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채널ⓔ 올림픽, 정신 (070917방송)
대전 내려오는 기차안에서 이 영상을 봤어...
피곤한 중에 있었는데... 눈을 뗄수가 없더라구...
생각보다 쉽게 찾아지길래 이곳에 올려본다.
공감...하기를 바라며.
관련기사가 있어서 밑에 스크랩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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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의 무하마드알리 이야기] 멕시코 올림픽과 알리2007년 5월 16일(수) 6:46 [조이뉴스24]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기 쉬운 분야는 단연 스포츠다. 그리고 스포츠라면 역시 인류의 제전으로 불리는 올림픽이다. 60년대 초반 힘을 모으기 시작한 블랙파워 운동이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였다.
무하마드 알리가 징집을 거부하며 미국 정부와 두려움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이던 1967년 미국의 흑인 선수들은 ‘인간의 권리를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 OPHR)’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의 목표는 당초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스포츠를 통해 국내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어떤 거짓으로 국제사회에 선전하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단체에 소속된 대부분의 흑인들은 다른 탈출구가 없이 올림픽 출전을 인생의 최대 목표로 평생을 살아온 선수들이었다. 당연히 올림픽 보이콧이 쉽게 결정될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렇다고 투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대회 이틀째 남자 200m 금메달리스트인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 리스트 존 카를로스는 검은 장갑을 끼고 검은 양말에 운동화를 신지 않은 채 시상대에 올랐다. 미국 국가가 연주되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순간 그들은 고개를 떨구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이 쳐들었다. 마치 나찌식의 경례를 하는 것처럼.
검은 장갑과 검은 양말은 ‘블랙파워’의 상징이었다. 또 신발을 신지 않은 것은 미국에서 가해지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린치와 흑인들이 안고 있는 빈곤 문제를 표현한 것이었다.
처음 영문도 모르고 단상에 올랐던 호주의 백인 단거리 선수 피터 노먼도 즉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그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OPHR을 응원하는 관중들로부터 배지를 받아 자신의 가슴에 달고 시상대로 돌아왔다. 100마디 웅변보다 더 강한 동참의 표시였다.
이를 바라본 미국 사회의 시선을 냉담했다. 시상식이 치러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메달을 박탈당했고 올림픽 선수촌에서도 쫓겨났다. 미국 언론들은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켰다고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그런 가운데 미국 올림픽 단원 가운데 그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뜻밖에도 그들은 전원 백인들에다가 전원 하버드대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자연인으로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지위와 평등한 권리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미국 올림픽 단원의 일원으로 우리의 팀메이트가 불공정과 불평등을 알리기 위해 한 행동에 지지를 표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반응도 크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400m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와이어미아 타이어스는 “내 금메달을 존 카를로스와 토미 스미스에게 바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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