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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우당 이회영과 서간도

장준우 |2007.12.02 20:24
조회 78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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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 국치/을사 늑약

한일 합방은 양국이 원해서 결정한 것임을 의미하는 일본측의 기술이며, 우리나라는 경술 국치로 해야한다. 당시, 강탈과 항거만이 있었으므로 경술 국치, 을사 늑약이 올바른 표현.

 

압록강

다행스럽게도 현재 위화도까지 우리나라의 영토.

 

서간도 - 노블리제 오블리제의 활동지
북간도와 연해주는 이미 한국인들이 살던 곳이지만, 서간도는 을사늑약 이후에 개척된 곳이다. 당시 서간도는 구한말의 가장 큰 혜택을 입었던, 유림들과 많은 고관과 부자들이 철처한 항일 무장 투쟁과 구국운동에 헌신하여 도덕적 의무를 절대로 회피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구한말의 의병과 서간도 개척자들은 99칸짜리의 안락을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고난의 길을 떠난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배출한 조선왕조의 문화속에서 양반들은 기본적으로 타락한 이들만은 아니었다. 조선왕조가 없어진 일에 대해서 복권과 새국가의 탄생의 고민을 서간도에서 했다.

 

서간도 개척의 주역

그 대표적 인물이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용이었다. 모두 당대 최고의 거부와 안동 99칸짜리 대궐 임청각의 주인이었다. 우리 나라 초대 부통령 이시영의 형이 바로 이회영이다. 이들은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자진하여 함께 독립운동을 하려는 노비들에게 동포라 칭하고 모두 서간도로 갔다.

 

신흥무관학교
이회영과 이상용은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었으며, 이후 무장 투쟁의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이회영은 아나키스트의 수장이 되어 암살과 공작을 통한 독립운동을 한다. 이 신흥 무관학교를 비롯한 이회영의 개척지는 서간도 최초의 무장 운동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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