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룡능선의 추억]
설악산에 가을이 왔다.
공룡능선이 나를 부른다.
공룡능선은 설악산의 많은 등산로 중 마등령에서부터 무너미고개에 이르는 설악산의 주릉으로 아마추어에게는 보통 6-7시간이 소요되는 긴 능선이다.
비선대에서 세존봉을 거쳐 마등령으로 오르는 시간이나,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무너미로 내려와 공룡능선을 오르자면 엄청난 시간이 걸려 해가 짧은 가을에는 당일산행은 무리다.

필자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아니면 산악회의 안내산행을 통하여
아니 어떤 때는 같은 직업의 동료와 심지어는 혼자서도 공룡능선을 여러번 종주하였다.
산불예방을 위해 입산이 금지된 때 아내와 함께 입산허가를 받아 무너미를 오르다가 때아닌 5월에 눈보라를 만나 대청산장에서 단 둘이 떨면서 하루밤을 보낸 일도 있고,
여름철 슬리퍼 타입의 등산화로 세존봉을 오르다가 돌뿌리를 걷어차 엄지발가락이 빠지기도 하였고,
사진에 미쳐 라이카 R6-2와 롤라이플렉스(ROLEIFLEX) IR-66에 지쪼(GIZZO) 삼각대까지 들고 나한봉 부근을 가다가 더위에 너무 힘들어 카메라와 삼각대를 다 버리고 가다가 10분만에 다시 돌아온 일도 있으며,
겨울철에 혼자 종주를 하던 중 나한봉 부근에서 설악골 방면으로 빠져 길을 잃고 얼어죽을 뻔 했던 일도 있다.

공룡능선은 자신을 돌아보고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묘한 힘을 가졌다.
1275봉에서 벌거벗고 누워 하늘을 향하여 죽어도 괜찮겠다는 유혹도 느껴보았고
신선암에서 대청봉과 서북능선, 용아장성을 바라보며 삶의 의욕과 열정을 추리기도 하였다.
이제라도 불쑥 한 번 달려가 오르고 싶은 공룡능선
그는 언제나 거기에 홀로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아침산행을 계속해오다가 여름철에 비가 온다는 핑계로, 겨울철에는 새벽에 랜턴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이유로 차츰 게을러지더니 골프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말에 골프를 핑계로 아예 주말산행도 그만 둔 것이 벌써 몇 년이 되었던가?
그래도 아직 이름모를 봉우리에 올라 멀고먼 산하를 굽어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던 공룡능선에서의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깊어가는 가을
공룡능선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면서 악을 쓰던 그때가 그립다.
삶과 죽음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기를 쓰던 그때가
너무나 그립다.
(‘07. 10. 18.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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