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실서 원어민·한국 교사 동시 수업… 6학년 작문 실력은 대학생 수준
▲ 영훈초등학교는 수업 내용에 따라 다양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가르친다.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굿모닝, 덕현.”
“굿모닝, 유미.”
…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는 영훈초등학교 1학년 교실. 바닥에 둘러앉은 학생들이 서로에게 공을 굴려 보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수줍게 아침인사를 나눴다. 여기까지는 1학년 학생들답다.
인사가 끝나자 그림책을 꺼내든 원어민 교사가 말을 시작했다. 어린이들의 수준을 고려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원어민 학생들 대하듯이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했다.
“표지의 그림을 보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무엇에 관한 책일까요? 개를 데리고 있는 소년이 무엇을 하고 있지요? 책 안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지 예상해봅시다.”
놀랍게도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이 말을 알아듣고 손을 들어 척척 대답을 했다. 완전한 문장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
시험을 보고 입학한 것도 아니고 한 학기밖에 안됐는데 벌써 원어민 교사와 단순한 회화 수준을 넘어 내용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니…. 해외에서 살다 온 학생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심옥령 교감은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입학하는 학생이 점차 늘고 있긴 해도 해외파 학생은 10%도 안된다”며 “입학 초엔 수업진행이 어렵지만 비슷한 어구의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아, 이런 뜻이구나’라는 감이 생기면서 대화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2학년만 돼도 듣기 능력이 급격히 향상돼 아이들과 해외에 나가 본 학부모들이 깜짝 놀라곤 한다. 부모가 못 들은 공항의 안내방송을 아이들이 알아듣고 안내를 한다는 것이다.
원어민 교사가 자신의 손에 든 것과 같은 그림책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어느 쪽으로 전달할지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읽을 준비가 됐는지 확인했다. 심 교감은 “활동 속의 언어교육을 지향하기 때문에 원어민 교사로부터 언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 9월 4일 제주도에 ‘영어교육도시’를 조성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발표하면서 영훈초등학교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영어교육도시에 2010년부터 설립할 12개의 영어전용학교에서 시행할 ‘영어 몰입식 교육(English Immersion Program)’의 원조가 바로 영훈초등학교이기 때문이다.
영어 몰입식 교육이란 영어를 어학과목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원어민 교사가 일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도록 하는 교육 방식. 영훈초등학교는 1997년부터 영어 몰입식 교육 학급을 편성했고 지금은 전교생이 수업의 절반을 영어로 하고 있다. 최근에 일부 사립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영어 몰입식 교육이 확산되고 있지만 모든 학급에 원어민 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영훈초등학교뿐이다.
영훈초등학교의 학급당 인원은 36명으로 한 교실에 18명씩 두 그룹의 수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하는 교실의 다른 한쪽에는 한국인 교사가 가르치는 그룹이 있다. 80분간 수업을 한 뒤에는 자리를 맞바꿔 영어로 수업을 했던 학생들이 한국어로 수업을 하고 한국어로 수업을 한 학생들이 영어로 수업을 한다. 한 교실에서 두 명의 교사가 다른 과목을 다른 언어로 가르치는 것이다. 게다가 복도를 구분하는 벽도 없다. 반을 구분하는 벽이 있을 뿐 한 층이 모두 통하는 것이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울 것 같지만 다른 학급의 학생들이 복도로 이동을 하거나 옆 교실에서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나도 신경을 쓰는 학생은 없다. 심 교감은 “공간을 개방해 놓으면 교실을 넓게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에 개방적 자세를 갖게 된다”며 “학생들의 창의력과 집중력이 오히려 높아졌다”고 말했다.
▲ 공을 굴리며 서로 인사 하면서 시작하는 1학년 수업.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수업방식은 담임의 개성과 교육철학에 따라 다르다. 책상 배치와 교실을 꾸민 모양도 각양각색이고 수업 내용에 따라 학생들의 자세도 달라진다.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학습도구를 매만지면서 제각각 몰두하는 교실이 있는가 하면 교사 옆에 옹기종기 앉아 책을 읽는 교실도 있다. 한 수업 안에서도 학생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자유롭게 공부를 한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벨소리도 없다.
영훈초등학교가 중점을 두는 교육은 독서와 작문 교육이다. 학교 도서실에는 1만6000여권의 한국어 도서와 1만5000여권의 영어 도서가 구비돼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도록 개방돼 있고 누워서도 볼 수 있게 매트를 깔아 놓았다.
원어민 교사들은 작문교육에서 특별한 역할을 한다. 영어로 읽고 쓰기 때문만이 아니다. 심 교감은 “원어민 교사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고 일일이 첨삭지도를 한다”며 “이런 교육방식으로 수업을 받으면 아무리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교과목을 중점적으로 배우고 부수적으로 독서와 작문을 하는 한국의 교육과 달리 서양의 교육시스템은 독서와 작문 중심이기 때문에 한국보다 교육방식이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막연하게 책을 읽도록 권장하고 무조건 주제를 주고 글을 쓰도록 하는 방식이 아닌 것이다. 한 원어민 교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작문을 순차적으로 도와주는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해 교육을 하고 있었다.
영훈초등학교의 수업은 글쓰기로 마무리한다. 하나의 과제가 끝나면 그 결과물이 남아 학생의 포트폴리오가 된다. 교실마다 벽면에는 학생들이 최근에 쓴 글들이 붙어 있었다. 학급별 사물함에는 1년의 포트폴리오를 버리지 않고 보관한다. 정창진 교장은 “이런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기 때문에 알파벳만 알고 1학년에 입학한 학생도 1학년 2학기부터는 말문이 트이고 영어문장 쓰기에 익숙해진다”며 “졸업할 때의 영어 작문 실력은 웬만한 대학생을 뺨칠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바로 서양의 중학교에 진학해도 무방하다. 현지 교육을 받기 전에 이수하는 어학교육인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아도 수업에 지장이 없는 것이다. 올해에도 경쟁이 치열한 페이스쿨·카디건마운틴 등 해외 명문 기숙중학교에 7명이 지원해 모두 합격했다.
6학년 수업을 참관해보니 그럴 만도 했다. 학생들은 수백 쪽 두께의 과학 원서를 읽으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유전되는 성격과 기질에 대한 수업이었다.
“혀를 좌우로 말 수 있는 사람은 손 들어보세요. 그것은 유전되는 것입니다.”
“저의 가족들은 다 되는데 저만 안 되는데요.”
교사의 설명에 학생이 반론을 펴자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귓불이 늘어지는 사람은?” “두 손을 마주 잡을 때 오른손이 위로 갑니까, 왼손이 위로 갑니까?”
저학년에 비해 어려운 어휘가 많이 나왔지만 수업은 막힘없이 흘러갔다. 10여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만 영어교육을 받아서 이 정도 실력을 갖추었다면 특별했겠지만 지금 이 학교에선 모두가 평범한 학생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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