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말하다:
마음이 변하면 기억도 변해야 해 '청춘의 덫'>
이명박 후보의 독주로 뻔한 판이 되어가던 대선정국이
이회창 전총재의 출마선언으로 다시금 흥미진진해진 이후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새삼스럽게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한때 전도연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여배우로 자리매김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최정상급 미모를 보여주는 심은하다.
활동했던 10여년간, 쉬지 않고 작품활동에 임했음에도
그녀의 출연작은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대부분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었다.
청순미인의 새로운 돌풍을 몰고온
데뷔작 '마지막 승부'를 비롯해
'이대로 배우생활 끝내겠구나' 싶었던 온갖 스캔들을
섬뜩한 눈빛연기 하나로 잠재워버린 'M',
90년대 X세대 아이콘으로 급상승했던 고소영과의
미모와 연기력 대결에서 항상 우위를 점했던 '숙희' 등,
그녀는 출연작마다 연기자로서의 기량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쉼없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보기드문 배우였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TV출연작으로는 마지막이 되었던 '청춘의 덫'은
방송가에서 까다롭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악명높았던
김수현작가마저 후속작마다 심은하를 찾을 만큼
절정의 연기력과 미모를 보여주었었다.
7년을 헌신했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낳았던 딸아이마저 사고로 죽자
복수심에 남자의 약혼녀 오빠와 결혼하는 비정상적 스토리를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소화하던 그녀의 증오연기는
한때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이종원과의 불화설이 나돌 만큼
리얼했었다.
허나
내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그녀의 연기는
땀구멍 하나하나마다
분노와 증오의 기운을 뿜어내던 복수의 대목이 아니라
표연히 변심한 애인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자식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감내하던 슬픔의 지점에 있었다.
7년도 더된 드라마라 분명치는 않지만
한참을 남자에게 애걸하며 매달리다가
결국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신음하듯 자조적으로 묻던 이런 대사가 있었다.
"마음이 변하면 좋았던 기억도 변하는 거니..."
남자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마음이 변하면 좋았던 기억도 함께 변하는 게
세상을 사는 데는 더 낫겠다 싶다.
마음이 변한 이후
기억만 그대로라면
지나간 추억에 대한 상실감을 곱씹으며
보내야할 시간이 너무 길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