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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재옥 |2007.12.27 00:14
조회 76 |추천 2


김원숙 화백의 많은 작품에서는 슬픔과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얼굴이나 화폭에 외롭고 슬픈 삶의 흔적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작품에도 여인이 불켜진 방안에 혼자 앉아있고, 댓돌 위에도 고무신이 한 켤레만 가지런히 놓여있어 외롭고 슬픕니다. 그런데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문틈으로 나와있는 옷자락에 뭔가 사연이 있는 듯 보입니다. 김 화백의 작품에는 이런 암시와 은유가 많은데, 이것이 그의 그림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문틈에 걸린 옷자락은, 신혼 첫날밤 신랑이 신부에 대해 오해를 하고 도망갔다가 몇십 년 후 돌아와 그때의 오해를 푼다는 '신부 원귀'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알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알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잡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서정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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