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1일(목) 3:03 동아일보
동아일보
노벨의학상 공동수상 카페키 성공스토리에 美 감동 물결
미국은 거의 3타석 2안타 꼴로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다. 1990년 이래 지금까지 12차례 미국인 수상자가 나왔다. 때문에 미국 사회는 수상자가 미국인인지 여부 보다는 어떤 업적이 인정받았는지에 주된 관심을 쏟아왔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올해 노벨 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는 유타대학의 마리오 카페키(70) 교수가 8일 선정되자 미국 사회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첨단 과학의 핵심 분야인 유전자 질환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그의 인생 역정에 는 20세기의 어두운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미국 언론들은 'can do(할 수 있다) 정신'을 실현한 성공 스토리로 카페키 교수의 인생 역정에 자주 조명을 비춰왔다.
카페키 교수는 1937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20세기 초 예술가의 꿈을 안고 유럽으로 건너온 미국 여성의 딸이었다. 나치와 파시즘에 저항하던 보헤미안 예술가들과 교유하던 어머니는 이탈리아 공군 장교를 만나 그를 낳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았고 곧 2차 대전이 터졌다. 아버지는 전투 중 사망했고, 어머니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게슈타포에 끌려 갈 것을 예감한 어머니는 전 재산을 팔아 시골에서 농사짓는 친구에게 건네주며 아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카페키 교수가 4살 반 때의 일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없게 돈이 바닥나 버렸고 그는 거리로 나왔다.
이때부터 4년 반 동안 어린 소년은 부랑아 생활을 해야 했다. 거리에서 자고 쓰레기통을 뒤져 끼니를 때웠다. 굶어죽기 직전까지 간적도 많았다.
3년 반 가량 거리를 헤매던 그는 영양실조에 걸린 부랑아들을 수용하는 시설에 감금됐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1년 내내 빨가벗고 지내게 하는 시설이었지만 매일 작은 빵 한 조각과 커피가 나왔다.
나치의 패망으로 수용소에서 나온 어머니는 1년 동안 찾아다닌 끝에 9살 생일이 되는 날 아들을 찾아냈다. 모자는 곧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사는 외삼촌을 찾아 대서양을 건넜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전혀 달랐다. 퀘이커 교도 공동체를 이끌던 삼촌의 도움으로 퀘이커학교에 들어간 그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지만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찰흙을 만들게 해주는 교사의 배려"로 배우는 것의 즐거움을 터득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2차대전 중 받은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지 못한 채 평생을 환상 속에서 살다 1989년 타계했다.
어린시절 경험한 처절한 생존투쟁의 영향일까. 카페키 교수는 남다른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했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의 지도 아래 1967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1980년 '유전자 적중'(gene targeting-세포핵에 DNA를 주입해 특정 유전자 구조의 변형을 일으키는 기술)이란 생소한 연구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미 국립보건원(NIH)에 지원을 신청했다. 그러나 NIH는 "쓸모없는 연구"라며 퇴짜를 놓았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고 4년 후 NIH는 "우리 말을 듣지 않아줘 정말 고맙다"며 사과하는 편지를 보내며 그의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유전자 적중 기술은 의학사에 한 획을 그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학자들이 필요에 따라 생쥐의 특정 유전자를 조작해 치매와 암 등 각종 인간 질병에 걸린 실험용 생쥐를 제작하게 됐고, 이에 따라 질병에 대한 각종 의학적 연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카페키 교수는 어린시절의 경험이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인간은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조작할 수 없는 존재다. 경험이 자존심, 독립심, 독창성 같은 인간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라고만 대답한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내 손안의 뉴스 동아 모바일 401 + 네이트, 매직n, ez-i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온라인 신문협회의 규정에 따라 기사의 제목과 본문 일부 및 URL만 스크랩이 가능하오니 이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저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이 기사를 Example로 Death Penalty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10년간 사형이 집행된적이 없어서 사실상,
사형제도(Death Penalty)가 없어진 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사형제도에 찬성한다.
그 이유는 범죄의 재 발생, 살인같은 흉악범죄의 처단 등등으로 말을 할수 있겠지만.. 이건 너무 근본적이므로 .
어제 학원에서 배운 '책임'의 문제로 Death Penalty를 정당화 하고자 한다.
모든 범죄에는 책임이 있다.
개인의 책임(Individual Responsibility)
사회의 책임(Social Responsibility)
개인의 책임은 모든 범죄에 물어지는 책임이지만, 사회의 책임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사람들의 의견들이 달라진다.
사회의 책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연쇄살인마 '유영철'의 경우와 같이 불후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사회에 핍박받으며 살아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어 연쇄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 경우. 범죄에 사회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영철의 연쇄살인은 부족한 정부가 유영철에게 사회적 보장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사회가 제대로 그를 감싸주지 않아 그에게 정신적인 피해가 가고, 그로인해 그가 살인을 저질렀으므로-> 그의 살인행각에는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가 따른다고 본다.-라는 시각이다.
맞는말이다.
유영철이 썼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다.
-내가 학교다닐때 선생님이 너 착한녀석이다 라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나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너 이새끼야 돈도 없는게 학교에 왜나왔어 이러고 나를 구박할때부터 내 마음속에 악마가 자라기 시작했다-
이런 글 이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특히 어린 학생시절엔 부모나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수 있고 정신적으로 틀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책임'을 예로들어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살인자와 흉악범을 감싸는것 에는 무리가 있다.
모든 범죄자들에게 적용하기엔 범위가 너무 넓고 다양하다.
이번에 노벨 의학상을 받은 카페키를 예로들면, 그도 유영철 만큼이나 불후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세계 2차대전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이별을 했다. 4살때 농장에 맡겨졌지만 곧 거리로 내몰려 차가운 바닥에서 자고 쓰레기로 끼니를 때우며 3년 반을 보낸다. 그러다 부랑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에 1년간 감금됐다가 극적으로 어머니와 재회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친지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고 열심히 공부하여 노벨 의학상을 받기까지에 이른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불후한 어린시절을 보낼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느냐는 개개인마다 다르다.
위의 유영철과 카페키가 극적인 예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불후한 어린시절과 사회에서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 범죄자가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물을수 있고 사형제에 대해서도 '사회적 책임'을 들며 반대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앞에도 언급했듯이 세상의 사람들은 다양하고 모든 범죄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적용시키기엔 무리가 있다.
근본적 문제로 돌아가서, 애초에 법이란 이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한대로 모아주고 통제해 주기 위해서 생긴 것 이다.
만약에 법이란 사회통제수단이 없다면, '살인'이란 것도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정당화 될 수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책임(Individual Responsibility)를 중점으로 범죄자에게 책임을 묻고, 사형제도는 폐지되지 말아야 할 것 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도 간과 하지 말고 정부는 더 이상 개개인들이 사회로부터 핍박받지 않도록, 사회제도를 보완하고 국제적인 가치인 인권(Human Right)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이다.
- 이 신문기사 보고 안까먹으려고 적다보니 무척 길어졌네요,
어쨌든, 전 사형제도폐지 반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