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진실'에 가까운 천문령전투
정사의 기록, 설화, 야사를 모두 조합해서 가장 사실에 가까운 천문령전투를 구성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드라마에서 나오는 천문령전투는 역사적 사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적 사실에 가장 가까운 천문령전투를 구성하려고 합니다.
1. 천문령전투--- 전초전------"대석하전투"
역사기록: 측천무후가 대중상과 걸사비우를 각각 진국공과 허국공으로 삼아 달래려고 하자, 당에 대한 데인경험이 많던 대중상과 걸사비우는 강력하게 거부한다.(구당서, 신당서, 발해고의 기록) 이에 측천무후는 대대적인 토벌을 결심하고, 좌옥검위대장군(혹 우옥검위장군) 이해고와 중랑장 색구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토벌하도록 시킨다. 천문령전투 전초전은 대중상, 걸사비우 등이 사서의 기록대로 보면 "요수를 건너 태백산의 동북쪽에 의지하여 거처하며 오루하의 험준함에 힘입어 나무로 벽을 쌓아 스스로 엄히 수비하였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초전은 오루하 인근 태백산에서 벌어진 것이 됩니다.여기서 말하는 오루하(대석하)는 오늘날 길림성 돈화부근의 성산자산성 아래에 있는 목단강지류의 약 4~5Km에 해당하는 강가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때, 천문령전투의 전초전은 바로 이 "오루하(대석하)"전투가 맞습니다.
이 전투의 주장은 고구려(말갈합세)의 대중상, 걸사비우였고 당나라측의 주장은 항복한 이해고, 색구, 낙무정, 하아소와 그 배후에서 뒤받침하는 설인귀의 아들 설눌, 우금오위대장군 하내군왕 무의종, 우숙정대어사대부 누사덕, 우무위위대장군 사타충의 등이 영주, 안동도호부로 이어지는 선내에서 이들을 응원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기록에 맞추어 볼때, 드라마는 묘사가 완전히 잘못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문령전투 그 전초전인 대석하전투에서 대중상, 걸사비우는 크게 패했고, 이 전투에서 걸사비우가 전사했습니다. 당나라가 사전에 유목족인 거란을 앞세운 것은 우세한 기동력과 보기협공으로 강상을 끼고 전면전을 펼치려 드는 걸사비우를 후려져서 먼저 제거했고(이는 걸사비우의 전술상 실책입니다), 이에 대중상이 그 배후를 막으려다가 실패하여 부상과 노환이 겹쳐 죽게됩니다.
이것이 천문령전투의 전초전 대석하전투입니다.
2. 천문령전투--- 양측의 인물진
대석하전투에서 추장을 잃은 말갈의 군사와 주민들은 혼돈에 빠져들었고, 이들을 대조영이 모두 수하로 넣게됩니다. 훗날 고왕 때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고, 발해 초기에 상당한 재질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또한 무왕 대에서도 베테랑으로 활약합니다.
율기계, 어부수계, 알덕, 목지몽과 같은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천문령전투 18년~26년 뒤에는 역사의 전면에 나오기도 하는 인물들입니다. 걸사비우가 죽고, 대혼란에 빠진 말갈의 부장들인 율기계, 어부수계, 알덕, 목지몽 등은 당시 20대 초반에서 30대까지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모두 대조영에게 합류했을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 대중상이 죽고, 고구려의 많은 장수들이 죽었지만 대조영은 곧바로 사태를 수습했고 이때 대조영의 휘하에는 동생 대야발, 처남 임아상(임아상이 바로 무왕의 생모... 그녀의 동생 정도됩니다.). 그리고 설화상에 나타난 여장군 "소사란 - 이 여자는 설화, 혹 유물은 돌조각같은데서 나왔는데 섭리계보단 덜 유명합니다." 그리고 미발계, 하조경과 같은 인물들이 대조영을 조력하고 있었습니다.
미발계와 하조경은 천문령전투 약 20여년 뒤의 무왕 대에는 엄청난 활약을 합니다. 이 당시 이들은 2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으로 나이 설정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과 함께 일본에 사신으로 떠나게 되는 고인의, 고제덕, 사나루, 덕주 등도 당시에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대까지 나이설정이 가능한 관계로 이들도 당시 대조영과 협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해서 대조영 측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말갈계의 어부수계, 율기계, 목지몽, 알덕..(모두 걸사비우의 수하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계의 소사란(야사, 설화적 인물), 대야발, 임아상, 하조경, 미발계, 고인의, 고제덕, 사나루, 덕주 등으로 구성할 수 있고...
이 전투에서 가장 노련한 경험과 지휘력으로 활약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과 처남 임아상, 그리고 설화상의 여장수 소사란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천문령전투의 "고구려의 수장은 대조영, 주요장수로는 대야발, 임아상, 소사란(설화상), 조력장수 내지는 문관으로는 어부수계, 율기계, 목지몽, 알덕, 하조경, 미발계, 고인의, 고제덕, 사나루, 덕주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나라군의 수장은 이해고, 주요장수로는 색구, 낙무정, 하아소 등으로 볼 수 있고 그 배후를 설눌, 무의종, 누사덕, 사타충의 등의 거란정벌에 공을 세우고 그곳을 점령하던 당나라 장수로 볼 수 있습니다.
3. 본전투
대조영은 전초전이었던 대석하전투에서 대패한 원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지형을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한 전술적 실책이었고, 둘째는 유민과 군사가 서로 뒤 섞여서 지휘체계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은 지휘상의 문제였고, 셋째는 압도적인 당나라의 전력과 기병과 보병을 활용한 보기합동전술로 나오는 이해고의 전술에 말려들어, 대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해고는 영주에서 대중상, 걸사비우 등이 탈출하여 많은 유민과 군사를 이끌고 동으로 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가장 큰 결점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이들과 같이 생활을 했고, 보았던 이해고는 그것을 잘 알았습니다.(극중의 이해고의 모습과는 달리 지략과 상대의 허점을 꿰뚫는 노련한 전술을 갖고 있던 장수의 모습이 보다 실제적입니다.)
하나는 급격하게 동쪽으로 후퇴하여, 급하게 자리를 잡은 오루하 일대는 겉보기에 지형이 험하고, 수비에 매우 유리한 듯 하지만 대중상과 걸사비우는 수비체제를 공고하게 다지는데 실패했습니다. 즉, 험한 지형과 수비에 유리한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는데, 엄청난 수의 유민들과 군사들이 서로 뒤섞여서 군사지휘상의 애로가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당나라군이 거세게 밀려들자 위험한 것을 뻔히 알고도 걸사비우는 어쩔 수 없이 군사를 뽑아 막아야 했고, 이렇듯 급조된 군사들은 이해고의 보기협공전술(쐐기진)에 걸려들어 크게 당하게됩니다.
이해고는 수비체제를 공고히 다지지 못하고, 또한 대규모의 당군을 향해 급조된 군사들로 막아낼 수 뿐이 없었던 대중상, 걸사비우 등의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낙승을 했던 것입니다.
대조영은 바로 이 대석하전투에서의 패전을 정확하게 분석한 결과 새로운 책략을 구현하게됩니다. 유민과 군사들이 뒤섞이게 돼면, 군사들이 전투에 보다 더 집중하기가 어렵고, 또한 지휘상의 애로점이 드러날 것이 틀림이 없었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입니다.
또한 겨울이 닥치고, 물자가 부족한데다가 산을 타고 후퇴하던 대조영은 결과적으로 서둘러서 안전한 요지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대조영에게 필요한 안전한 요지라는 것은 오히려 강을 끼고 있는 지역보다는 산과 산이 중첩돼서, 유민들과 군사들을 따로 분리하고, 유민들의 적의 배후공격의 위협이 완전히 차단되어 군사들이 적과의 전투에 집중할 수 있는 요지여야 했고, 이러한 고민과 고민이 거듭된 결과 "천문령"이 선택된 것입니다.
대조영은 천문령에 오르면서 유민들과 군사들을 구분했고, 북말갈의 여러 추장들과 협력하는 외교술과 돌궐과도(기록에 보면, 돌궐이 대조영의 추격을 방해하는 작전을 펼치는 것이 나옵니다) 외교관계를 맺고 묵철가한과 협력하게 됩니다.
대조영은 이해고군대의 가장 큰 강점이 "보기협동전술"에 있음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이것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적의 보병과 기병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석하전투에서처럼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컸습니다.(*사료에는 정확하지 않으나, 이해고의 군세는 적게는 20만에서 많게는 40만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조영은 산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처남 임아상과 고인의, 고제덕 등과 함께 산을 잘타는 군사를 뽑아 수십여명의 군사를 수천명처럼 과장시켜 수십여차례나 게릴라전을 걸게 됩니다.
그러자 이해고는 보병들을 닥달하면서, 그들 게릴라군대부터 정리하기 위해 보병들을 떼어냈고 점차 이해고 자신의 기병대가 보병과 분리되고 있음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겨울철에 천문령은 눈이 한길이 쌓이고, 폭설마저 내리는 상황에서 이들은 무리하게 기병을 움직이면서도 점점 보병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임아상, 고인의, 고제덕 등은 일부로 패하는 척 하면서, 이해고의 보병들을 계속 떼어냈고 이해고는 기병을 이끌고 대조영을 맹추격하는데, 겨울철에는 눈이 내릴때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눈이 더 많아지는 것은 상식입니다.
대조영은 이러한 상식을 이용해, 이해고의 기병이 꿈쩍달싹도 제대로 못하게 계속 산속 깊이 구릉과 언덕으로 끌어들였고, 이해고는 계속해서 대조영을 맹추격하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합니다. 결국 산속깊이 들어간 이해고에게 불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가뜩이나 산속의 구릉과 언덕이 설령 말타기가 평소엔 불편하지 않다고손 치더라도, 눈이 쌓여서 그 눈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말은 점점 움직이기 힘들어집니다.
그런 상태에서 눈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기병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 일어난 눈사태(인위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상자가 늘어나고 눈속에 파묻혀 쓰러지는 군사가 생기자 이를 재빨리 피해내면서 이해고는 뒤를 살폈지만 기병을 엄호할 보병은 거의 없었고, 적지 않은 기병이 눈사태에 움직임이 극도로 둔해집니다.
이때를 이용하여 대조영은 대야발, 소사란(설화상의 인물), 하조경 등과 더불어서 말갈의 어부수계, 율기계, 알덕, 목지몽 등의 대대적인 총공세에 들어갑니다. 궁수(맥궁병), 보병(보병 중에서도 특별히 장창병)의 맹렬한 협공에 부딪쳐서(궁수와 보병의 협공은 톱니바퀴 모양의 진법을 띱니다.) 이해고의 기병들은 천문령의 언덕 넘어 거의 정상에 가까운, 산중턱에서 전멸에 가까운 상태에 빠집니다. 설공책(雪攻冊)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전술은 적 기병의 행동을 완전히 무력화시켜버리기 위한 최적의 방해물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분리된 보병들은 점점 산속으로 깊이깊이 흩어져서 각개격파되었고, 이해고의 주력부대인 기병은 이렇게해서 무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군마를 거의 상실한 이해고는 더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하게 되자 퇴각을 단행했고, 분리된 보병들은 거의 각개격파되어 기록에 의하면 이해고는 거의 홀로 빠져나왔으니, 색구와 낙무정, 하아소 등이 어찌됐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전사했을 공산이 큽니다... 이것이 천문령전투의 전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의 추가공격이 있을 것을 우려한 대조영은 미리 돌궐의 묵철가한에게 손을 써두어 당과 돌궐이 으르렁 거리니 대조영은 유유히 동쪽의 동모산으로 들어가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외교전술, 군사전술, 인화, 천형(지형과 날씨)를 이용한 매우 치밀한 전술의 대승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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