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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재평가 - 기니까 관심있는 사람들만 읽으세요.

지영준 |2007.12.08 10:51
조회 67 |추천 2

*초등학교 떄 맞춘법 쓰기 시간에 졸아서 좀 많이 틀릴 겁니다.

 

2002 년 대선 때, 국민들의 성금을 자기고 대통령이 된 노무현.

2007년 마지막 달, 마지막 임기 막년의 대한 민국 대통령 노무현.

이런 일도 많고 저런 일도 많은 이번 참여 정부.

정말 임기 마지막 노무현에 대한 평가를 해보 겠습니다.

임기 초에 말 실수: 노무현 대통령은 검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제 막 가자는 거지요?” 라고 한 마디가 화씨가 되어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많은 보수 세력들과 언론들은 대통령의 책임을 진 사람이 가볍게 말을 했다고 쏘아 부쳤다. 허나 정말 대통령이란 사람은 중세 시대 왕처럼 품위를 지켜야 하는 것 일까? 민주주의가 내세운 국민의 대표가 대통령이지 채통과 구시대적 품위를 지키는 왕족이 아니다. 오히려 막말 한 것은 검사 쪽이였고, 단지 검사들이 팬시하고 유창한 방법으로 대통령의 지위에 대든 것 이였다. 막말도 아니 였다, 오히려 씨가 있는 조크였고,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대통령을 막간 인간으로 멸시 하지 말란 경고 였다. 하지만 보수 언론들은 과장을 해서 대통령을 바보 취급해 버렸다.

정치적 성과: 수구 언론 플레이을 능동적으로 대처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 될 수 있겠다. 또한 여당의 힘이 분리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결국 차떼기 당의 생존을 허락했다. 또한, 초기 국민 대다수의 지지에도 불구 하고 상생을 위해서 극진 적인 개혁을 시도 하지 않았다. 도덕적인 상생과 균형을 위해서 수구 세력과의 타협 점을 찾이려는 시도에서 개혁파 성향의 국민들에게 신리를 잃었으면, 오히려 그 계기로 홀로 서야 했다. 즉 너무나 도덕적인 행위가 정치세계의 실질적 사실과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비난을 샀다.  

대외적 성과: 노무현 대통령은 외국으로 출장을 많이 다녀온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임기초에 세계 일주를 하면서 이것 저것 국제적 교류에 압장 섰고, 국민들은 그런대통령을 반겼다. 몇몇 노 대통령의 비지지자들도, “노무현은 밖에 나가면 잘 하고, 집안일은 별로…” 라고 식의 의견을 냈다. 임기 중 민주당의 배신과 차떼기 당의 국민에 대한 배신으로 탄핵위기를 맞이 했지만, 국민 70%가 탄핵 반대의 입장과 헌법 재판소의 결정으로 위기를 모면 했다. 임기 중반에 이라크 미국 침공에 자이툰 부대(평화적 재건 부대)를 파견 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대한 민국의 스폿 라이트를 더 했다. 허나 김선일씨 납치 사건등에 대해서는 조금 미흡한 면으로 구출을 성사 시키지 못 했한 것이 흠집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 칠 FTA, 한, 미 FTA, 를 성사 시킴으로써 지구화 되는 국제 시장에 대한 대한민국의 힘을 가했고, 구시대적 농산업을 국제화 하기 위한 첫 걸음을 달았다. 또한 6자 회담을 통화 평화적 방법으로 북한 핵 위기를 모면 했고, 노무현 정부는 반기문 전 외교통사부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의 역임의 성과를 올렸다. 임기 막바지에는 북한 정상회담을 성사 시킴으로써 북한과의 교류를 활성화 시켰다. 대미 관계도 이전 정부들과는 달리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으나 건강한 관계를 향한 지표를 세웠다.

경제적 성과: 김대중 대통령의 내수 경제 부진을 위해서 신용카드를 국민들에게 권장함으로써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으나,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그리고 부작용들이 점점 악화되어서 내수 경제를 부진을 타계하지 못했다, 그리고 참여 정부가 그 것을 해결 해야 했다. 1930년대 미국의 대 불황이 절정이였던 시기, 미합중국 대통령 FDR은 대대적 토목 건설을 일으켜서 경제적 불황을 타계하기 위한 뉴딜 정책을 추친한다. 뉴딜 정책은 실패로 끝났지만, 많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줬고, 미래에 국제적 인플레이션에 대한 블루 프린트를 제공 했다. 다시 대한민국 문제로 돌아와서, 노무현 정부는 또한 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문제도 큰 골치 덩어리 였다. 왜냐하면 노무현 정부가 약속한 지방과 수도권의 상생은 수도권에 밀집된 고가 부동산과는 거리가 멀었기 떄문이다. 또한 덕분에 교육문제도 강남 아파트도 평행을 이루었고, 정부는 이 모든 것을 해결 하기 위한 해답책이 필요 했다. 노무현 참여 정부는 그런 경제적 문제를 위해서 새로운 방안의 계획 했다. 수도 이전이 그 해답이 였다. 하지만 야당과 수구 세력, 보수 언론들의 성공적(?)인 방해 해위의 의하여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정책은 축소 되어야 헀고, 행정 수도 이전이라는 허수아비 정책으로 일단락 되었다. 즉 정부에 수도권 부동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다면, 오히려 이명박 전 서울 시장 한테 묻는 것이 더 타당 할 수 다고 볼 수 있겠다. 그후 세계화 되는 시장에 대한민국의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 외국 국가들과 FTA를 성사 시킴으로써 대외적 경제적 교류를 촉진 했다. 청년 실업과 비고용자들의 고용을 위해서 비정규직 정책을 실시 했다. 어느 정도 성과는 이루어 졌지만, 몇몇 대기업의 횡포에 의해서 부작용을 낳았다.

군사적 평가: 개인적으로 정말 다이나믹한 성장을 보여 줬다. 아직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5세대급 흑표 전차와 k21 한국형 차기보병전투차량의 개발 완료, 외국에서는 소형 항공 모함이라 할 수 있는 상륙한 독도함의 취역, 이지스 함대 편성, 공군 정보력 강화, 자이툰, 동명 부대가 보여준 대한 민국 국군의 다른 선진국들과 나란히 한 군사력.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대한 민국 군사력, 병사들을 위한 군대 계편. 2020계혁 추진 등 정말 사람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정말 군사적인 면에서 큰 성장을 이루웠습니다. 즉 노무현이 빨갱이 정권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왜 대한 민국 국방을 참여 정부는 왜 강화 시켰겠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만약 국민들이 대입제도에 대해서, 교육 문제에 대해서, 양극화에 대해서, 유가 상승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 임기중 일어나서 책임을 노무현 한테 묻고 싶다면, 위에 나열된 성과도 평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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