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자료 정리 다 안된거지만 제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2주 전인가 보다. Luxembourg 에 다녀 왔다.
아주 작은 나라라는 말만 들었다.. 게다가 원체 잘 알려 지지도 않은 나라다..
먹은거 좋아 하는 나는 그곳에 가서 뭘 먹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헐..
룩셈부르크는 제주도 보다 1.5배 크다(서울보다 5배 정도 큼).
실제로 운전을 하면서 느낄수 있다.. 얼마나 작은 나라 인지..
한나절 운전하면 나라 구정 다 할지도 모르겠다.
토요일 아침에 벨기에 mons 에서 출발해서 한시간 운전하고 가니 국경이 보였다.
말이 국경이지 그냥 룩셈버르 나라라는 표말이 다다..
유럽 국경들이 대부분 이렇다..
지금껏 유럽 여행 하면서 영국 갈때 유로스타 탈려고 비자를 보여 주었던게 다다.
아무튼 룩셈버그..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인이라면 보았을 영화 "Patton" (패튼) 의 실재 인물이 그곳에서 쉬고 계신다.
인터넷 서치해서 찾은 주소를 가지고 GPS 도움으로 길 안 잊어 버리고 단번에 찾았다는거.. ㅋ
묘지에 다다르기 바고 전 도로 이름을 보니 패튼 이라 적혀 있었다.
주차장 모습이다..
별로 차가 없다..
우리 말고 몇대의 차와 관광 버스가 한쪽에 주차 하고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들..
그리고 공동 묘지로 들어가는 현관
현관 바로 앞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웹서치해서 찾은 묘지입구 현관..
들어서면 visiter center 가 왼쪽에 있고 그곳으로 들어가면 한사람이 묘지에 대한 도움말을 해주는거 같다.
특히 가족 묘를 찾은 사람들에게 누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려 주는거 같다.
우리 갔을때 점심 시간이라고 사무실 문을 잠가 놓았지만 안에 사람이 있는 기척이 났다.
그리고 그 비지터 센터를 지나서 보이는것은 기념탑 (monument) 이다.
묘지를 들어서면서 남편의 목소리가 깊어지고.. 해나에게 잔디도 못밝게 하고.. 감회가 깊은듯.. 감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랫 사진은 기념탑 안의 모습이다.
기념관 천정
기념비를 나와 넓은 계단을몇개 내려 오면 넑은 마당이 있고 그곳에는 아이젠하워 장군의 추모글이 바닥에 새겨져 있고 발로 밝지 못하도록 쇠줄로 둘려져 있다.
All who shall hereafter live in freedom will be here reminded that to those men and
their comrades we owe a debt to be paid with grateful remembrance of their sacrifice
and with the high resolve that the cause for which they died shall live eternally.
Dwight D . Eisenhower
패튼 장군때문에 골치를 알았던 아이젠하워이지만.. 2차대전 나기 전부터 패튼 장군과 함께 오랫동안 군생활을 했으면 패튼 장군을 아프리카로 그리고 유럽으로 부른 이 역시 아이젠하워 였으며 오랜기간 함께 일했으므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어느정도 있지 않았을까 싶고.. 패튼 장군이 아이젠 하워의 닉네임 (아익: IkE)을 스스럼 없이 부를 정도 였다면 상사와 부하로써 뿐아닌 친구로써의 우정도 있었을거며 그리고 군인으로써 서로 존경하는 사이는 아닐까 싶고, 패튼을 읽은 안타까움 또한 컸을거다 생각된다.
기념비 양쪽으로 돌로 만든 2차 대전 지도들이 있다.
2차 대전시 지도. 독일이 빨강색 인가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찾은 패튼 장군의 묘...
4성 장군치고 조금은 썰렁한..
그러나 그가 이끌었던 미 3군 병사들중 룩셈버그 근처에서 전사한 5,076명의 병사와 실종된 371 병사들이 그의 앞에서 장군을 바라보니.. 장군으로썬 명예로운 일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단지 그렇게도 원하시던 싸우다가 전쟁터에서 전사하지 못하시고 차 사고로 돌아가신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패튼 장군과 함께 묻혀 있는 그의 병사들 이름 리스트 가 돌로 새겨져 기념탑 양쪽에 자리해 있다...
유태인 (유대교) 병사들의 묘는 십자가가 아닌 이런 모습의 묘..군..
멀리서 기념비를 향해서 한방..
1943년 北아프리카에서롬멜전차군단과전투 수상 : 미 수훈십자훈장
전세계 군대 역사에 대단한 지식을 가졌다던 그는 변호사 집안에서 자랐으면 육군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중에 한사람이였으며 기독교인이였으면서도 사람의 "환생"(영혼 재래설)을 믿었다고 한다..
그의 전생에 관한 발언은 영화 patton 과 그를 소재로 한 책들에서도 꼭 언급이 된다. 한 예로 그는 로마에서 자신이 전생에 그곳에서 싸웠다고 말하며 자신이 전생에 로마 군인이였다고 말했었다.

그는 또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독일에 타격을 가했고... 그런그를 미치광이라 여겨 나찌가 가장 두려워 했던 장군이였다 한다.
패튼 장군의 인간성 문제가 될수 있는 행동을 여러번해서 많은 권력자들과 아군에게 원성도 샀다고 한다.
그 예....
- 군병원 안에서 전쟁공포증으로 울고 있는 자신의 병사를 패튼장군이 보고 그 병사의 머리를 자신의 장갑으로 때리며 욕함,
이 보고서를 받은 패튼 장군의 보스 아이젠하워 장군은 패튼 장군에게 명령장을 본내게 된다. 명령장 내용 첫번째로 머리를 맞은 병사에게 사과를 하고, 두번째로 그 광경을 지커본 군인들에게 사과를 할거시며, 세번째로 7군 전체에 사과를 한다. 그러나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패튼 장군은 이 명령에 화가 나서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전화를 하지만 화가 많이난 아이젠하워 전화를 받지 않고 자신을 보좌하던 장군에게 말만 전하라고 하는데 내용은... 만약 패튼장군이 이 명령을 어긴다면, 패튼장군을 제대 시킬것이며 제대시에는 유럽에 오기전의 계급였던 2성 장군으로 제대 시킬것. 패튼 장군에게 가장 두려운것이 하나 있다면.. 군에서 떠나는것일게다. 결국 그는 이 명령을 수행 한다.
- 팬튼 장군의 바로 옆에 있던 나찌 부대에 자신의 사위가 포로로 잡혀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은 자신의 관할도 아니면서 자신의 병사 300명과 전차 15대를 보내 사위를 살리려 했다가 자신이 보낸 병사들 모두 전사하고 35명만 살아 돌아옴.
- 독일이 거의 전쟁에서 지고 있을 무력.. 패튼장군은 "독일이 항복하고 나면 연합국이던 러시아를 치자"고 한 말언.
이 발언 때문에 아이젠하워 장군은 패튼 장군을 3군 지휘관에서 해고 시키고 더이상 전장에 나갈수 없게 하기 위해15군(사무실에서 서류 근무만 하는 군)으로 발령을 냈다. 패튼 장군에겐 견디기 힘들 처벌이였기에 이 명령으로 귀가 한풀 죽었다(혹은 성질이 죽어 보였다)는 주변인들의 중언..
그외에도 여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거 같은데 지금 생각안남.

그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드러나는 발언들 특히 독설들을 하고 독불장군의 고집으로 명령을 어기거나 지독스럽게 독단적인 작전을 폄으로써 몇번씩이나 국사작전에서 해임을 당했습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최고의 지휘관중 한명으로 전세계으로 인정받은 장군이다.
그 이유는...
2차 대전동안 미육군 3군 지휘관으로써
가장 많은 적을 죽였으면(2차 대전 연합군이 죽인 적들 가운데 55%는 패튼 장군이 죽임)
또한 적의 도시를 가장 많이 정복하였으면 그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하려 다녀서 게솔린 공급이 더딜 정도 였으며 또 많은 포로를 잡아 들였다는것.


흑인 병사에게 Silver Star (은성 메달)을 달아주는 패튼 장군..
은성 메달이라면 군인으로써 받을수 있는 최고의 메달중에 3번째로 명예로운 메달이다.
이당시 흑인에게 이런한 메달을 받을수 있다는건 꿈도 꿀수 없는 일이지 않았을까.
패튼 장군 휼륭한면중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 당시 어떤 장군들은 흑인을 자신의 병사로 두기를 꺼려하기도 했단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패튼 장군은 오희려 흑인 병사를 원했다고 했다.
Patton, 2nd INFANTRY DIVISION
이 사진은 실제 패튼 장군의 사진인지 확신이 없지만.. 유명했던 패튼 장군의 개도 보인다.
이 개와 영국에서 만나서 어딜를 가던 모시고 다녔다 한다. 패튼 장군이 돌아가시고 패튼의 아내에게로 보내졌다 한다.
반지나 훈장등으로 몸에 치장하기를 좋아 했던 패튼 장군은..
자신의 권총도 특수 주문 제작 의뢰해서 만든것만 사용하였다 한다. .
그런 화려한 총 손잡이가 코끼리뿔 이라는 루머가 돌자 패튼 장군 한마디 하시길..
"나는 pimp가 아니다." 라고 함. 헐.. Pimp(창녀 등의 기둥서방;포주;뚜쟁이)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조지.S.패튼 장군의 명언들 (다른거 아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 전쟁에서 죽은자를 보며 슬퍼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이 살아남은것에 대해 기뻐하라
* 전차들은 가솔린이 있는 한 앞으로만 달려가기만 하면 돼. 가솔린이 떨어지면 전차에서 내려서 뛰어가! (조지 패튼 미국 장군)
* Rommel... you magnificent bastard, *I read your book*!
롬멜!! 이 대단한 호루자식아~~!! 니가쓴책 내가 다읽었다!! 푸하하하~~
(패튼의 유명한 적이였던 나찌 롬멜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30년대 무렵에 자신의 경험으로 '보병전술'이라는 책을 썼었습니다. 기동전에 관련된 책이기도 했는데, 히틀러가 롬멜을 기용한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라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 롬멜은 죽기 직전에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으로 전차전술이라는 책을 쓰려 했으나 그 전에 죽임을 당했었습니다. 1943년부터 미국에서는 번역을 하고 장교들에게 읽게 했습니다. )
*전투에 임하여 필요한 것이 세가지 있다. 용기, 용기, 그리고 또 용기.
* 군인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철저하고, 완전하고, 거만한 자신감이다.
* 만약 어떤 남자가 그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면, 나머지는 어디 있지?
* the Object of War is not to die for your Country it's to make the other bastard die for His
전쟁의 목표란 네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죽게하는 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편 놈이 그놈의 나라를 위해 죽게 하는 것이다.
* 용기는 두려움을 1분 더 지속시키는 것이다.
* 전쟁의 목적은 국가 자체의 파괴가 아닌 국가에 대한 것들에 대한 파괴이다.
* 무엇인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무 의미 없이 살아 있는것 보다 낫다.
* 어떤 놈이건 간에 전쟁에서 죽고 난 뒤에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하는 놈은 필요 없다. 적을 죽이고 그놈에게 조국을 위해 죽었노라고 하게 하라!!
*
셋중 누가 최고의 지휘관이냐는 질문은 위에 질문하신 분이 하신 두개의 질문처럼 쉽사리 답이 안 나는 질문입니다.
일단, 롬멜과 패튼, 몽고메리 3인의 공통된 특징은 성격이 모가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고 패튼과 몽고메리의 경우 언론플레이에 능숙한 장군이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패튼과 몽고메리의 경우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서유럽에서 계속 경쟁심리를 갖고 서로 경쟁했습니다.
롬멜vs패튼vs몽고메리
◈ 롬멜 (역전의 명장)
아는분들은 알지만 이 양반, 원래 보병신봉론자였고, 전차부대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전차 무용론에 찬동하던 인물입니다. 대폴란드전(1939년) 당시 히틀러 경호부대 지휘관이었고, 서부침공작전 직전에 제 7기갑사단장으로 배치되면서 기갑부대의 운용과 장점에 눈을뜨게 됩니다.
※ 잘 알려진 롬멜 회고록(혹은 롬멜 전사록)은 그의 아들이 자료를 제공해서 영국의 리델하트님이 전후 롬멜 사후에 집필한책이고, 롬멜의 저서로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은 1차대전 종전후 롬멜이 저술, 발간했던 "보병전술"이라는 책이었을 정도로 보병신봉론자 였습니다. 두권 모두 한국어로 번역 출간돼 있습니다. 보병전술은 좀 딱딱한 편이고 롬멜 전사록은 재미있게 읽을만합니다.
2차대전 초반 기갑부대의 운용이 독일 수뇌부에 보편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구데리안이나 만슈타인을 제외하면 기갑부대의 운용은 정도에서 벗어난 변칙적인 것이었고, 특히 대프랑스전이나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의 부대 운용은 당시에도, 현재에도 찬반양론이 엇갈립니다. 저 역시 롬멜의 부대운용은 비판적으로 보는편입니다.
그의 부대운용은 다분히 도박적이었고, 전술/전략의 정도에서 벗어난것으로 상대측의 오판이 없었다면 롬멜은 진작에 망자의 대열에 들어섰을겁니다.
그가 프랑스와 북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그의 지휘관으로서 자질이 우수하다기 보다는 상대쪽의 거듭된 오판과 지휘계통 붕괴에 기인합니다. 특히 그의 명성을 높이고 원수계급을 선사했던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의 경우 몽고메리 이전에 몇명의 지휘관이 경질당하면서 처칠로부터 신속한 승전보를 재촉받았기때문에 지휘관들이 거듭 무리수를 두어 롬멜에게 연패를 당했습니다.
같은 시기(롬멜이 유럽으로 복귀한 후) 독일 기갑부대의 대부였던 만슈타인이나 구데리안과도 기갑부대의 운용이나 부대배치에 대해 사사건건 대립했었던 이도저도 아닌 장군입니다.
◈ 패튼 (전차부대의 대명사)
미국쪽에서 패튼을 다룬 책들이 많고, 국내에도 패튼(한국명 패튼 대전차군단)이란 영화로 흥행에 성공해서 꽤 알려진 장군입니다. 2차대전때 북아프리카에서 초전을 치룬 이후 독일 최고사령부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기갑부대 운용에 정통한 연합군 장군으로 주목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몽고메리 원수와 지나치게 라이벌의식을 갖고 있어서 돌출행동을 자주 했고, 시칠리아에서 병사 학대사건으로 지휘관직에서 박탈당한 후 노르망디 작전에도 참가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아이젠하워 장군의 배려로 예전 부하였던 브래들리 장군 예하로 전선에 복귀해서 대전초기 독일의 전격전을 재현한 듯한 신속한 전선 돌파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연합군 부대중 최초로 라인강을 돌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