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 당기기의 재발견
밀고 당기기라는 연애 테크닉에 대해 나는 여태껏 늘 비판적인 입장이였다.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불행히도 그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서였다. 일만 열심히 할 줄 알았지, 남자를 가지고 놓았다가 쥐었다가 하는 건 아주 잼병이었다. 사실 연애의 테크닉적인 요소는 대부분 부정했던 것 같다. 전화하고 싶으면 새벽2시라도 전화했고, 들이대고 싶을 때는 앞뒤 안 가리고 들이댔다. 솔직함과 뛰어난 행동력은 내 자랑거리였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늘 골치거리였다. 포기하며 혼자 중얼댔다. 어차피 잘 안될 관계는 뭘 해도 잘 안되고, 이루어질 관계는 어떻게 해도 이루어진다고.
그런데 나는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밀고 당기기라는 지극히 전형적인 연애테크닉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숱한 연애상담을 받으면서 어느 순간 얻은 깨달음이다. 나의 후배격이 되는 이 시대의 젊은 여자들? 절대 겉보기만큼 쿨하지 못하다. 요즘 날씨만큼 머리와 마음은 뜨겁게 달궈져 있어 감정이 마그마처럼 흘러 넘치다 못해 범람한다. 글을 읽는 내가 부담스러워질 정도로. 자꾸 그 남자를 전화나 이메일로 괴롭히고 싶고, 좀 전에 헤어졌는데 바로 또 보고 싶어지고, 일부러 브라자와 팬티를 맞춰 입지 않고 나가서 ‘급’섹스를 통제해보려고 하지만, 하룻밤의 사랑은 그 다음날 필연으로 규정지고 감정은 더더욱 고조되어 버린다. 늘 ‘다 내 맘 같으면 참 좋겠지만’ 문제는 남자 쪽은 아니올씨다라는 것이다. 이 때부터 감감무소식이 돼버린 남자에 대해 그녀들은 생각하고 분석하고, 고민하고 철저하게 집착하는 경미의 광기에 빠져버린다. 오,맙소사.
살짝 돌며, 온 몸이 다 ‘사랑 밖엔 난 몰라’ 모드로 소금으로 푹 절여져 있을 때, 나의 뜨거운 진심 하나를 들이댄다 해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 그러니까 여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굴면 잘 되던 것도 망쳐.” 라고 혹자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냥 그러면 안 돼. 그냥 참아야 돼. 그게 연애의 법칙이야.' 라고만 스스로를 타일러 오고, 또 나도 앵무새들처럼 후배처자들에게 복습을 시켜왔다. 하지만 나는 왜 우리가 감정표현을 억제해야 하는지 이제와서야 알 것 같다.
내가 그녀들의 뜨거운 김 자욱한 메일을 읽어오면서 든 깨달음은 바로 다음과 같다. 핑크빛 짝사랑에 신음하고 ‘욱’ 고백의 유혹을 참아내지 못하는 (참건 말건, 애진작에 티는 다 냈겠지만) 그녀들로부터는 뜨거운 스팀사우나만 훅 불어올 뿐이지, 그녀들의 ‘캐릭터’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오로지 불 같은 감정덩어리가 나를 향해 하염없이 날아오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하물며 제3자인 나도 그런 느낌을 받는데 당사자인 상대남자들은 얼마나 더 숨막히게 덥겠는가? 그런 와중에 어찌 그 여자들이 각기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개성과 색깔이 그 남자에게 전달 되어질 수 있을까? 그녀의 캐릭터가 김 속에 가려지고 있다면, 남자는 아무리 여자의 매력을 느껴보려고 해도 다가갈 수가 없다. 다가가기 전에 뜨거운 연기에 질식하기 일보 직전인데?
그래서 그 남자가 정말 좋다면 잠시 냉정을 되찾을 것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이것은 연애비법서의 전형적인 테크닉이기 전에 ‘ 있는 그대로의 매력적인 나 ’ 를 당당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를 내 마음 속에서 잠시 동안 파일 삭제시켜버리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그 남자가 없어도 배는 고파오고, 다음날 태양은 떠오른다. 직장에서의 새로운 프로젝트, 올 가을 새로 시도해보고 싶은 패션룩, 친구들과의 온천여행 등, 물론 연애지상주의자들의 욕망에는 다소 못 미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이런 것들도 연애 못지 않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동안, 그 남자에 한해서는 꼼짝 말고 가만히 놔두기로 한다. 사랑의 힘을 승화시켜서라도 말이다. 설사 그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해도, 금새 긴장의 끈을 늦춰 그 남자만 바라보는 것은 금물이다. 최소 마음의 반 이상은 다른 관심거리 혹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채워놓도록 노력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통풍이 잘 되고 쿨 다운된 당신이 되었을 때 비로서 자신의 진정한 윤곽이 그에게 전달되어질 수가 있고, 그 때 비로소 이 연애는 ‘페어 게임(fair game)’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해, 밀고 당기기를 하나의 ‘잔머리 테크닉’ 이라고 매도하기 전에 ‘ 원래 꽤 매력적인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 하나의 권리행사라고 관점을 바꿔 보자. 누가 봐도 멀쩡하고 아주 삼삼한 처자인데도 어찌 남자만 엮였다 하면 일을 망치고 있다면 더더욱 특히 이 당연한 권리행사를 해야 한다. 물론 나도 늘 뒷북이지만.
- < 마리끌레르 9월호 > ' 밀고 당기기의 재발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