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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 디자이너

이효선 |2007.12.09 00:29
조회 54 |추천 0


[테마파크 디자이너의 역할]
테마파크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일상에서 벗어난 낯선 공간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테마파크는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가상의 공간이다. 이 가상의 공간이 그 공간 안에서만이라도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테마파크 디자이너는 인간의 욕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그러나 테마파크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은 롤러코스터같은 놀이기구부터 매표소까지, 공원 상점의 인형에서 화장실의 심볼까지 테마파크 내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

그런가 하면 행사를 위한 지원업무, 공원을 꾸미고 설치하는 데코레이션 업무, 조형물의 설치, 건물 도색, 유지보수까지 그야말로 공원 내에 디자이너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파크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테마파크 디자이너가 되려면]
테마파크 디자이너가 되려면 상상력과 창의력, 아이디어가 뛰어나야 한다.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다.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며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한 외국어 실력도 필수다. 건물 외관을 비롯한 전체의 평면도와 조감도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하고 일러스트레이션, 무대 디자인 등에 대한 지식과 견문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게 좋다.
전공에 특별한 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디자인 전공자들이 가장 많으며 건축 전공자들도 적지 않다. 테마파크 디자이너는 테마파크나 전문기획사에서 일할 수 있다. 요즘에는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다가 테마파크 쪽에 흥미를 느껴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테마파크 디자이너의 현황 및 전망]
현재 국내에서 100여명의 테마파크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다. 테마파크에 입사하면 대기업 사원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경력직 프리랜서로 일하면 이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국내에서는 테마파크의 수요에 비해 디자이너들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아직 국내에는 테마파크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전문 교육기관이 없다. 각 분야의 디자이너 중 테마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실무를 통해 테마파크 디자인을 익히고 있다. 국내 테마파크 산업은 이제 시작 단계로 미래의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테마파크 디자이너] 니나 안

꿈을 디자인하는 테마파크 디자이너 니나 안(44•한국 이름 안영옥).’ 테마파크란 롯데월드나 디즈니랜드처럼 하나의 주제와 이야기를 중심으로 꾸며진 놀이동산을 말한다. 그런 놀이동산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바로 테마파크 디자이너.

니나 안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뚱보에다 고집쟁이였다. 원하는 것은 반드시 가져야 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욕심이 많아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든지 남보다 앞서려고 했어요. 노래도 잘해 KBS어린이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지요.”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매우 좋아했다.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고 식구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뽷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해 핀잔도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항상 편을 들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분은 어머니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종종 언니들과 나를 불러놓고 펄 벅, 나이팅게일 등 훌륭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어요. 그리고는 ‘이상을 높게 세우고 세상 사람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하는 것도 아주 멋진 인생이란다’ 라는 말을 항상 잊지 않으셨죠. 이때마다 나는 성공한 여성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영어 공부에 푹 빠져버렸다. 동네에 미국인 신부 기숙사가 있었는데 그는 어느날 불쑥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처음 보는 조그만 아이가 찾아와 영어를 배우겠다고 말하는 것이 귀여웠는지 신부님은 반갑게 맞아주었고 엉성한 영어로 대화를 몇마디 나눈 끝에 신부님과 친구가 되었다. 그로부터 매일 찾아가 영어공부를 한 덕분에 빠른 속도로 영어를 익혔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항공사의 여승무원인 스튜어디스가 되었다. 그리고 일하는 틈틈이 공부하여 3년 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인생의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또 여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이 땅에서 할 수 없는 일들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한 거죠.”

샌프란시스코대학.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의 미술대학에서 니나 안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열심히 공부하는 미국 학생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아무리 영어를 잘했다 하더라도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를 듣고 배운 사람들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지요. 토론과 발표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방식도 익숙하지 않았죠. 나는 잠자고 먹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했어요. 그러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지기도 했지요.”

그러나 니나 안은 힘이 들고 지칠 때마다 마음을 더욱 굳게 다졌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학교 생활을 하고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신문사 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돈도 시간도 부족해 남들보다 3년 늦은 7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최고의 교수들에게 인테리어에 대한 지식과 기능을 배웠다.

그러나 디자이너 분야의 취직은 그리 쉽지 않았다. 변호사 사무실과 중국 식당 종업원 등을 거치며 고생을 더 한 뒤에야 비로소 디자이너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

워커그룹. 백화점과 쇼핑몰 등을 전문으로 설계 디자인하는 회사 가운데 세계 최대, 최고인 회사였다. 한국인은 니나 안 한사람뿐.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최선을 다해 일했다. 처음 맡은 일은 디즈니랜드의 유니버설스튜디오 테마파크 디자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창의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미국 디자이너들을 앞설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노력’과 ‘성실’뿐이었어요. 창의력에서 뒤지는 것을 따라잡기 위해 남보다 몇 배나 일을 했지요. 그리고 건축법규를 잘 몰라 책을 뒤지는 미국 디자이너를 따라잡기 위해 건축 법규집을 달달 외웠어요. 섬세한 도면을 그리는 데만큼은 내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지요.”

경험과 자신감을 쌓아온 니나 안은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에 독립회사를 차렸다. “거래처에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 있어도 정식 통로가 아니면 연락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을 통해 부탁하는 일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정당하게 계약을 따냈지요. 그러자 나와 회사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날 한국에서도 일할 기회가 왔다. 93년 대전엑스포에서 롯데월드 전시관 설치를 맡은 것이다. 전시관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 일을 계기로 롯데월드 디자인을 맡게 됐다. 롯데월드의 혜성특급, 환상의 오디세이, 정글어드벤처 등은 니나 안이 디자인한 것들이다.

니나 안은 요즘 ‘더불어 사는 삶’을 생각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자신의 사랑을 이웃과 친구, 모르는 누군가에게 나눠 주고 싶은 것이다. 먼 훗날 죽기 전 ‘난 세상을 떳떳하게 살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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