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12월 19일 투표의 결과로 이명박이 당선되었음을 슬퍼하는 글은 아니고, 기뻐하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단순히 태어남으로서 이곳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모국, 바로 이 한국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한 방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다른 형, 누나의 생각을 종합한) 끼적거리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쓰고 있는 해결책은 대통령을 포함한 국회의원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를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해결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좋은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근원을 밝혀야 한다. 대체 어쩌다가 욕을 먹고, 풍자의 대상이 되는, 국회의사당보다 K1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정치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나왔을까? 그 사람들의 근원을 따져보자.
짧게는 몇 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도 좋고, 길게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등장했을 때 까지 거슬러가도 좋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줄이자면 그들의 근원은 우리와 같은 인간, 서민이었다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한 능력이라고는 티끌만큼도 가지지 못 했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뭉쳤고, 그 결과 혼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결국에는 자연을 지배한다는 착각까지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의 근원은 우리와 같은 서민이다.
그들이 서민이었을 때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을까?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차이는 분명히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인간의 시초로 진화하면서 그 과정에 뭔가 기억에 각인될 만한 사건이 있었을 것이고, 그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아 자신의 욕심을 채우게 만들 행위의 근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권력을 잡게 되면, 유지하고 싶어지게 되고, 그 결과 최악의 선택들을 함으로서 자신은 편안하게, 다른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권력이란 것이 그래서 무섭다. 웬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모두 망쳐버린다.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서민, 바로 우리들 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이든, 친구라는 이름이든, 은사라든 이름이든, 종교라는 이름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욕심에서 구제할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분명히 가능하다. 때로는 자의로서도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의 가능성은 과거 태평성대라고 불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심지어 왕권이든 체제의 종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일 위에 존재하는 사람의 생각이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 위에 존재하는 사람은 원래는 우리와 같은 아래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옛날도 그렇고 인간이 강해지기 위해선 뭉쳐야 했고, 그런 과정에서 우두머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지배자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배자의 근원은 서민이고, 서민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뀌면 지배자 또한 바뀌게 된다.
이는 쉬운 일이냐?
절대 아니다.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상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다. BBK동영상으로 인해 실망을 해서 기호2번만큼은 대통령이 되서는 안 된다는 사람이 있었다.(정치 이야기를 한 사람이 한 명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호2번이 당첨되었다.
사람들은 경제 성장을 추구했고, 그로 인한 부정부패는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손을 들은 것이다.
그들이 옳을 수 있다. 내가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의 말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는 경제침체보다 양극화, 부정부패가 더 무섭다고 했다.(그게 나라는 것은 둘째 치고 말이다.)
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단 하나, 불평하는 마음, 탁상공론에 불과한 술자리에서의 시끄러움, 막연한 믿음 따위가 아니다.
행동이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생각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저XX보단 차라리 내가 더 정치를 잘하겠다!”
결국 생각에 불과하다. 행동이 없으면 그 생각은 방금 임종을 맞아서 무덤에 묻히게 되는 시체나 다름이 없다.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이 1초라도 더 빨리 오리라고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1초는 적은 시간이다. 그러나 인간이 강한 이유는 언제나 하나.
발톱도 없고, 두터운 피부도 없고, 추위, 더위를 견딜 수도 없고, 그 외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능력이 하나도 없는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게 보여준 우리만의 무기는 바로 뭉치기였다.
1명이 생각을 잠시 해서 그가 생각하는 세상을 1초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하자. 50억 명의 인구가 모든 인구가 생각을 하고 1초를 앞당기면, 50억초. 이는 8천3백3십3만3천3백3십3분, 1백3십8만8천8백8십8시간, 5만7천8백7십일, 158년이라는 시간이 나온다. 50억 명의 모든 인류가 잠시 생각을 하고, 바뀐 세상을 1초만 앞당기어도 좋은 미래를 158년이나 앞당길 수 있다.
인간의 힘은 뭉쳤을 때 더욱 많이 드러난다.
서민들이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한다면, 1초라도 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움직여야한다.
이번 투표, 솔직히 100% 모든 국민이 투표하고, 100%모든 국민이 곰곰이 생각해서 투표를 했었다면....... 여전히 기호2번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역전극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 결국 방금 언급한 그들이 ‘나 한 명쯤이야.’라고 생각함으로서 뒤집기는 벌어지지 않은 채, 결과가 뻔한 대통령 선거로 바뀌어 버렸다.
서민들이 살고 싶으면 생각해야 한다. 나의 1시간을 미래의 1초를 위해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언젠가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양극화가 아주 미미한 미래가 올 것이다.
비록 이글을 읽고난 후 아무도 세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난 후회하지 않는다. 쪽팔려하지 않을 것이다. 악성댓글에 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이 글을 씀으로서 서민을 위한 미래를 도착하는 길이 1초는 단축되었으리라, 믿고 있기에.
강한 믿음은 언제나 이루어지는 법.......
뱀발1
강한 믿음으로 테러를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뜻이 숭고해도, 무고한 사람들이 같이 죽게 되면, 그건 테러, 그 이하로 밖에 취급받을 수 없다.
뱀발2
이글을 읽고 악성댓글을 남기든, 찬성의 댓글을 남기든 그것은 당사자 마음이다. 제발 글쓴이조차 신경 쓰지 않는 어리석은 악성댓글에 괜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싸우는 철없는 행동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한 관심이 악성댓글을 쓰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퇴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돌맹이가 아닌,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끝난다.(‘XX드 워리어’라는 만화에 친절하게도 악플러들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이 그려져 있다.)
뱀발3
그렇다고 실력 좋은 해커들이 출동해서 괴롭힐 생각은 하지 않아주길 바란다. 나도 몸과 마음이 허약한 소시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