마하라자는 인도 황제의 호칭이었다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인도의 각 지방에는 '라자'라는 호칭의 지도자들이 각자 지역을 관할하고, 마하라자가 그 모두를 다스리는 그런 스타일의 사회였던 듯 합니다. 어쨌건 게임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면, 16세기 인도는 무굴제국이 어느정도 기틀도 잡혀가고 살만해질 때였습니다. 항상 이맘때쯤엔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고상한 예술에 심취하는 왕이 나라를 쇠락의 길로 이끌곤 하죠.
어쨌건 그런 역사의 전철대로 무굴 제국의 마하라자는 아름다운 건축물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타지마할 묘나, 델리 궁전 같은 멋진 건물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였죠. 그렇게 고된 일을 시켜놓고 건물들이 잘 지어지고 있는지 이동네 저동네 시찰하러 다니는 마하라자,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어명에 따라 공사를 감독하며 각 도시에 궁전과 저택을 지어 마하라자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군 장성이 부대를 시찰할 때나 장학사가 학교를 시찰할 때 그리고 대통령이 경찰서 관할 구역을 지날 때 등 높은 사람이 한번 행차하면 아랫사람들이 피곤해 지는 것은 당시 무굴제국의 이야기 뿐만이 아니고 우리네 정서와도 일맥 상통하는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뺑이 치는 군인 아저씨들... 신분제도가 엄격한 당시 인도에서도 "까라면 까"이 말 한마디면 다 통했겠죠.사치와 향락으로 구멍난 재정
일단 게임의 목표는 빨리 궁전을 7개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치와 향락으로 재정이 구멍난 자치 단체의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플레이어는 궁전 하나 짓고 나면 바로 개털 될 정도의 돈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돈을 불리지 못하면 게속해서 건물을 지을 수가 없는거죠. 다행히도 매 라운드마다 마하라자는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해당 도시에서 훌륭한 건축물을 많이 만든 플레이어의 순위를 매겨서 플레이어에게 쥐꼬리만한 상금을 하사합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마하라자의 순방 일정에 맞춰서 궁전과 저택을 지으며 마하라자의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이죠.
실제로 부족한 건축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건물을 꾸역꾸역 밀어넣는 플레이어의 정성은 실로 애처로울 지경이며, 매 라운드마다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립니다. 그런 박빙의 승부에도 불구하고 마하라자의 상금은 2등 3등 내려갈수록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낮아집니다.
원래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경쟁은 이렇게 처절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돈 좀 아끼겠다고 건물 한개 덜 지었다가 등수가 한참 뒤로 밀려서 본전도 못 건지는 땅을 칠 일도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각 도시에 처음으로 짓는 궁전의 가치를 게임에서 높게 쳐주기 때문에, 이번 라운드는 깨끗이 포기하고 마하라자가 다음 라운드에 방문할 도시에 먼저 궁전을 지어서 다음 라운드의 1등을 노린다거나 하는 이른바 앞을 내다보는 플레이도 필요하게 됩니다.
청년 실업 100만 시대 당신도 안심할 수 없다.
이렇게 쪼들리는 재정란에서도 플레이어에게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둥들이 있습니다. 약간의 돈을 벌어주는 상인과 건설 비용을 절감해주는 예술가 그리고 박빙의 점수계산에서 플레이어를 구원해주는 탁발승 등 여러 캐릭터가 있는데, 플레이어는 언제나 이들 캐릭터를 1명씩 가진 상태로 게임을 하게 되며,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게임의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캐릭터에게 평생 직장의 개념 따위는 없다는 것입니다.
캐릭터들의 세계에서는 다른 플레이어가 부르면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버리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어서 플레이어는 이들이 언제 떠나 버릴 지 모른다는 것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좋아 보인다고 오랫동안 헌신했던 자기 캐릭터를 버리는 비정한 플레이어가 나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릭터 인력 시장. 실력있는 캐릭터는 너도 나도 데려가려 안달이다.하지만, 오늘의 인기 캐릭터가 내일의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다.
뒤 떨어지면 끝장이다!
여러 라운드의 한끗 승부가 모이고 모여서 엄청난 차이로 벌어지게 되며,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는 흥미진진한 게임입니다. 룰은 쉽지만 많은 응용이 필요한 게임으로 리플레이성이나 게임의 깊이도 충분한 수준이며, 간간히 벌어지는 플레이어 인터액션은 긴장감 넘치는 게임에 잔잔한 웃음을 제공하는 작은 활력소가 되어 줍니다.
게임 내에 외국어 텍스트가 전혀 없고, 규칙 난이도는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가르치기는 그리 어렵진 않지만, 비슷한 실력의 플레이어가 팽팽하게 경합하는 데서 재미가 발생하고 한번 뒤쳐지면 만회하기 아주 어려운 게임이기 때문에, 초보 플레이어와 게임할 때는 가르치는 분들이 미리 간단한 팁이나 게임 흐름 등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 준 뒤에 게임을 시작할 것을 권합니다. 특히 대충 설명하고 '나머지는 하면서 배워' 스타일의 게임 교습자들을 만나면 꽤 힘든 게임이 될 것입니다.
어느 게임에나 있는 문제지만 마하라자는 전략적 전술적인 선택지가 다양하고,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을 예측하며 플레이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생각이 깊은 플레이어들과 게임하게 되면 플레이 시간이 대책없이 실어지지 않을까 다소 걱정이 됩니다.

끝으로 게임 배경에 대해 간단히 투덜거려 보자면 보통 이런 게임은 지방 토호들이 힘을 키워서 누가 왕이 되냐를 겨루거나 왕자들의 왕위 다툼을 위한 과제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철저하게 왕에게 굽신거려야 하는 것이 깨나 존심 상하는군요.
처음 제가 지적했듯 역사적으로 돌아볼 때 볼때 궁전 대공사 같은것에 돈 낭비를 하면 결국 그게 국력 쇠퇴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무굴제국도 '샤자한'의 제위기간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지만 궁전 짓는데 돈 낭비를 과도하게 해서 결국 제국이 삐끗하는 결과를 초래했고요. 결국 플레이어가 그렇게 돈 아껴서 힘들게 지은 궁전이 결과적으로 무굴제국 쇠락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은 더욱 꿀꿀해집니다. 물론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후손들이 짭짤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헛짓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요.
ps. 개인적으로 이 게임의 콤포넌트들은 꽤 신경썼고 수준급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친절한 콤포넌트 수납 트레이는 정말 용서가 안될 수준입니다. 카드도 없는 게임에 카드 덱 넣는 곳에 3군데나 있고, 워 게임도 아닌데 자잘한 카운터를 담는 곳이 무려 5곳이나 되는 등 어떻게 게임 콤포넌트를 수납해야할 지 곤란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이렇게 보관하라고 어디선가 보고는 똑같이 하고는 있지만요.
대충 정리하면 많이 빈다..
이렇게 하면 그나마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