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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서상원 |2007.11.28 10:14
조회 121 |추천 0

수원에 나부자집 딸 나혜석은 일본 유학을 하고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던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 대표적인 인물로, 그림과 글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다가 일본에서 변호사가 되어 귀국한 김우영과 결혼하였다.
4남매를 낳으며 변호사로, 외교관으로, 아내로, 화가로, 며느리로 껑충껑충 뛰는 생활을 하다가 꿈에도 그리던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8개월 머무는 동안에 비극적인 사랑이 싹트게 됐다고 한다.
남편은 독일에 체류 중이고 나혜석 혼자 파리에 있을 때, 최린이라는 기미독립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의 한사람으로 존경받는 인물과 나혜석은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남편과 이혼은 안할래요" 하면서,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고, 이것저것 다 맛보고 난 다음에 다시 뒷걸음치는 것이다.
우리도 이것저것 다 맛보고 고정해지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고 자신의 본능대로 따랐을 뿐이라며 남편과 이혼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남편이 이혼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고소한다고 협박하여 끝내는 3년만에 이혼을 당했다.
나혜석은 "조선 남성은 이상하다. 자기네들은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한다. 어이한 미개한 부도덕이냐."고 따졌지만 그는 응징을 받아야만 했다.
화가,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지위를 모두 다 잃고 최고에서 최하로, 정조를 더럽힌 무식한 여자로 총명하고 천재라던 그는 바보 천치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린은 나혜석과 관계가 드러난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 지도층 인사였고 별 탈없이 지냈다.
여성과 남성의 불공평한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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