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날
2005.10. 16(일)
이날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아찔했고 당황스럽고 몰라두 되었을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났던 날이다. 서울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
그것도 일요일에...
우리가 파리에 덩그마니 남게 될 줄은 이날 오전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다.
왜냐하면 일요일 하루에 모든 박물관 미술관 등을
섭렵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파리에 처음 도착한 월요일에 루브르 박물관이 휴관이었던 이유로 우린 박물관과 미술관만을 모두 볼 수 있는(3일 유효)티켓을 끊어두었다.
물론 미술의 계보대로 본다면 루브르(고전주의)-오르셰(사실주의/인상주의)-퐁피두(초현실주의) 순으로 보아야 하지만 이 모두를 한 날에 다 보기 위해서는 작전을 잘 짜나가야 했다.
우린 오르셰를 먼저 보기로 했다. 서둘러서 오르셰 미술관으로 향했다.
9시 전에 도착했음에두 쭉~ 늘어선 줄을 보며 우린 감탄사를 연발했다. 첫날두 그랬는데... 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졌다. 파리에 있는 내내 너무 더워 반팔을 입느라 파커를 한 번도 못입었는데 우리가 떠난다고 하니 날씨도 추워진다. 한 40분 가량이 지나고 우린 오르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르셰 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이었다는데... 그래서였을까... 높은 천장과 하늘이 훤히 들여다 보이던 통유리... 1804년 최고재판소였던 오르셰 궁전은 1981년 파리꼬뮌 시절에 전소했고,1900년 세계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빅토르 리루가 그 자리에 기차역을 세웠다고 한다. 이 기차역은 약 40여간 사용되다 1939년 폐쇄되었고 1986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오르셰로 명명 오늘날의 미술관의 재탄생 된 것이다. 많은 작품을 찍을 수가 없어 눈과 맘에 넣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많은 이들이 오르셰 미술관을 꼽는 것일까?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에서도 언급되어졌던 곳, 무엇의 귀결이었길래... 19C 낭만주의 화가들이 머물러 있는 곳...
마네,모네,밀레, 세잔느,피카소로 이어지는 계보... 사실적이면서 서민적인 삶의 고뇌를 그대로 그림에 담아낸 시대적 발상 등등.... 약 2시간 정도 작품 감상을 하고서 우린 점심을 노천 카페에서 먹기로 결정했다. 파리지엔느들처럼 햇빛을 쏘이며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먹는 맛을 느끼기엔 너무두 추운 날씨...따뜻한 곳이 그립다... 그래두 스테이크 맛은 끝내주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이곳을 기억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거대하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어 꼬옥 봐야 할 중요할 작품들만 골라서 볼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남았던 곳,, 그나마도 지금은 다 기억할 수 조차 없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니케상', 일명 승리의 날개라고 불리워진 위의 작품은 1863년 에게해에 있는 사모트라게에서 발견. 높이 275cm로 B.C. 190년경 발견 당시 머리와 두 팔이 손실된 상태였다구... 하지만 1950년 떨어져나간 오른손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는 오스트리아 빈 박물관에 소장된 손가락이 작품의 유실물임을 판명하는 증거라는데... 현재 별도의 유리상자에 보관되어져 함께 전시되어 지고 있다. 근데 보았나? 현재 오른쪽 날개도 유실된 것을 석고로 복제하여 붙인 것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상무님의 미술사에 대한 예견된 설명이 있었기에... 작품을 이해(?)한다라고 하기엔 그 말을 쓰기에도 무색할 만큼 문외한이었던 우리들은 조금이나마 예술의 끝자락이라두 붙잡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도 감사했다. 도착한 첫날 루브르 박물관이 휴관이어서 이들을 볼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오늘이 아닌 첫날에 루브르를 봐 두었더라면 미술사에 대한 계보가 잠시라두 잊혀졌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