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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사태 그 이후

이상호 |2007.10.04 23:14
조회 108 |추천 0

3. 시사저널 사태 그 이후


 


2007년 4월 15일 KBS 퀴즈 대한민국이라는 프로에 한 기자가 나와 2000만원의 상금을 탄다.


이 기자의 이름은 고재열, 시사저널에서 일했던 기자였다.


2006년 6월 19일 발생한  시사저널 사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시사저널과의 마찰을 빚었던 이 기자는


1년 가까이 수입이 없자, 그리고 자신들의 일이 시작과 달리 주목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이 일을 다시 상기시키고자 퀴즈 프로에 출현한다. 시사저널 사태 이후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싸우던 22명 기자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가 수리된 이후에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노동조합 결성 이후 시사저널 기자들과 금창태 사장과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한 예가 바로 금창태 사장이 내린 기자들에 대한 징계 조치였다.


우선 이윤삼 편집국장은 백번 양보하여 자신이 사표를 냈다 하더라도, 시사저널에서 이윤삼 편집국장의 이름을 빼라는 명령을 어기고


편집회의에 불참한 장영희 취재총괄부장은 2006년 8월 부터 무기 정직이며, 백승기 사진 부장은 대기발령이 나 있는 상태이다. 또한 같은달 감재태 편집장 직무대행 역시 장영희 취재총괄부장과 같은 이유로 3개월 감봉을 당한다.


9월에는 장영희 취재총괄부장의 조취에 항의한 노순동, 윤무영 기자는 정직 3개월의 처분을 받게 된다.


당시 시사저널은 기존 시사저널 기자들의 파업에 대비하여 정치부 기자 2명, 경제부 기자 2명, 사회부 기자 3명, 사진기자 3명, 미술관련 3명등 총 13명의 기자를  비상시 편집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하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사저널 기자들은 6월 시사저널 노동조합 결성이후 부터 같은해 12월 15일 까지 14차례 사측과의 협상은 모두 결렬된다.


문제는 2007년 1월 15일 이 대체된 13명의 기자단이 전면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데,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회사측에 대해 전면 파업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14차례의 협상이 모두 결렬됨에 따라 시사저널 노조원들은 결국 시사저널 안에서 자신들의 펜을 놓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노조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크게는 금창태 사장의 자의적인 징계와 인사조정에 대해  노사동수가 참여해야 함을 주장했고,  금창태 사장이 내린 징계 취소 및 퇴진, 편집장 임명 동의제와 편집장 중간평가제 도입등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단 하나도 사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시사저널 경영진이 말한 "노동조합이 단체협상 테이블에만 앉으면 모든 문제를 논의 하겠다"던  말은 거짓이 되었다. 시사저널 노조 위원장 안철홍 기자는 이 일에 대해 "기자가 펜을 놓기로 결정한 것은 생존권에 관한 문제"라고 말을 하며 "물러설 수 없다"라고 말을 이었다.


 


2007년 1월 9일 발간된 시사저널 899호는 위와 같은 사태에 대해 시사저널의 독자 및 여러 언론 단체들의 혹평을 받아야만 했다.


우선 시사저널 899호은 김행 전 정몽준 대선 후보의 대변인이 편집국장을 맡았다. 그리고 서정민 기자(중앙일보 중동전문 기자)


정진홍 기자(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재혁 편집위원(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삼성회장 비서실 전략홍보팀 상무이사), 이문호 기자(삼성언론재단이사)등이 주를 이루어 시사저널은 다시 만들어 졌다.


이에 한 시민은 시사저널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금창태 사장의 특기는 아마도 이해당사자에게 기사맡기기인가 보다"


이런 비난은 한 시민의 입에서 멈추지는 않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한국기자협회도 각각 논평과 성명을 내고 비상식적인 금창태 사장의 시사저널 제작 사태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9일 논평이다.


"이런 함량미달의 잡지로는 주간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결국 회사도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영진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또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리수를 써가면서 까지 편집권 독립장치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기자협회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언론계의 상식을 번연히 알고 계신 분들이 소위 짝퉁 시사저널 제작의 악역을 맡고 있다"면서 이것은 "후배들의 발목을 다시 한번 잡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의 말은 다르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1월 17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음은 프레시안 1월 17일 기사이다.


"이번 사태를 시사저널 내부에서 합리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다. 다만 이미 알다시피 노동단체기관지 및 일부 경향성을 가진 시민단체기관지들 인터넷을 비롯한 군소 유사 언론매체들이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검증없이 다룸으로써 저 자신이 일부 이념적 세력의 공격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앞으로 회사 차원에서 적극 대응 하기로 했다"


 


금창태 사장이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다름 아닌 소송을 통해 알리기였다.


금창태 사장은 2007년 1월 16일 오마이 뉴스와 그곳에 시사저널 사태 관련 글을 올린 서명숙씨 등에게 명예회손과 민사배상청구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라 밝혔고,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편집장 칼럼을 쓴 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진행 중이라 밝혔다.


또한 시사저널 899호에 대해 고재열 시사저널 기자가  오마이 뉴스에 품평기를 기고하자 이에 다시 징계조취를 취하기도 했다.


 


또한 금창태 사장이 "회사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말한 부분은 직장 폐쇄 조치로 이어지게 되는데,


직장 폐쇄 조치에 대해 금창태 사장은 다음과 같은 공식 발표를 하게 된다.


"노동조합의 전면 파업이 12일째로 접어듦에 따라 회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 46조에 따라 직장폐쇄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 오후 1시 부터 직장은 폐쇄된다." 이 직장폐쇄 조치가 시행되면 파업을 행한 이들은 회사의 사측의 허락 없이는 회사의 어떤 부분에도 출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이어 "직장폐쇄 조치 이후에도 시사저널은 계속 발행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말한다. 이에 안철홍 기자는 이 조취의 부당함을 호소하면서 "이미 직장폐쇄 전부터 " 그러니까 노조를 결성하고 나서 부터 "회사의 프린용지나 컴퓨터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직장 폐쇄 조치가 시행되고 나서 이 시사저널 사태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 대통합민주신당의 모체격인 전 열린우리당 위원인 정철래 위원이 그 시작을 알렸다. 우선 문화관광부 소속인 정청래 위원은 문화관광위원회, 정무위원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진상조사단을 꾸린다. 그러면서 정철래 위원은 시사저널 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는 충정로 시사저널 본사 앞으로 찾아가 "21세기 언론의 자유가 만끽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을 열며 "시사저널 사태가 언론의 승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같은 당 소속 우상호 위원은 "시사저널 사태는 개별 언론사의 문제를 넘어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다."라고 말하면서 "사주가 이것을 일반 사기업처럼 처리하는 것은 문제"라고 덪붙인다.


이 시사저널 사태는 당시 경선을 준비 중이던 한나라당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소위 짝퉁시사저널에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였던 박근혜 의원 측의 K씨가 그곳에 기사를 기고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치적 논쟁에 놓인 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민주노동당 정호진 부대변인은 "시사저널 사태는 단순히 노사간의 문제가 아니라 재벌과 보수 정당, 언론 관료의 총체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 한나라당을 비판한다. 이에 박근혜 의원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다"라고 대응하기도 했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좀 더 해학적으로 접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그콘서트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개그콘서트의 집중토론이라는 프로를 맡고 있는 개그맨 황현희, 박성광, 박성진은 "편집권 독립은 누구에게 있는가"의 주제로 금창태 사장을 금변태로, 시사저널을 식사저널로 표현하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2007년 6월 19일 발생한 시사저널 사태는 이렇듯 많은 언론 단체와 시사저널 독자, 네티즌과 정치권 그리고 코메디 부분에서 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까지 글을 읽다보면 필자가 페이퍼 신문이 아닌 인터넷 신문에서만 자료를 얻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에 대해 게으름을 제외하고 왜 인터넷 신문만을 참조했는지 의문을 제기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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