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찬란히 빛을 발할 때 그 빛의 찬란함을,
그 빛이 우리의 앞길을 비추어줌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태양이 그 힘을 잃고 다시 한 번 그 힘을 채우려 세상의 반대편으로 가버리고 나면
그제 서야 자신의 빛을 은은히 비추어 오는 이가 있습니다.
그이의 빛은 빛 한줄기 없는 밤에 우리가 행여 실족하지 않도록
환히 비춰주는 고마움이련만
나는 오늘도 그이 앞을 무심히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한결 같이 그곳에 서있습니다.
늘 그이는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빛을 발해 우리에게 빛을 전해줍니다.
아무런 조건도 바라지 않고
때론 연인들이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며 서로의 눈을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빛을.
때론 친구들의 우정을 다짐하며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빛을.
마음이 허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나를 감싸주는 그 따뜻한 주홍빛 빛을 늘 내려주며 미소 짓듯 서 있는 게 그이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그 자리에 서있는 가로등을 모른 채 하며 지나갑니다.
그를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지나쳐 버립니다.
그 대가 일 까여?
나도 가로등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
자 대망의 1등은~~? 11조~!
우와와와~~!!! 11조 아이들의 우렁찬 함성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지도교사였던 박정철은 그야말로
나는 듯이 뛰어나가 1등 상품박스를 받아 연신 흔들며 자기 조의 우승을 자축했고 상품을 갖고 아이들에게
달려왔다. 그런 신난 모습의 박정철은 아이들에게 더 즐거움 이었고. 11조 아이들은 모두 어깨동무를 한 채
기쁨과 환호의 괴성을 온몸으로 지르고 있었다.
" 형 어디 안 좋아? 머 그렇게 뚱해 있어? "
" 어? 아냐 나도 좋지. "
" 하하 형도 잘하더라. 빼더니 머 숭그리 당당 죽였어~! 아주! "
" 어?.. 어... "
천로 역정 다음코스는 바로 조별 장기자랑 이었고 장기자랑에서 촌극분야를 맡은 시우의 11조는 각가지 개그
프로그램 패러디를 하기로 했다. 시우가 맡은 개그맨 김정렬의 패러디인 개다리 춤을 추며 숭그리당당
숭당당등은 패러디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다.
사실 시우는 그 촌극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그냥 멍한 듯이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자 무대 위에
나가서 연습한대로 그대로 하고 들어왔다. 200명이 넘는 시선도, 그 이후 들려온 웃음소리와 환호도, 박정철의
칭찬마저도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줄이 걸린 마리오네트 인형인 마냥 그렇게 피동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들어왔다. 시우의 신경은 오직 한곳에 집중해 있었다.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의문점은 평소 같았으면 남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했다는 것에 그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를
시우를 다른 생각을 못하게 했다.
한 가지 일이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고 다른 일은 떠오르지 않게 했다. 바로 어제 시아와의
일이였다. 자신이 왜 그때 시아에게서 날개를 보았는지. 그때 왜 그렇게 심장이 뛰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였다. 다시 보았을 때 날개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날개를 찾으려 시아를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시아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시우는 시선을 땅에 두어야만 했었다. 영문도 모른 체 얼굴이
상기돼 그것을 들킬까봐 시우는 고개를 들 수 가 없었다.
아직 또래 중에서는 남자친구들이 많을 시기였다. 하지만 시우는 친구가 없었고 거기다가 시우의 주변
친구라고는 여자인 은희밖에 없었다. 하지만 친구 은희 와는 다른 의미로 자신에게 훌쩍 다가온 시아의
존재는 시우에게 고민을 던져 주었다. 자신이 시아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약간은 이질적인 그런 존재감의 사람에 시우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다시 한 번 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동생들과 함께 조의 1등을 기뻐하고 있었다.
어깨까지 닿는 결 좋은 단발머리 언제나 눈웃음을 머금고 있는 긴 눈. 그 눈을 볼 때마다. 그 입가에 걸린
웃음을 볼 때마다 시우는 왠지 설레였다.그렇게 멍하니 시우는 시아를 바라보았다.
박정철은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다가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는 아이들을 불러 주목시켰다. 수련회
시간이 마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맞추어진 버스시간까지 아이들을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박정철은 이번 수련회가 마지막이었다. 내년부터는 중 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3박 4일동안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 하고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는 서로 도우며 함께 어려운
프로그램들을 해쳐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박정철은 좋았다. 비록 말썽을 많이 부리기도 해 때론
꼬마 악마들 같이 변하기도 하지만 이 꼬마 악마들은 조금만 정을 주어도 이내 자신을 선생님하며 부르며
따르는 순수한 녀석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박정철은 사랑했다. 가장 어려운 시간이 바로 이 시간 이었다.
함께 같은 공간과 시간에 머물며 3박 4일 동안을 가족과 같이 가깝게 지내던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비록 수련회가 페하고 집에 내려가서도 교회에서 보겠지 만은 왠지 함께했던 시간이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 자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그래 너희들 모두 재미있었지? "
" 네~~!!"
" 역시 우리 11조 답 게 대답도 우렁차구나. “
박정철은 이미 정이 들어버린 단어 11조에 잠깐 감정이 울컥해서. 말을 잠시 한 템포 쉬었다가 이내
이었다.
“ 그래 모두들 수고했고. 특히 우리 시우하고 시아가 수고를 많이 했지. 자 둘 다 일어나봐."
박정철의 호명을 받은 시우와 시아는 나란히 박정철의 좌우 옆에 섰다.
" 그래. 뭐 할 말 없니? “
하지만 시우와 시아는 앞에 나서서 무언가 말을 하기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얼굴만 붉혔고. 이내
박정철은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하하 녀석들. 수줍어 하기는 자 모두들 박수~! "
둘 다 말없이 가만히 서있자 박정철은 아이들의 박수를 유도했고.
아이들과 잠시 담소를 나눈 후 버스에 탈 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말하고는 교회 수련회답게 감사 기도로
마무리를 했다.
이후 진행자의 지도에 따라 버스승차장으로 이동한 아이들은 자신이 배정받은 버스에 탔고 수련회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들과 함께 했던 프로그램들에 대한 이야기로 버스 안은 시끌 시끌 해졌다. 그런 아이들과
다르게 시우는 아직도 무언가 골똘히 생각 중 이었다.
취이익~
버스 문에서 나는 바람 빠지는 듯 한 소리가 들리고 시우는 버스에서 내렸다. 집이 있는 가리봉동까지 교회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온 것이었다. 시우의 집 근처 정류장은 많은 버스 노선들이 겹치는 곳이었다. 시우는 항상
사람이 많은 버스 정류장에서 신호등을 건너 자신의 집이 있는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이었다. 시우의 집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도로 주변 가에 난 큰 대로와 골목길이 있었다.
대로로 가면 직선코스라 집에 빨리 갈수 있지만 시우는 그 대로를 좋아하지 않았다. 차들이 바로 옆에서
쌩쌩 거리며 달려 겁이 많은 시우에게 무서웠을 뿐만 아니라 차도에 비해 보도는 길이 좁아 으레 사람들과
부딪히기 일쑤였다. 수줍음이 많아 늘 숫기 없는 시우에게는 그 길 보다는 골목길로 가는 게 성격에도 맞을
뿐더러 골목길에 여기저기 심어져있는 은행나무와 가로등을 시우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저녁이면 가로등들이
환하게 켜져 자신의 작은 몸을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이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나 시우는 집에서 놀다가도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서 집 바로 뒤편에 있는 큰 은행나무 뒤에 서있는 가로등 앞 벤치에 앉아 달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는 것을 즐기고는 했다. 그냥 멍하니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고.
그럴 때면 언제나 은희가 나와 주었다. 시우는 이야기책을 많이 좋아했다. 돈키호테와 백설공주 등은 언제나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안 시우의 아버지는 그에 생일 때면 언제나 장난감이나
다른 것 보다 이야기책을 한권씩 사주곤 했던 것이다. 시우는 그 이야기들을 언제나 은희 에게 하고는 했다.
은희는 시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으레 좀 더 과장되게 말할 때가 있으면 은희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웃으며 그 얘기들을 들어주고는 했다. 어쩌면 은희가 얌전한 시간은 시우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뿐
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은희는 학급에서도 반장이었고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답답한 듯 항상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아이였다.
큰 키에 바니 인형같이 큰 눈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는 그녀의 건강미를 돋보이게 해주었고. 성장이 빠른지
중학생 교복을 입혀도 어울릴 듯싶었다. 학교에서도 참 인기가 많았다. 학우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의 부모님들까지 은희를 모두 좋아했다. 그런 은희는 시우의 자랑이었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친구라는
건 비록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도 은희 하나가 다른 친구 열 명 이상의 역할을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이다.
골목길을 돌아 천천히 터벅거리며 집 앞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다. 겨울이라 해는 벌써 저물어 하늘은
캄캄했지만 가로등의 불빛은 역시 환했다. 왠지 시우는 집 뒤편에 있는 은행나무가보고 싶어졌다.
학교를 다녀와도 늘 그 은행나무에게 인사를 잊지 않는 시우이었기 때문 이었다 종종걸음으로 그 나무 앞에
도달하자 낯 설은 인영 하나가 보였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시우를 보자마자 일어섰다. 은희였다.
"어? 은희야. 우와 너 오는 줄 알고 여기서 기다린 거야?!"
"..................."
이상했다. 의례 구박을 들을 줄 알았던 시우는 은희가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아 고개만 숙이고 있자
왠지 이상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 정시우! "
" 어?! 어."
" 집에는 갔다 왔어? "
" 아니. 아직."
" 그래 그럼 빨리 갔다 와.. 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
" 어? 지금 몇 시 인데..? 너무 늦었는데? "
시우가 변명하듯 중얼거리자 은희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큰 눈으로 시우를 노려보았고. 시우는 그 기세에 놀라
주눅이 들어 알았어. 하고 대답하다가 문득 은희의 눈가에 눈물이 말라붙은 자국을 보았다. 이상했다. 은희는
웬만한 일이 아니면 울지 않았다.
여태껏 시우는 은희가 우는 것을 단 한번 보았다. 시우와 은희가 학교에서 하교 하는 길에 공동으로 같이 사서
같이 키운 병아리 은희와 시우의 각각 앞 자를 딴 시은이가. 시름시름 않다가 죽었을 때를 제외하곤 시우는
은희가 울었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에서 어머니한테 혼날 때에도 있는 힘을 다해 우는 은희의 동생
미소와는 다르게 은희는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 뭘 봐?! 빨리 갔다 오라니깐!! "
" 어.? 응. "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시우는 허겁지겁 집에 들어가 다녀왔습니다~! 가 무섭게 다시
은희 앞으로 달려 나왔다.
" 뭐 해? 앉아. "
" 어? 어.. "
시우는 조심스레 은희가 앉은 벤치에 은희와 조금 거리를 멀리 두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은희는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시우를 노려보듯 눈을 치켜들었다.
" 헉?! 왜.. 왜 그래? 은희야.."
" 내가 무섭냐?! 이리 가까이 앉아."
왠지 모를 무서운 분위기의 은희의 그 표정을 보고 시우는 도리도리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마지 못한 듯 은희의
바로 옆에 앉았다. 잠깐 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침을 꼴깍 삼키던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가
크게 나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다가 시우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려했다. 고민하던 중에 시우는 이번 수련회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과
시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려다가 문득 은희의 얼굴에 나있던 눈물 자국을 기억하고 물었다.
" 은희야 너 근데 혹시 울었..? "
시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은희가 말을 자르며 말한다.
" 정시우. "
" 어? "
" 너 가는 거 좋아? "
" 어? 가는 거? "
" 너 이사 가는 거 말이야."
" 이사 가는 거? 머 글쎄. 그냥 아버지가 간다 그러니까 가면 내방도 생기고... "
" 넌? 그러니까! 가면 좋다는 예기야? "
" 머 나쁠 건 없자나? "
그 예기를 듣자 은희의 어깨가 약간 움찔거린다. 땅을 잠시 바라보더니.이내 시우를 쳐다보며 물었다.
" 거기 가면 나 못보는대도? "
시우의 뇌리에서 무언가 종소리가 한번 울렸다.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단순히 이사를
간다고만 생각했지. 지금 있는 환경이 바뀐다고는 생각을 못한것 이었다. 자신에게 유일한 친구인
은희를 못 본다는 것을, 그것은 은희를 잃는 다는 것을 내포할수 있음을.
그 충격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은희는 왠지 울음이 담긴 목소리로 시우에게 쏘아 붙였다.
" 그레 이 바보야~! 니 방생겨서 좋으면 거기 가버려~! 흥~! 너 같은 밥통이 나 없으면 얼마나 놀림당할지 뻔하다~! 너~!! 너 같은 밥통 어서 꺼저버져리라고! "
분을 못 이긴 듯 어깨를 들썩 거리며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던 은희는 집으로 도망치듯 뛰어 들어갔다.
멍하니 충격에 휩싸여 자신의 뒷 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시우를 남겨두고.
그런 시우의 몸을 가로등은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