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아이키스유에서 진행 중인 ‘안정적인 사랑과 불 같은 사랑 중 어떤 것을 꿈꾸십니까?’라는 질문에 총 36%(127명)의 응답자들이 무난하고 평범한 사랑보다는 어렵더라도 불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고 답변했다. 많은 이들이 일생에 한번쯤은 나의 모든 것을 걸만한 대단한 연애사를 꿈꿀 텐데, 정열적이고 독특한 유전인자를 지니고 태어난 패션계 인사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회자될만한 열정적인 로맨스를 펼치는 일들이 많다. 한 잡지의 칼럼리스트는 불 같은 사랑을 하는 모험가가 되기엔 우린 너무 영리하기 때문에 지루한 이야기가 있는 연애를 하는 편이 낫다고 하기도 했다. 불 같은 사랑을 경험한 패션계 인사들, 그 끝은 과연 비극적이었을까?
Editor 김경은 I Design 임정택

이사벨라 블로의 장례식에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를 쓰고 나타난 알렉산더 맥퀸
생전에 모자를 쓰고 찍은 이사벨라 블로의 화보들
▲ 지난 5월 급사한 영국의 대표적인 패션 아이콘 이사벨라 블로. 바닷가재나 사슴뿔 등 기괴한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던 그녀는 패션 모델이자 디자이너 겸 패션지 에디터이기도 했다. 미국 보그지 패션 에디터였던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한 적도 있는 그녀는 알렉산더 맥퀸과 소피 달, 후세인 살라얀과 스텔라 테넌트 등 세계적인 패션 피플을 발견하고 성장시켜주기도 했다. 모자를 쓰지 않고는 절대 집 밖에 나간 적이 없고, 립스틱을 바르지 않은 부하 직원에겐 고함을 질러대던 그녀. 과연 이렇게 열정적으로 삶을 살다간 여인에게 일생 일대의 연애 사건은 없었을까?
1998년 한 유명 인사사의 결혼식에서 변호사 출신의 미술품 딜러인 데트마 블로는 만난 그녀는 만난 지 16일만에 약혼하고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 부부는 2004년 결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사벨라는 이 일을 두고 ‘우리는 함께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상한 과일 같다.’고 고백했다. 그 후 골동품 수리업자인 남자와 연애를 하며 연인의 불안정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할머니의 그림을 팔아 그에게 1만 5천 파운드를 쥐어주었지만 7개월 후 이들은 결별했고 이사벨라는 신경쇠약에 걸려 버렸다. 이사벨라 블로는 7개월 간의 연애사를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부분이라고 했다는데, 패션엔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태어났지만 이사벨라의 모자를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비운의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에디 세즈윅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
▲ 비운의 패션 아이콘 에디 세즈윅. 그녀가 비운의 스타가 된 데에는 남자들이 한 몫 단단히 했다. 앤디 워홀의 단편 영화에 수 차례 출연하며 그의 뮤즈로 The Factory의 일원이 되었다. 그녀가 단편 영화들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되자 사람들은 에디에게 앤디 워홀을 떠나 진짜 배우가 되어보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그 중 밥 딜런의 오른팔로 알려진 밥 뉴워스가 있었는데, 에디 세즈윅은 밥 딜런과 가까워지고 그는 그녀에게 영감을 얻어 여러 노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들의 관계는 밥 딜런이 그녀 몰래 비밀리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에디가 알아채면서 끝이 났고 그 후 그의 오른팔이었던 밥 뉴워스와 만나기도 한다. 에디는 아이를 낙태시키기도 했는데, 밥 딜런의 아이라고 주장했지만 밥 딜런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에디 세즈윅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의사들은 그녀를 정신 병원에 보냈는데, 에디 세즈윅의 아이가 마약 중독이 되었을 수도 있다며 아이를 낙태시키게 되었다. 그녀는 재활센터에서 전기충격요법을 20차례 정도 받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마이클 포스트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어느 날은 그녀가 산타바바라 박물관의 패션쇼에 갔는데 한 관객이 그녀를 보고 헤로인 중독자라고 공격하여 마이클은 에디를 집으로 데리고 와 처방된 약을 주고 두 사람은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그녀는 28세의 나이로 결국 사망했다.

슈퍼 모델 하이디 클룸과 흑인 가수 씰의 가족
▲ 패션계에 빼놓을 수 없는 커플은 모델 하이디 클룸과 씰일 것이다. 이들은 피플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플 1위로 뽑았을 만큼 유명한 커플인데, 슈퍼 모델 출신의 하이디 클룸과 얼굴에 깊은 상처가 있는 흑인 가수 씰과의 만남은 언뜻 보기엔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커플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하이디 클룸에게 씰은 빛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패션계에서의 대단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하이디 클룸의 과거 사랑은 그렇지 못했다. 첫 결혼이 5년 만에 실패로 끝나고 세계적인 갑부 플라비오 브리아토레와 사랑에 빠졌지만, 대단한 바람둥이였던 그와의 사랑도 오래 가진 못했다. 하이디는 플라비오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플라비오는 자신의 아이임을 부정하고 하이디 클룸과 아이는 그에게 버려졌다. 이 때 씰과 하이디 클룸이 만나게 되고, 씰은 뱃 속의 아이까지도 감싸주며 아빠처럼 하이디 클룸과 그녀의 딸 레니의 곁을 지켜준다.
씰은 할리우드에서도 인간성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에게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학대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이디 클룸과 레니를 아껴줄 수 있었고, 그 둘 사이에서도 아이를 낳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이 러브스토리를 알기 전 두 사람의 사진을 봤을 때 굉장히 독특한 화보란 생각을 하게 되었었는데, 이 둘이 영원한 해피 엔드로 기억되는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란다.
제인 버킨과 세르쥬 갱스부르의 다정한 한 때
▲ 샹송 가수 겸 배우, 그리고 전직 모델인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제인 버킨. 1984년 에르메스의 5대손인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와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다가 뒤마가 물건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버킨의 가방을 들여다 본 후 모든 소지품을 다 넣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에르메스 버킨 백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인 버킨은 19세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 ‘늑대와 함께 춤을’ 등의 영화 음악을 담당했던 존 배리와 결혼을 했지만 영화 작업 중 세르쥬 갱스부르를 만나 배리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결국 이혼하게 된다. 본래 갱스부르는 브리짓 바르도와 연인 관계였지만 이들의 관계를 청산하고 제인 버킨과의 사이에서 샤를롯트 갱스부르가 태어난다. 세르쥬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이 함께 제작하여 발매된 음반은 외설 처분과 함께 몇몇 국가에서는 판매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지만 이런 소동들로 이 커플의 음악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갱스부르의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1980년 결국 파경을 맞게 되었고 제인 버킨은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자크 달리온과 세번째 결혼을 한다. 하지만 갱스부르의 제의로 제인 버킨과 갱스부르는 음악적 재결합을 하게 된다. 갱스부르는 1991년 과도한 흡연과 음주로 심장 이상을 일으키다 사망하고 제인 버킨은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향수로 가득한 음반을 내며 둘 사이의 사랑을 세상에 영원히 남긴다. 패션잡지, 스타일 잡지, 여성, 남성 잡지의 메카 ikissyo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