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일드] 라이어 게임, 천재와 멍청할 정도로 착하다는 설정의 두 아이의 조금은 어설픈 게임

장환석 |2007.10.31 18:29
조회 122 |추천 0

라이어 게임.

 

라이어 게임이라는 일드를 보았다. 2007년 상반기인가, 후지 tv에서 방영된 작품으로 상반기 드라마 중에서는 가장 볼만하다는 평을 듣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애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그 설정의 독특함이었는데, 처음에는 만화책으로 보려고 하였으나 3권 이상 구하기가 쉽지 않고 여차저차하던 차에 드라마는 완결되었다고 하길래 결국 보게 되었다.

 

일단 드라마를 보면서 만화책과 비교해 본 결과, 만화책보다 드라마가 연출면이나 표현면이나 월등히 잘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뭐 만화라고 해봤자 1권 처음 조금 깨작이다 말아서 제대로 된 비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실 분들은 드라마 쪽이 훨씬 생동감있고 재미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이 드라마에는 칸자키 나오라는 바보같을 정도로 착하고 정직한 여자아이와 신이치 아키야마라는 비정상적으로 냉철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천재 사기꾼 남자아이가 등장한다. 라이어 게임이란 것은 정체불명의 집단이 무작위(는 아니지만)로 선정된 플레이어들에게 1회전엔 1억엔(대충 8억이다!) 2회전 1억엔, 3회전 5억엔 하는 식으로 일정 액수의 돈을 나누어 주고 서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나는 상대방을 죽이고 뺏는 것이 가장 간단한거 아닌가 싶었는데, 뭐 그런 과격한 놈은 없두만. 일단 여기서의 어떤 수단이라 함은 '어떠한 거짓말을 하더라도'라는 말로 바꿔 읽어주시면 되겠다) 상대방의 돈을 뺏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또는 시일이 지나 게임이 종료되면 애초에 자신에게 공급되었던 1억엔 등은 고스란히 반환하여야 하고 자신이 뺏은 돈은 자신의 상금이 되는, 돈을 뺏긴자는 그만큼의 빚을 고스란히 지게 되는 공포의 게임! 그것이 라이어 게임이다.

 

여차저차해서 이 게임에 (숙명적으로, 계획적으로) 휘말린 주인공 두 명은 비현실적환상적어처구니없을정도로 착하다 못해 멍청한 (죽어도 순진하다는 말을  써주고 싶지 않다) 여주인공과 역시 비현실적환상적어처구니없을정도로 냉철하고 머리 회전이 빠르고 완벽한 계산을 하는 남자주인공은 차근 차근 이 집단의 의도를 파헤치기 위해서 올라가게 된다.

 

일단 드라마 자체의 재미를 놓고 이야기하자면 재미있다. 보는 동안 내가 저 상황이라면 저 게임을 어떻게 이겨야 할까, 일종의 두뇌싸움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뭐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충분한 사고의 시간이 주어짐에 반해 나는 휙휙 지나가는 화면을 따라가게 되다 보니 제대로 된 전략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아키야마가 멋진 해결책을 내어 놓으면 '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털썩 ' 류의 기분을 느끼며 살짝 좌절하게 된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말이지만.

 

아직 결말은 보지 못해 어떻게 끝나는지는 모르지만 ( 이 드라마가 참 특이하고 웃긴게, 한 편단 대충 35분쯤 되는데 그런 것이 10편, 마지막 편이 한 2시간 20분쯤 된다. 거의 4편 분량. 이건 뭐.) 일단 지금까지는 '세상은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로 나뉘어 진다.'


'속는 놈이 바보지 아하하하하하하.' '세상은 뺏는자와 뺏기는 자로 나뉘어 진다. 우하하하하.'와 같은 철저한 이분법적 세계관에 대항하여 '우리 모두 평화롭게, 다 같이 행복한 삶을 살아요. 모두 힘을 합쳐 협력해서. 피스(peace).' 류의 태도를 가진 여주인공이 대립하는 구도에 천재 사기꾼 아키야마가 여주인공의 두뇌 노릇을 해주는 내용이 진행되었다. 방금 말한 이분법적 사고는 비단 이 드라마에서 처음 본 것은 아니다. 가장 적나라하게 저것이 드러나는 것은 '도박묵시록 카이지'.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라면 도박묵시록 카이지에는 나오 같은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분법적 세계관이 그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세계관이다. 주인공 카이지는 그러한 세계에서 한마리 진흙개가 되어 손에 닿지도 않는 곳에 안전하게 앉아서 자신을 농락하는 세력의 손길로부터 살아남으려 발버둥친다. 아니, 단지 살아 남으려는 발버둥을 넘어서 그런 어이없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벌어지는 도박의 짜릿함, 숨막힐듯한 긴장이라는  부(負)의 생명 에너지에 환희하면서. 그러나 이 드라마에는 나오가 있다. 결말은 안 봐서 모르겠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아키야마(개인적 과거 때문에 이 사람의 사고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가깝게 변해있을지 모르나 그의 어머니는 나오와 거의 같은 캐릭터였기 때문에 근본은 나오와 같다는 설정이 아닐까 추측된다)와 끝까지 게임에서 살아남은 후 나오식 peace한 세계관을 폭죽처럼 파팡 터뜨리며 끝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오의 행동을 보면서 짜증이 불쑥 불쑥 치밀어 올랐다. 뭐 나오가 생각하는 것은 대충 이런건데, 모두에게 1억씩 나눠주고 서로의 것을 뺏으라고 한다면 모두 남의 것은 탐하지 않고 있다가 고스란히 반납하는 거야.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해피해피, 너무나 행복해요. 아무도 절망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의 나날로 고고싱. 이건 뭐, 유토피아도 아니고. 철저하고 공정한 룰이(국가와 법 같은 체제가 되었건, 허튼 짓을 하면 가시가 돋아 그런 생각을 한 주인을 죽여 버리는 인공 심장이 되었건간에) 그러한 짓거리를 원천 봉쇄한다면야 불.가.능.하니까 나오와 같은 생각도 가능하겠지만, 뭐 현실에서는 실현될 수 없는 말이지. 2명의 인간만 결합해도 서로의 속을 모른다. 수 많은 연인들은 서로를 배신하고, 수 많은 동업자도 서로를 배신하고 수 많은 부부들은 이혼을 한다. 그런 세상에 3명, 4명. 숫자가 불어날 수록 있을 수 없지 그런 일 같은건. 사실 솔직한 것은 카이지 같은 태도가 아닐까 한다. 그 놈은 일단 구제불능 도박 중독자기 때문에 항상 너무 극한 상황속에 있어 우리의 일상 생활과 단순비교하긴 어렵겠지만, 결국에 '나는 지배자가 되어야 해' '나는 피지배자가 될 수 없어' '나는 뺏는 자가 되어야 해.' '나는 빼앗기는 자가 될 수 없어.' 라는 명제를 신념으로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이 현재의 현실을 상당부분 반영하는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누가 피지배자가 되고 싶고 뺏기는 사람이 되고 싶겠는가. 문제는 두 계급중 어느 것이 '되어야'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러한 현실을 인식하되 자신은 뺏는자, 지배자 라는 계급에 존재할지라도 최소한, 전형적인 그들의 행동양식을 카피하지는 않는 것, 그리고 빼앗기는자, 피지배자 라는 계급에 존재할지라도 .... 존재할지라도 ... 존재할지라도 ... 참 쓸 말이 없다. 이 문장은 끝맺을 수가 없다. 뭐 단순히 이랜드, 홈에버 사태만 봐도 그렇지. 그 계급에 위치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기가 힘들다. 선택하는 방법이라곤 역시 투쟁. 투쟁. 그러나 그 투쟁은 국가마저 개입을 포기한 상황에선 악덕 기업의 배째라식 배짱에 혹독한 고난을 겪게 된다. 결국 특정 계급적 존재가 되기를 욕망하기 보다는 계급이 존재하는 상황을 어떻게 좀 더 바람직하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이는데, 나오양 같은 태도는 도움이 안된단 말이지. 너무 이상적이라 그렇다. 이상사회를 그리는 것도 궁극의 목표를 제시하므로 좋아, 라면 할 말은 없지만 역시 그런 말은 어이없지.(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구나. 그건 너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훨씬 멋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거의 모든 형태를 이야기했다!)

 

아니 뭐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거창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일본이라는 사회도 참 처절한 사회여서 그런지 꽤 저런 내용을 담은 만화같은 것이 많은 것 같아 그냥 써 보았다.

 

그나저나 아키야마라는 녀석. 정말 멋지다. 그 냉철함과 정확한 판단력이라니 ... 아키야마만 나타나면 두두두둥 나는 구원받았다!라는 느낌이 든다. 호리호리 마른데다가 처음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자꾸 보니 비웃는 듯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는 표정에 카리스마가 느껴지며 그 냉정함에 중독되게 되는. 아아. 아홉살 인생에 나왔던 남자 아이가 가졌던 돌쇠식 믿음직스러움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진 믿음직스러움. 정말 바보같은 정도로 착해서 짜증을 불러 일으켰던 여주인공 옆에 서 있으니 그 후광이 더욱 빛난다. 하아. 아키야마.

 

에이잉, 뭐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얘기였는데.


조연들도 볼 만한 애들 몇 명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보셔도 좋겠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